모 지역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시던(?) 선배 목회자께서 충남 아산으로 개척하기 위해 이번 주일(6/22) 만 13년 이상 목회하던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한다고 들었다. 아마 연배가 50대 말에서 60대 초반은 되었지 싶다.

 

  그 동안 여러 번의 위기와 고비가 있었다. 당회원 장로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 명으로 구성된 장립집사단들이 노골적으로 연말까지 사임할 것을 요구하며 약속과 확인까지 받기도 하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참고 기도하며 더 낮아지고 변화된 모습을 통해, 약속된 연말을 무사히 넘기고 그 후 한 몇 년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함으로 다시 잘 회복되었는가 생각했는데, 결국 사임하고 새로운 곳으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

 

  물론 그 선배인들 인간이기에 문제가 없었겠는가 마는 너무 오래 있은 것 같다. 사도 바울 같은 대사도도 기껏 한 교회에 가장 오래 있은 곳이 에베소교회에서 2년 3개월이 아니었던가? 나 역시 전 교회에 만 7년을 있었는데, 옛날 하고 달리 갈수록 사람들이 싫증을 쉽게 느끼는 것 같다.

 

  자식을 낳고 사는 부부 사이도 길면 몇 년, 짧게는 몇 달 정도만 같이 살아도 신비함이 사라지고 재미가 없어지면서 다툼도 일어나고 그 이상의 문제도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무원, 특히 그 가운데 교육직 공무원을 보면 한 3년 만에 자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으로 안다. 로만캐톨릭의 신부 역시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세상적인 모든 좋은 것들을 다 포기하고 복음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목회를 하였지만 가는 곳마다 일시적으로 환영도 받았지만 그에 반해 비난과 배척을 더 많이 받았다. 매 맞는 것은 물론이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고 심지어 바울을 죽이지 아니하고는 밥을 먹지 않겠다는 자도 40여명이나 되었고, 결국은 감옥에 갇혀 지내다 참수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예수님 역시도 처음 사역을 시작할 시에는 떡도 먹여주고 좋은 말도 해 주고 병도 고쳐 주어서 그런지 상당수의 무리들이 환호하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반대파들의 시기와 반감으로 마지막 3년 끝에는 그 동안 환영하던 무리들까지 대부분 등을 돌리고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고 외쳤으며, 심지어 그렇게 한솥밥을 먹고 동고동락하였던 제자들마저 십자가 앞에서 배신하고 말았다.

 

  나는 이게 오늘날 주님의 뒤를 따르는 ‘목회의 길’이라 생각한다. 대게 처음에는 다 환영하고 좋아한다. 심지어 “이번에 오신 목사님은 너무 좋은 분이 오셨네. 목사님, 우리 교회에 제발 평생 계십시오.”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얼마 가지 아니하여 싫증이 나고 시험이 오고 그래서 마음이 변하게 되는 것이리라.

 

  도회지 큰 교회는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부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도 하고 심방도 하고 교육도 하기에 담임목사는 그저 1주일에 1-2번 정도 설교하는 것이 고작이고, 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성도들을 직접 깊이 대면하지도 않는다. 거기다 부교역자들이 자주 바뀌고 나아가 성도들 역시도 자주 이사하면서 3-4년만 지나면 1/3이 자동으로 교체가 된다.

 

  그러나 작은 농촌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담임목사가 1주일 내내 설교하고 교육하고 심방하고 심지어 주일학교까지 다 한다. 거기다 운전에 청소에 식당봉사까지 다 하다 보니 성도들을 자주 직접 대면할 일이 많다. 그리고 성도들은 몇 년이 가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러니 도회지 큰 교회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싫증이 나고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많은 것 같다.

 

  요는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이러한 목회적인 싫증이나 갈등들을 인간적이고 사회적으로 지혜롭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성도들이 싫어하고 갈등이 생기고 시험이 오고 그래서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잘못해서든 아니면 잘할지라도 비난과 배척을 당하는 것이 정상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나는 십자가의 길인 목회에는 ‘성공’이란 말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여러 가지 지혜를 잘 발휘하여 오래 동안 목회를 하면서도 아무런 큰 문제가 생기지 아니하고 성도들이 대부분 지지하는, 그래서 20년 이상 동안 무난하게(?) 목회하여 원로목사까지 되는 것이 과연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굳이 말하자면 죽는 것이 성공이요 목회를 하다 죽음으로 그 이후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님 역시 그렇게 목회하셨고, 사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 역시도 그러하였으며, 심지어 구약의 모세 역시도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세 분 모두의 공통점은 자기가 열심히 봉사한 사역지에서 노후에 노력한 것에 대한 열매를 누리려고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모세나 예수님, 사도 바울 시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 여러 가지 여건 속에서 목회자가 한 교회에 오래 있는 것은 성도들과 교회에도 유익이 별로 안 되고 목회자 자신도 사실 그렇게 즐거운 것이 아니다. 우리 교단에 해외의 교포교회나 선교지까지 합쳐서 약 2000개 교회는 되지 싶은데, 길어야 40년 목회이고 짧으면 20-30년인데 자주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한다.

 

  내가 지금의 사역지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아직은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또 그런대로 좋게 평하고 있다.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또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움이 생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모세처럼 도중에 죽지 아니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피하지 아니하고 각오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려고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