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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19) 2003.01.26
고전 15장은 복음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음이 복음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근거인 부활에 대해서 상고해볼려고 합니다.
시작하기전에 둘씩 짝을 지어서 ‘만약 부활이 없다면,_________이다’의 빈칸을 채워보세요.
오늘 본문인 12절에 보면 그당시 부활에 대해 의심을 품는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19절의 흐름을 우선 살펴보고, 행간의 의미들을 발견해봅시다.
만약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심이 없다.
=> 1)전파(preaching)한 것이 헛되다.
2)우리의 믿음이 헛되다.
3)하나님의 거짓증인이다.
(since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전파)
4)믿음이 헛되기에 여전히 죄가운데 있음.
5)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다.
=> 우리는 모든 사람가운데 가장 불쌍하다.
우리가 정성들이고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쓸모없다고 결론날 때 기분이 어떨까요?
반면에 그러한 것이 보람된 결과로 나타날 때의 기쁨은 어떨까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들의 수고가 어떠한 것인지를 한번 살펴봅시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확신하면서 이러한 일들을 하였습니다.
1) => 그들은 열심히 전파하였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나는 전파함에 있어서 과연 허탈할수 있겠는가?
2) => 우리의 믿음이 헛되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믿고있고,
그 믿음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3) =>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음을 나는 누구에게 말하였나?
4) => 나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롭게 되었는가?
5) => 그렇다면 믿지않는자와 죽은 이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결론!
참 명제의 대우는 참임을 이용하여 말씀을 풀어본다면,
우리가 부활신앙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사도들의 위 5가지 행함이 우리의 삶에서도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즉, 전파(preaching),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구원, 죽음이후의 소망등.
이제 한단계 앞으로 나가봅시다.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이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옆집 순이가 10억 복권에 당첨된 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마 한번정도 밥을 얻어먹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활의 극히 일부이지 삶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이처럼 내 삶에 일부의 취사선택하는 것들 중의 하나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우리는 불쌍한자로 훗날에 평가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난관과 고통을 분명히 만나게 됩니다.
이때 부활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수고하며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학창시절 학교, 학원 등을 오가며 딴 생각 안하고 공부하면 성공한다고들 합니다.
이는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은, 언뜻 보기에는 건전한 삶을 사는 정상인으로 보입니다.
물론 성실하게 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우리 부활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을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에서 부활신앙을 소유한 우리에게 절망을 줄 만한 사건은 없습니다!
본문 다음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첫열매가 되셨음을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남다르게 평안을 잃지않고 기쁨으로 살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 청소년기를 이런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현재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현실은 무었이 있을까요?
......(공부, 친구관계, 부모형제와의갈등 )
부활신앙을 소유한 우리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같을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 과정과 결과가 같다면 오히려 그들의 방법이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들의 방법은 어떤 기준일까요?
그들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 하나 하나를 소중히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그 분께서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그런 결과를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기도하면서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무리를 하면서 19절을 읽겠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렇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기 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32절에 나온것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하든지 밀린 잠을 자든지,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을 즐기다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좀 편안하게 살려면 지금 도서관에 가서 죽도록 공부하여서
옆의 경쟁자인 친구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든지요.
그러나 우리는 부활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5장 마지막절인 58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장은 복음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음이 복음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근거인 부활에 대해서 상고해볼려고 합니다.
시작하기전에 둘씩 짝을 지어서 ‘만약 부활이 없다면,_________이다’의 빈칸을 채워보세요.
오늘 본문인 12절에 보면 그당시 부활에 대해 의심을 품는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19절의 흐름을 우선 살펴보고, 행간의 의미들을 발견해봅시다.
만약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심이 없다.
=> 1)전파(preaching)한 것이 헛되다.
2)우리의 믿음이 헛되다.
3)하나님의 거짓증인이다.
(since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전파)
4)믿음이 헛되기에 여전히 죄가운데 있음.
5)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다.
=> 우리는 모든 사람가운데 가장 불쌍하다.
우리가 정성들이고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쓸모없다고 결론날 때 기분이 어떨까요?
반면에 그러한 것이 보람된 결과로 나타날 때의 기쁨은 어떨까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들의 수고가 어떠한 것인지를 한번 살펴봅시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확신하면서 이러한 일들을 하였습니다.
1) => 그들은 열심히 전파하였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나는 전파함에 있어서 과연 허탈할수 있겠는가?
2) => 우리의 믿음이 헛되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믿고있고,
그 믿음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3) =>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음을 나는 누구에게 말하였나?
4) => 나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롭게 되었는가?
5) => 그렇다면 믿지않는자와 죽은 이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결론!
참 명제의 대우는 참임을 이용하여 말씀을 풀어본다면,
우리가 부활신앙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사도들의 위 5가지 행함이 우리의 삶에서도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즉, 전파(preaching),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구원, 죽음이후의 소망등.
이제 한단계 앞으로 나가봅시다.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이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옆집 순이가 10억 복권에 당첨된 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마 한번정도 밥을 얻어먹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활의 극히 일부이지 삶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이처럼 내 삶에 일부의 취사선택하는 것들 중의 하나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우리는 불쌍한자로 훗날에 평가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난관과 고통을 분명히 만나게 됩니다.
이때 부활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수고하며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학창시절 학교, 학원 등을 오가며 딴 생각 안하고 공부하면 성공한다고들 합니다.
이는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은, 언뜻 보기에는 건전한 삶을 사는 정상인으로 보입니다.
물론 성실하게 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우리 부활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을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에서 부활신앙을 소유한 우리에게 절망을 줄 만한 사건은 없습니다!
본문 다음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첫열매가 되셨음을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남다르게 평안을 잃지않고 기쁨으로 살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 청소년기를 이런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현재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현실은 무었이 있을까요?
......(공부, 친구관계, 부모형제와의갈등 )
부활신앙을 소유한 우리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같을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 과정과 결과가 같다면 오히려 그들의 방법이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들의 방법은 어떤 기준일까요?
그들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 하나 하나를 소중히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그 분께서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그런 결과를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기도하면서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무리를 하면서 19절을 읽겠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렇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기 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32절에 나온것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하든지 밀린 잠을 자든지,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을 즐기다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좀 편안하게 살려면 지금 도서관에 가서 죽도록 공부하여서
옆의 경쟁자인 친구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든지요.
그러나 우리는 부활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5장 마지막절인 58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