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의미는 어릴적 김장날의 술렁이는 분위기와 김장자리에서 김치속을 넣은 배추 한 잎을 정말 꼭 맛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팔자 늘어진 소리 한다고들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 혼자 김장판 벌이는 건 말도 안 되고, 해마다 김장하는 누군가가 나 좀 불러줬으면 하는 바램인데,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네요. 지금 천안에서는 막 김장이 끝났다는데 저도 너무 가고 싶어서 수업 마치고 바로 달려가서 밤에 올까는 되지도 않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답니다.
어린 시절 김장날은 제 기억에 있지만 어른이 되고는 김장날을 겪은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음식을 잘 못해서인지 어쨌든 얻어 먹을 복은 많습니다. 결혼한지 9년 동안 김장이라는 걸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특정한 곳에서 고정적으로 주시는 것도 아닌데, 한 번도 김치가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동료에게서 예희 놀이방에서 교회언니에게서 다양한 출처의 김치들이 여러 통입니다. 이젠 김치 걱정이나 반찬 걱정은 전혀 안 합니다. 김장날 그 자리에서 먹으면 어린 시절 이런 맛이 날까 한 번 먹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중학교 무렵에는 친구들과 놀이삼아 방학 동안에는 거의 매일 깔비를 하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번 큰오빠와의 이야기를 통해 지명을 알아낸 조그마한 연못이 있는 송골이라는 곳에서요.
부지런히 깔비를 까꾸리로 긁어서는 작은 언덕만하게 모이면 다시 까꾸리로 잘 추려서 베개처럼 만들어서 중간이 포개지도록 깔빗짐단을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어른 장골이 져야될만한 깔빗단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왔죠.
아마 그 때 엄마는 마당에서 김장을 하고 계셨어요. 엄마는 배춧잎 하나 따서 김치속을 가득 넣어 입에 넣어주셨죠. 거머죽죽하고 이리 저리 마디가 굵어터지고 갈라진 손에 뻐얼건 고추가루 가득 묻은 손으로 지어주시던.... 불쏘시개를 한 아름 해온 저에 대한 대견함과 시장기, 엄마의 사랑이 어우려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의 포근함과 따스함이 아직도 느껴집니다. 그 날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까지도요. 이제 그 맛은 어떤 김장김치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 때 그 시절로 가야만 느껴질 추억의 맛이겠죠?
김장하신 큰올케 언니, 큰 언니, 은진씨, 동네 할머니, 그리고 오빠, 경훈, 성훈, 하늬, 하민이까지 한 잎 짜~악 드셔보시고 그 맛이 나나 한 번 음미해봐요. 그리고 이번 겨울에 김장하신 감사로 한 턱 내겠습니다. 김포로 오세요.
엄마랑 김장한 기억은커녕 김장하는 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꽁이의 묘사에서 그냥 상상이되네.
다만 정옥 언니가 고교 졸업하던해인가 정확지 않지만
엄마는 시장가시고 언니가 하던 기억은 있지만.
어제 우리 집사님 댁에서 김장하는 옆에서 난 세 번이나 받아 먹었는데
굴을 싸서 먹는 그 맛은?
난 그리보면 참 행복하네?
김장하는 것 자주 구경할 수 있으니.
빨리 방학이 되어야 할 텐데...
우리가 가지않고 이모가 오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