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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유진입니다. 그 동안 다들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시험도 일주일전에 끝나고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말하기 경시대회에 입상해서 도대회에 나가서 다시 준비 중입니다. 이번 호에 쓸 원고를 저번 호에 실어버려서 다듬어서 다시 올리려 합니다.
이번 호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돌아가신 10주년 특집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조부모님을 아예 보지 못한 사촌들 보다는야 낫지만 제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일까요? 저는 그분들에 대해 많이 알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들이 어떤 분들 이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추억... 우선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으나, 제가 아마 집 대문 옆에 묶여있던 개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강아지에게 풀을 먹이려고 했고, 그 광경을 보신 할아버지께 저는 즉ㄱ가 혼났습니다. 당연히 제 실수였음에도 그 때 그 꾸지람은 저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약간은 무서웠다는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시장에서 무언가를 파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과일이나 채소였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할아버지께서 서울에 오셔서 같이 유람선 탄 기억도 있군요! 그것도 기억이 잘나지 않으나, 산지 얼마 안된 벼 달린 모자를 쓰고 가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밖을 구경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쓰고 나니 제가 직접 본 것은 정말 조금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네요.
하지만 저에게는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많은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때에 힘드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서로 사랑하라’라는 가훈을 지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영어말하기 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질문이 “What is your Family Moto and why?” (당신 가족의 가훈은 무엇이며, 왜 그런 가훈을 가지고 있습니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Our family Moto is 'love each other.' Our Grandfather made that for us. Our Grandfather was christian. But other relatives beat them something like that because they didn't like christian. However he was a christian and he gave us that moto. And also in this world where Love is decreasing, This Moto is very good I think" (우리가족 가훈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지어주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크리스쳔이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친척들은 크리스쳔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때리거나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크리스쳔 이셨기에 우리에게 이런 가훈을 주셨습니다. 또한 사랑이 사라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 가훈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저는 대회 준비 할때 이것에 대해 준비 하지 않았으나 나름대로 조리있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대회에서 조그마한 상을 탔는데, 그것은 할아버지께서 좋은 가훈을 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가훈이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나 ‘돈 잘 벌어서 내 새끼 대학 보내자’ 같은 거였으면 저는 아마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더웠던 여름 . . . 어느 날 . . 어머니 아버지께서 사라 지셨습니다. 저희 네 형제는 친하게 지내오던 지하형네 집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 . . 우리 네 형제는 아저씨의 차에 타고 긴긴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막상 가보니 경진이, 성진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애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나지 않는 군요) 그래서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곳은 아마 병원 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깥 마당에서 놀았습니다. 얼마 후에 저는 할아버지 사진을 들고 길을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그냥 걷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 정주채 목사님이 보였습니다. 마냥 좋았습니다. 얼마 후에 관 두개를 묻었습니다.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 . . . 초등학교에서 가족에 대해 적어야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지금 막상 생각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별로 슬프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추억이 없기에 그 분들을 쉽게 하늘나라에 보내 드릴 수 있어서 ..
언젠가는 하늘나라에서 두 분 만날 줄을 압니다 . . 그때 뵈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이번 호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돌아가신 10주년 특집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조부모님을 아예 보지 못한 사촌들 보다는야 낫지만 제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일까요? 저는 그분들에 대해 많이 알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들이 어떤 분들 이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추억... 우선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으나, 제가 아마 집 대문 옆에 묶여있던 개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강아지에게 풀을 먹이려고 했고, 그 광경을 보신 할아버지께 저는 즉ㄱ가 혼났습니다. 당연히 제 실수였음에도 그 때 그 꾸지람은 저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약간은 무서웠다는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시장에서 무언가를 파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과일이나 채소였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할아버지께서 서울에 오셔서 같이 유람선 탄 기억도 있군요! 그것도 기억이 잘나지 않으나, 산지 얼마 안된 벼 달린 모자를 쓰고 가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밖을 구경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쓰고 나니 제가 직접 본 것은 정말 조금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네요.
하지만 저에게는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많은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때에 힘드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서로 사랑하라’라는 가훈을 지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영어말하기 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질문이 “What is your Family Moto and why?” (당신 가족의 가훈은 무엇이며, 왜 그런 가훈을 가지고 있습니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Our family Moto is 'love each other.' Our Grandfather made that for us. Our Grandfather was christian. But other relatives beat them something like that because they didn't like christian. However he was a christian and he gave us that moto. And also in this world where Love is decreasing, This Moto is very good I think" (우리가족 가훈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지어주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크리스쳔이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친척들은 크리스쳔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때리거나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크리스쳔 이셨기에 우리에게 이런 가훈을 주셨습니다. 또한 사랑이 사라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 가훈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저는 대회 준비 할때 이것에 대해 준비 하지 않았으나 나름대로 조리있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대회에서 조그마한 상을 탔는데, 그것은 할아버지께서 좋은 가훈을 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가훈이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나 ‘돈 잘 벌어서 내 새끼 대학 보내자’ 같은 거였으면 저는 아마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더웠던 여름 . . . 어느 날 . . 어머니 아버지께서 사라 지셨습니다. 저희 네 형제는 친하게 지내오던 지하형네 집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 . . 우리 네 형제는 아저씨의 차에 타고 긴긴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막상 가보니 경진이, 성진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애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나지 않는 군요) 그래서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곳은 아마 병원 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깥 마당에서 놀았습니다. 얼마 후에 저는 할아버지 사진을 들고 길을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그냥 걷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 정주채 목사님이 보였습니다. 마냥 좋았습니다. 얼마 후에 관 두개를 묻었습니다.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 . . . 초등학교에서 가족에 대해 적어야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지금 막상 생각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별로 슬프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추억이 없기에 그 분들을 쉽게 하늘나라에 보내 드릴 수 있어서 ..
언젠가는 하늘나라에서 두 분 만날 줄을 압니다 . . 그때 뵈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