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송사인가?"(기독교보, 2013년 2월)
2013.09.28 07:24 Edit
2013년 구정 밑에 또 성도간의 송사 사건이 일어났다. 고신대학교에서 지난 1년간 강의한 비정년 트랙 지명수 교수가 신학과 교수 5인을 명예훼손혐의로 형사 고소하였다. 필자가 2001년 1월에 ‘성도간의 세속법정에서의 송사(訟事)를 개탄함’을 이 신문에 2회에 걸쳐 기고한지 만 12년이 지난 시점이다.
경찰이 조사관이 되어 신학교수들에게 신학을 질문하여 조서를 꾸미고, 검찰과 법관은 심판관이 되어 경찰이 조사한 신학교수의 신학을 판단하게 되는 통곡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전 6:5). 고신교회는 이 사안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자기를 살펴야 할 것이다.
1. 사건의 개요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들은 2012년 3월에 타 교단 소속 목사인 지 교수가 비정년 트랙 교수에 임용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청원서를, 그해 6월에는 지 교수의 전반적인 사상 특히 천국과 지옥을 믿는지 검증할 것을 요청하는 협조문을 교학부총장(인사위원장)에게 보냈다. 교학부총장은 신학과 소속의 A교수이다. 9월 말에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도 대학 당국에 사태에 대한 보고를 지시하였다. 이에 대학교 인사위원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위원회는 지 교수의 신학 검증을 하기로 하고 외부 5명의 위원을 위촉하였다.
필자도 검증위원으로 위촉받았다. 필자는 창조, 죄, 구원, 종말과 심판 등에 대한 지 교수의 입장은 1) 개혁주의 관점의 범위를 벗어나며, 2) 본 교단의 신학적 방향에 위배되는 주장을 담고 있고, 3) 더 근원적으로 ‘이단성’의 의심을 받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검증서를 제출하였다.
검증서들이 제출된 직후에 지 교수는 학교 당국에 사임서를 제출하였다. 이사회는 올 1월 21일에 이 사임서를 받아 허락하였다. 그 사이에 지 교수가 고소한 것이다.
2. 지 교수의 신학사상
지 교수는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하지만, 성경의 용어와 교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가령 전적타락 교리는 인간성 자체가 타락 이후 완전히 부패해서 선을 행할 능력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이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과 구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몸의 부활’은 실제적인 공동체의 부활 혹은 민족의 정치적 부활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영원한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는 개인의 삶을 영생”이라고 해석한다.
지 교수의 학위논문은 ‘의미의 재해석’을 너무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논문을 읽어보면 그의 주장이 개혁주의 입장을 벗어나며 본 교단의 신학적 방향에 위배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상을 검증하기 위하여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고, 외부인에게 검증까지 맡긴 것은 고신교회와 신학의 위기를 대변한다.
3. 지 교수의 임용 과정
지 교수의 사상이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사위윈회를 구성하고 검증위원을 선임한 것은,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과 교수간의 관계를 가늠하게 한다. 신학교 교수 5인과 같은 과 소속인 A교수 사이에 지 교수의 문제를 두고서 직접 대화가 없었다. 쌍방은 서로 문서를 주고받으면서 지난 1년을 끌어왔다.
지 교수를 비정년 트랙 교수로 임용할 당시에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신학과 교수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신학과의 다수 교수들은 이런 신학을 가지고 강의할 지명수 교수의 임용에 애초부터 배제되었다.
상식적으로 비정년 트랙 교수라 하더라도 임용에는 기본적으로 살피고 심사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그 중에 학위논문 심사도 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하여 신학과 5인 교수 중에 같은 전공을 한 교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전공이 아닌 신학과 소속의 B교수에게 지 교수의 학위논문 심사를 맡겼다고 한다.
신학과 교수들끼리 이미 이전부터 있어왔던 안타까운 인간관계가 공식적인 심사 과정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면, 이는 통탄할 일일 것이다.
4. 관련 기관의 책임
1) 지 교수의 추천자와 논문 심사자
지 교수가 수학한 대학교는 그의 석사와 박사학위 논문에 대하여 “본 논문의 내용이나 출판된 연구 결과는 포쳅스트룸대학교 신학부의 입장이나 지도교수의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논문들의 첫 머리에 공지하도록 하였다. 그 대학교는 지 교수를 임용할 한국의 대학교가 그의 논문을 잘 읽고 검증하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예견된 패착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지 교수의 임용을 추천하였는지를 확인하고 추천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논문 심사자도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2) 인사위원장, 조사위원장
인사위원장은 신학과 교수라는 사실 외에, 지 교수의 임용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과연 인사위원장은 지 교수의 신학사상을 파악하였는지, 아니면 하지 못하였는지, 답변하고 해명해야 한다. 나아가 신학과 5인 교수들의 여러 요청에 대하여 지금까지 답변이나 해결책의 제시를 지연하면서 결국 문제를 확대시켜 여기까지 이르게 하였다면, 그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조사위원회와 위원장 또한 면책 받을 수 없다. 조사위원회는 신학검증 위원들의 검증서를 처음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신학과 5인 교수들은 검증 내용을 공지 받을 정당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위윈회는 검증자들의 동의가 요청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였다.
공적 문서에 대한 공개 거부는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만약 이로 인하여 일어난 많은 오해가 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위원회가 져야 한다. 인사위윈회와 이 위원회가 구성한 조사위원회, 양 위윈회가 신학과 5인의 교수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검증자들 사이에 이견을 불필요하게 과장하여 5인 교수들을 압박하고 이사회에 보고하였다면, 이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
3) 총장
총장은 고신교회로부터 개혁주의에 입각한 교육으로 세상에 빛이 되는 인재 양성을 위임 받았다. 과연 이런 사상을 가진 교수라도 강의해야 할 만큼 고신대학교에서 강의할 교단 신학자가 없었다는 말인가. 혹 지 교수를 임용하여 교과부의 요구조항 하나를 충족시켰는지 모르지만,
이런 교수의 교육으로 정말 개혁주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약 1년간 이런 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장이 직간접으로 이 중대한 사안의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는 정황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이것은 총장 직무의 불성실한 수행에 해당된다.
4) 이사회
이사회는 고신교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와 장로가,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여러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설립 목적에 합당한 인재를 양성하여 세상에 파송하는지를 감독하고 지도하여야 한다.
이번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이사회는 본연의 의무를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바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지 교수의 사상은 정상적으로 임직을 받은 목사와 장로라면 바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입장과는 다르다. 더구나 신학과 교수들이 이사회에 제출한 청원서에는 굳이 외부 검증 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지 교수의 사상의 문제점을 여러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사회가 대학교에 보고를 요청하여 결국 검증 작업까지 하게 한 것을 보면, 이사들이 지 교수의 사상을 성경과 우리 신앙고백에 입각하여 직접 파악할 의사가 없었거나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게 만든다.
어쨌든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검증자들의 입장을 정리한 인사위원장의 보고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여 지 교수의 자진 사임을 허락하였을 뿐, 인사규정을 따라 상응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 또한 올바른 감독 수행이 아니다.
5.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지 교수는 고소를 취소하여야 한다
성도가 성도를 송사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것도 명예훼손을 두고서 말이다. 필자는 훼손 여부를 논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문제가 이처럼 커졌는가? 지 교수는 학위 논문 서두에 첨부한 공지 내용이나 한국 다른 신학교에서 일어났던 소요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사상의 진면목을 정직하게 주장하고 임용 제안 자체를 정중하게 사양했어야 한다.
이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명예 훼손만 내세우고 자신의 문제로 인하여 목사요 신학교수인 5명이나 학생들이 당한 여러 어려움에 대해서는 추호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명예훼손을 당하시고도 훼손한 자들을 고소하지 않으셨다. 이 은덕에 우리가 있고 지 교수 자신도 있음을 고백한다면, 예수님의 제자답게 처신하여야 한다. 오히려 고소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의미 재해석’과 일치된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고신교회는 ‘고소파’가 아니다. 취소를 촉구한다.
2) 임용 절차에 대한 조사
지 교수의 임용 과정에 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특히 추천자와 논문 심사자는 구성원과 고신교회 앞에 정중하게 사과하게 하고, 내부 규정을 따라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받도록 하여야 한다. 여기에 인사위원장, 조사위원장과 총장도 해당된다.
3) 신학과 교수간의 관계
신학과 교수들은 임용 과정에서 신학과 교수들이 배제된 이유, 너무나 명백한 지 교수의 사상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지난 1년간 갈등을 표출하면서 문제를 복잡하게 악화시킨 책임, 이 때문에 목사 교수들에 대한 대학교 구성원들의 불신에 대한 책임, 과연 이러고도 기독교대학으로서 고신대학교가 존속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해명하여야 한다.
4) 이사회
한국의 대학교는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이사회는 이런 외적 위기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을 따라 고신대학교를 감독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사안을 처리하는 신학적 위기 대처 능력은 불합격이다. 굳이 이러고도 고신대학교를 유지해야 하는가. 이러고도 이사회가 존재해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이사회인가. 무엇을 위한 이사회인가. 이사회와 이사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을 파송한 교회와 교인들에게 책임 있는 해명을 하고 동시에 이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총회는 송사하는 직분자들에게 권징 시행을 논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고신교회에 속하지 않는 지 교수가 목사로서 송사를 시작하지만, 그에게 권징을 행할 수가 없다. 이를 예견하지도 못하고 고신대학교 총장의 요청을 받아 고신 목사가 아닌 사람을 임용하게 한 책임도 져야 한다.
6. 마치면서
필자는 이번 사태를 고신교회의 교인이요 목사로서 바라보면서, 고신교회의 존속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러 차례 ‘고신교회가 존속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하였고 여러 논문까지 쓴 필자로서는 고신교회의 무기력을 절감하고 있다. 고소건을 조사받는 과정에서 위에서 거론한 일들을 세상 앞에 다 노출시켜야 할 것이고, 그래서 또 다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훼손할 것인가?
이번 사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회개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신호이다. 고신교회 역사에서 송사는 성경의 교훈을 벗어난 큰 잘못이었다. 지 교수를 정죄하기 전에 고신교회의 선배들의 잘못을 여전히 해결하지 않고 송사를 용인하고 있는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고신교회를 내치실 것이다.
유해무 교수 / 고려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