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허순길 박사의 ‘한국장로교회사’ 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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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순길 박사의 ‘한국장로교회사’
- 유해무 교수
- 기독교보(2002.10.12)

고신교회가 50주년을 맞는 시점에 고신교회사에 대한 훌륭한 책이 출판되었다. 고신교회가
직영하는 ‘고려신학대학원의 50년史’(1996)를 저술하였던 허순길 박사는 ‘고신교회 50주
년 기념’이라는 부제로 ‘한국장로교회사’라는 새로운 책을 썼다. 머리말과 맺는말, 그리
고 총 6편 22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부록으로 역대 총회임원과 고신교회사 연표, 인명 색인
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50년의 고신교회사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사 전체에 대한 일
관성 있는 기술과 평가를 시도하였다.

저자는 ‘기독교사’가 아니라 ‘교회사’를 서술한다. 기독교사는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
로 보면서 종교사나 문화사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전래와 성장을 역사적으로 기술한다. 그런
데 교회사는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전제하면서 교회의 역사를 살펴 현재의 교회를 더 잘
이해하려고 한다. 저자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지금도 시혜와 권징의 방편으로 자기
교회를 보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고신교회사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사를 쓰는 저자의 신앙
고백적인 사관(史觀)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교회의 개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저자
가 말하는 개혁은 제도적인 개혁도 포함하지만, 이에 앞서 순수한 교리의 진리에 기초한 교
회건설을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해방 전의 장로교회가 교리의 순수성을 지켰는지, 해방
후 출옥성도와 고신교회가 이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썼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1952년 이후 고신교회 50년의 역사를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과 생활의 역사적인 전통
을 바르게 잇는 개혁되는 참된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로 본다. 해방 직후 당시 고려신학교
를 중심으로 경남노회가 한국장로교회를 향하여 개혁과 재건운동을 하였으며(12장), 또 당
시의 장로회 총회로부터 경남노회가 축출당하고 1952년에 조직할 수밖에 없었던 총노회의
역사는 ‘개혁해 가는 장로교회’이다(15-16장).

이런 개혁의 배경에는 1938년 제27회 장로교 총회의 신사참배 결정이 있다. 총회에 참석한
사람의 98퍼센트가 양심을 누그러뜨려 일제의 요구에 순응했으며, 장로교회는 총회 시마다
‘국민의례‘라는 명목으로 일본왕에게 절하였다. 이것은 사단의 지배 아래 움직이는 배교
의 집단이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6조 5항)의 고백처럼 사단의 회였다(p.234). 그러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기 교회를 보존하시기 때문에(화란
신앙고백서 제27장)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가 한국에서 전적으로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고
단언한다(p.257). 나아가 그리스도는 신사참배를 항거하는 전투적 교회를 남겨 두시되 이들
을 완전히 박멸하려는 음모를 용인하지 않으시고 비극의 사흘 전에 해방을 주셨다고 역설한
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순수한 말씀전파와 성례집행 그리고 권징을 통하여 참 교회가 된다. 그
리스도의 교회는 순결해야 하며 교리의 순수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배교한 교회는 해방
을 맞고서 공적으로 참회하고 권징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배교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기 정당화에 몰두했다. 교회의 개혁과 재건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p.296). 권징에 대한 이견도 하나의 이유가 되어서 박형룡 박사는 출옥성도들
과 고려신학교를 떠났다.

정화를 통한 교회재건에 관심이 없었던 박박사는 일본기독교조선교단 통리였던 김관식이
1948년 총회에서 정치부장으로서 고려신학교는 총회와 무관하고 노회가 추천서를 줄 필요
가 없다고 발언할 때 이 광경을 침묵으로 지켜보았다. 그런 박박사는 1956년에 세계교회협
의회(WCC)에 관한 연구위원회 위원이었으나 이 위원회가 가입을 찬성할 때 WCC에 대해서 공
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하는 노회를 해체하
고 반대하는 새 노회의 조직을 제안했던 한상동 목사는 결코 분열주의자나 완전주의자가 아
니었다고 변호한다(13,3,3).

저자는 참 교회는 ‘한 거룩한 보편교회’임을 고백하면서 이를 한국교회사에서 입증하려
고 한다. 이 문제를 저자는 교회연합의 관점에서도 풀어간다.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륙
의 개혁주의 신학에 영미의 청교도적인 경건생활을 가미한 입장을 가졌다. 그러나 이들이
장로교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정체성을 지키기보다는 보수라는 틀 안에서 교파의 울을 자유
롭게 넘나드는 당시 미국적인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
론이나 교리문제에 있어서 매우 너그러운 포괄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평양신학교는 한국의 맥코믹신학교라는 별명을 받았는데, 당시 맥코믹신학교가 있던 시카고
는 무디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다. 무디는 교파와 교리와 신앙고백을 불필요하게 여겼고 그
신학교에는 초교파적인 복음주의의 분위기가 있었다. 또한 저자는 미국 북장로교회 안에 있
었던 회중교회와의 연합 시도와 분열의 역사를 살피면서, 보수적인 구학파의 세력은 약화되
고 신학적인 포괄주의를 표방하는 신학파가 점차 득세하였음을 지적한다. 미국 교회사를 개
괄하는 이유는 신앙고백과 교리를 초월한 교회일치운동의 근원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893년에 조직된 선교공의회는 장로교 정치체제를 고수하지만 신앙고백은 언급하
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결정한 선교지 분할정책은 경쟁과 마찰, 재정낭비를 막는 이점이 있지만, 교회의 역
사와 교리를 중시하지 않는 복음주의적 영향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또 선교사들이 성찬을
중시하지 않은 것도 복음주의의 영향이며, 성례를 가견적 말씀으로 보는 개혁주의의 전통과
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저자는 1907년 부흥운동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경
험적 신앙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신앙고백적 측면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부흥사의 배경이 감리교, 성결교라 할지라도 강사로 초청하는 전통의 기반이 되었다고 본
다. 이런 입장에서 평양 장대현교회와 산정현교회가 1932년에 신비주의자 감리교 이용도 목
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가졌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1905년부터 하나의 대한예수교회를 세우려는 일치운동을 한 것은 개혁주
의 교회를 건설하려는 의지가 박약하고 아주 감상적인 착상이었으며, 30년대의 장감 연합
의 시도가 좌절된 것을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보며(p.217), 30년대에 나타
난 분파주의자들은 교회론의 결핍의 소산이라고 보았다(p.202). 저자가 연합 자체를 부정적
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고백에 기초하지 않은 연합을 비판하고 신앙고백에 기초한
교회의 정체성의 확보를 강조한다.

이런 입장에서 저자는 오히려 축출당한 고신교회를 한 ‘거룩한 보편교회’(p.394)라고 지
칭한다. 고신교회의 보편성은 성경적 진리와 사도적인 신앙을 가진 세계교회와 처음부터 교
류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고신교회는 개혁주의 교회로서 성경과 순수한 말씀전파에
기초하여서 박태선, 라운몽, 문선명 등의 이단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교회가 세계교회와 교류한 것은 그 교회가 보편교회임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혁의 관점’에서 교회사를 파악하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하여 개혁하는 교회로 출
발한 고신교회의 현재를 보여주면서 왜 개혁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고신교회 50
년 역사는 개혁과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저자는 지난 50년간 고신교회가
어떤 시련을 안팎으로 당하였고, 그 가운데서 어떻게 전진하면서 지금까지 왔는가를 제시한
다. 저자는 세속법정에서의 성도간의 송사문제, 주일성수 문제로 인한 시험, 신학교와 고신
대학교와 복음병원을 중심으로 일어난 다양한 시험들과 교회 안에서의 세속화의 확장 등을
진솔하게 기술하면서 교회사가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이미 합동하고 환원하는 과정(1960-1963)에서 진리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신학과 신앙과 삶
의 조화를 잃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고신교회의 첫 10년을 순수의 시대였다고 평
가한다(p.466). 따라서 지난 50년 동안 고신교회가 한국 장로교회의 개혁이라는 사명을 잘
수행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고 쓴다. 그럼에도 고신교회를 통하여 한국교회 속에 참된 개혁
주의 교회건설이라는 선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이 은혜로 돌보아주시고 ‘촛대’를 옮기지
않으셨다고 함으로써 고신교회가 앞으로 힘써야 할 개혁적 사명에 대한 확신을 표현한다.
개혁신앙과 신학을 중심으로 교회사를 파악하는 저자는 역사적인 개혁주의가 간헐적으로 사
역한 전도자들을 통하여 미국 선교사들의 입국 이전에 한국에 전해졌다는 사실을 애써 부각
시킨다.

최초로 한국땅을 밟은 서양인들은 항해 중에 난파한 화란인들인데, 이들이 화란 개혁교회
교인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화란 선교협회의 파송을 받았던 독일 경건주의 선교사
구츠라프도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섭리를 믿은 칼빈주의자였다고 본다. 최초의 순교자였
던 토마스 목사도 회중교회 목사였으나, 그의 신앙과 신학은 칼빈주의적이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는 초기에 개혁파와 접촉하였으나, 이후에 개혁주의 신학이 제대로 소개되거나 정
착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가령 평양신학교가 외국어나 성경원어를 등한시한 것은 개혁주
의 전통에서 어긋난다. 저자가 말하는 개혁주의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신조를 따라 교회
를 세우며 문화적인 책임을 다하는 전통을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1937년 제26회 총회가 농촌부를 폐지한 것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다(p.184). 즉 농촌운동이 사회복음주의적 경향을 띄자 진보적인 송창근 목사도 복음
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초기 한국교회는 영적 공
동체인 교회의 사명과 신자가 세상 속에서 해야 하는 사명에 대한 개혁주의적인 견해를 갖
고 있지 않았다고 본다.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개혁주의 영역 주권의 원리에서 볼 때 고신
교회가 고신대학교를 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한다(p.477).

고신교회가 50주년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시점에 때맞추어 이와 같은
고신교회사가 출판된 것은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출옥성도나 어떤 인간이
아니라 고신교회를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보존하신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
으셔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주 뛰어난 사관
이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이 위기를 당한 이때에 한국교회사로부터 고신교회의 출발을 조명
하고 계속적인 발전과 시련을 살펴서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이 책은 고신교회의 직분자 뿐 아
니라 모든 성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많은 이들이 읽고 자신을 반성하고 교회를 개혁하
는 계기로 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렇게 큰 장점을 가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적받을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고
신교회를 한 거룩한 공교회로 보는 교회관이 폐쇄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고신교회
는 해방 후 장로교사에서 주동적 역할을 하다가 결국은 국지적인 교파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고신교회사의 기술에서 60년대의 승동측과 합동과 환원 이후의 한국 장로교의 역사
가 빠져있으며, 저자가 건전한 연합운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한국의 다른 교파에 대
해서 고신교회가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연합운동을 넘어서 교
리의 순수성에 입각한 교회일치 운동을 권하는 적극성을 보이면 이런 오해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되는 것’(요17:22)은 한국에서 고신교회가 지닌 막중한 사명이라 하겠다.
이런 사명을 전면에 부각시키면 초기처럼 한국장로교회 전부를 아우르는 고신교회의 역할
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합동을 결정한 1960년도 제10회 총회가 개교회의 입장을 묻지 않은 교권 중심의 추
진이었다고 비판한다(p.440). 지난날 교권의 전횡에 큰 피해를 본 고신교회의 지도자들이
역사의 교훈을 쉽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장로교회 정치의 장점을 염두에 두고서
그후의 역사에서도 계속 비판적인 평가를 하였다면, 현재 고신교회 안에 나타나는 정치적
혼란을 파악하고 막는데 일조가 되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환원에 대한 평가를 살필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주님
은 개혁신학의 파수와 전수를 위해 고려신학교를 다시 열게 하시고 진리운동의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기를 원하셨다고 평한다(p.462). 우리도 동의하는 바이다. 성급한 합동 결정과 환
원 선언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정당하다. 그러나 합동 이전에 고신교회를 떠났거나 환원하
지 않은 교회들 그리고 지난 50년 역사에서 정당한 권징 외에 자의나 타의로 고신교회를 떠
난 교회와 교인들이 고신교회에 대하여 가진 태도와 비판도 실었으면, 건설적인 교회개혁
을 위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서 밖에서 고신교회를 비판하는 내용들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변호와 동시에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는 면이 약한 것도 아쉽다.

저자는 영역주권에 입각한 개혁주의 문화관에 근거하여 현재 고신대학교의 총회 직영에 대
해서 비판적 평가를 하면서도, 신자의 세상속의 사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별다른 언급을 하
지 않는다. 현재 고신교회가 처해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저자를 향하기보다는 새로운 50년을 향하여 나아가는 후배들에게 주
어진 과제라고 여기면서 목사와 장로는 물론 모든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두가지를 언급하면서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편집상의 누락인지 몰
라도 속표지와는 달리 바깥 표지에는 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간
행된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50주년 기념 대회시에 빠진 것은 저자에게는 아주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고신교회의 역사를 담은 CD와 더불어 우리에게 자긍심을 회복시켜
주며, 50주년 대회를 후대에 남겨주는 좋은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장로교회사, 고신교회 50주년 기념 1952-2002. 서울: 총회출판국, 2002)


유 해 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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