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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군대에 너무 늦게 갔다. 내 아들만큼은 남들과 비슷하게 가기를 원했다. 그래도 2학년 하고 10월, 친구들과 비교할 때 조금 늦은 편이다. 이미 자기 고교 동기나 대학 친구들의 80%가 다 입대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기수 중에는 대학 1학년들도 한 30% 정도 입대하는 것으로 안다.

 

(2) 논산훈련소에 1,474명이 입소하였다고 들었다. 과거 우리 때와 달리 미리 축하무대가 펼쳐졌다. 연병장에는 총 4개 지역으로 나누어 모였다. 게 중에는 시간이 지나 뒤늦게 나타난 자들도 있었고, 1명은 머리카락도 안 자르고 등장한 경우도 있었다.

 

입소자들 가운데 이동해라고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하고 나서 알게 된) 처음 들어보는 가수가 있었던 것 같다. 전국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 날아온 여성 팬들이 훈련소 입구에 수십 개의 현수막을 붙이고 키다리 의자까지 준비해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펼쳤다.

 

(3) 아내는 아무래도 군 세계를 직접 경험하지 못해 내심 두려움도 있겠고 또한 자기 몸속에서 직접 키워 낳고 길렀기에 나보다 더 애착이 가서 그런지 아쉬움에 눈물도 조금 흘리는 것 같았다. 아내는 물론, 모든 어머니가 입소자들이 연병장을 몇 번 돌고 마지막 실내강당에 들어가 더는 안 보일 때까지, 한 번이라도 아들 얼굴을 더 보려고 이리로 저리로 또 이리로 마치 파도처럼 계속 이동하는 진풍경을 보였다.

 

이미 전투경찰로 군 생활을 했던 나는 오히려 아들이 군에 입대하는 것이 다행이었고 자랑스러웠다. 요즈음 고위공직자들이 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의 군 문제나 자식 군 면제로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가정을 책임지고 험한 경쟁사회를 헤치며 살아야 할 가장(家長)이 되기 위해 좋은 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여러 성격의 사람들, 동료는 물론 선임과 후임 그리고 지휘관들 속에서 위계질서를 배우며 자기의 위치를 눈치로 깨달아 적절하게 처신해야 하는 부분, 때로는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할지라도 내색하지 않고 상대방(선임) 비위를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들은 군이 아니면 미리 제대로 배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4) 하루가 지난 오늘, 이제 우리 부모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아침 9시에 하동읍을 나가 교우 1명을 서울로 모셔드리고, 사모 모임 때문에 진주를 다녀와, 다시 하동읍에 병원 심방을 하고, 밤에 여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나 역시 변함없이 기본적인 임무와 주일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간혹 혹은 종종 생각이 나겠지만, 아들 인생은 아들 자기 몫이다. 스스로 이겨내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야 한다. 1년 9개월 후에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있을 아들을 기대한다.

 

그래도 나라에서 공무원(?)이라고 밥 주고 방 주고 옷과 신발에 돈까지 주기에 아주 좋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셨기에 적절하게 보호하실 줄 안다. 단지 주일을 잘 지킬 수 없는 곳이라 하나님 떠나지 말고, 고생해서 배운 지식 잊지 말고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쓰임 받기를 기도하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