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 타개의 대안은 없는가? - 범교단적인 자문 기구 구성을 제안함 투고

        2003년 3월 29일 기독교보

                난국 타개의 대안은 없는가? - 범교단적인 자문 기구 구성을 제안함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수)

        2001년 연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교육부의 관선이사 파송에 대한 소문이 이제는 소문이 아니라 점차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러는 마지 못해서, 더러는 쾌히 관선이사의 파송을 최선의 해결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럴 경우 더러는 고려학원 산하에 있는 교육기관과 부속기관들이 지닌 재산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신교회의 50년 역사를 강하게 결정하였던 개혁신학과 개혁주의 문화관의 위기를 뜻한다. 너도나도 개혁교회를 부르짖고 있는 이 때에 ‘개혁’이라는 신학적이고 교회적인 용어를 가장 먼저 이해하고 가장 넓게 보급하였던 고신교회가 가장 덜 개혁적인 교회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의 위기이다. 장로교회는 정교분리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데, 관선이사가 파송되면 신학교육은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관선이사의 파송은 고신교회의 바벨론 포로를 뜻할 것이다. 설령 관선이사가 파송되지 않는다 하여도 고신교회는 과거 50주년을 돌아보면서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참회와 금식을 선포해야 한다. 누구나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하고 있겠지만 회개와 공개적인 토론과 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1.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의 역사로부터 회개와 반성이 시작되어야 한다
        고신대학교와 대학병원인 복음병원은 고려신학교를 모체로 하고 있다. 고려신학교만이 있을 때에도 신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문제와 분쟁이 있었다. 그런데 고려신학대학의 설립 시도는 신사참배 거부를 기초로 삼았던 고신교회의 순수성과 정체성에 대한 강한 시험대였다. 신학교는 교단 정치의 핵심에 서게 되었고 고신교회는 분열의 아픔을 겪었다.그 이후 교단의 관심과 정치의 중심은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으로 옮겨졌다.
        우리는 신학교가 왜 있어야 하는지, 대학교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지, 왜 교회가 병원을 경영해야 하는지를 본질적으로 반성한 적이 없다. 신학교육의 주체는 교회이기 때문에 신학교의 존재는 이 상황에서 덮어두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정말 기독교고등교육의 주체인가? (유해무, “기독교고등교육, 교회의 책임인가”, www.kts.ac.kr, 자료실, 논문 항목 참고) 대학교를 갖지 않으면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인가? 교회가 수익기관인 병원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것이 얼마나 교회의 본질에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가? 칼빈주의를 문화적 기독교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정당한가?
        이런 주제들은 깊은 반성과 진지한 토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금은 단지 문제로 제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첫 계명의 파수였던 신사참배 거부 정신에서 볼 때,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이 고신교회 역사에서 ‘우상시’된 적은 없는가? 언약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네 자손’의 하나님도 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와 자손이 우거할 땅도 약속하였다. 언약의 핵심 내용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하나님 자신’이며, 씨와 땅은 이를 위하여 수반되는 부가적인 약속일 뿐이다. 그러나 이 순서가 반전되면 ‘나 외는 다른 신이 없다’는 첫 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가 등장한다. 아브라함이 당한 가장 큰 시험이 무엇이었던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바벨론 포로는 부가적인 것에 생사를 걸었던 후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징벌과 시험이었다. 그리고 소망이었으니 귀환의 복음이 미리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옛길로 돌아올 때에만 소망이 있다(렘 6:16). 첫 계명의 준수였던 신사참배 거부정신이 제대로 신학화되어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었는지를 살피면서 회개해야 한다. 땅과 씨가 없어도 여호와만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 그럴 때에 신학교가 다시 ‘광복동 시절’로 돌아간다 하여도 우리는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렘 5:15-18; 합 3:16-19).

        2. 모든 책임 당사자들은 논쟁을 중단하고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회개와 금식을 할 때 언약의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인 고신교회를 사랑하셔서 포로 생활 없이 구원하여 주실 수도 있다. 자기 피로 우리 교회를 사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업인 고신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연하게 금식과 회개를 선포할 수 없다. 고신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다 통회하도록 문제를 알려야 한다.
        언약의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던 시절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선배들의 고난을 통하여 참 교회의 모습을 가르쳐주셨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교인들은 알지 못하면서 고신교회에 속한 교인이기 때문에 복음병원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하여 참 교회의 상실을 목도하고 있다. 복음병원의 위기에 직접, 간접으로 연관된 책임 당사자들은 지도자와 책임자로서 교인들보다 더 회개하고 통곡하면서 사실의 진상을 모든 교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진찰하여 원인을 밝혀내듯이 우리 교회가 앓고 있는 위기인 병의 원인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숨겨진 모든 것을 들추어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도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밝힐 것은 밝히고 책임을 질 것은 지고 용서받을 것은 용서할 때 희년의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교회의 학교인 신학교와 마찬가지로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도 교인들의 기도와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주체가 누구이든지 간에 위기에 처한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을 살리기 위해서 고신교회에 속한 모든 교인들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책임자들에게는 의무요 교인들에게는 권리이다. 알 권리를 누릴 때 헌금의 의무도 진다.
        고신대학교의 확장,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설립 및 확장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교인들은 이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관여한 적이 없다. 초기에는 신학교수로 구성된 교수회가 주동적이었고, 주로 총회와 이사회가 주역으로 일하였다. 복음병원이 수익기관이 아니라 구호를 통한 전도기관이었을 때에는 온 교회와 교인들이 신학교와 복음병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헌금하였다. 왜 교회의 공기도에서 복음병원을 위한 기도가 사라졌는가. 전도기관과 수익기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교인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또 대학병원이 되고 난 뒤에 어떤 일이 얼어났는지도 알려야 한다. 물론 알리기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세세하게 모든 것을 다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공개하고 설명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3. 이를 위하여 기독교보는 보다 더 적극적인 보도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 때문에 온 교회가 금식과 회개에 참여하고 책임 당사자가 교인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는 데에 기독교보가 중요한 매체가 될 수 있다. 미국 기독개혁교회는 기독교대학을 직영할 것이냐를 두고서 30년간 토론하였다. 총회는 연구위원회를 두고서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그러나 더 오랫동안 교회의 언론 매체를 통하여 이보다 더 많은 격한 토론이 오고 갔다. 교인들이 토론에 참여하여서 성경의 교훈과 개혁파 전통을 살피면서 이견을 좁혀갔다. 그러나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의 역사는 이런 공개적인 토론과는 무관하게 교수회의나 총회나 이사회가 결의하고 시행한 역사이다. 교인들의 참여는 송두리채 배제된 역사였다.
        공개적인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는 고신교회 안의 언론 매체는 기독교보이다. 기독교보는 위기를 경고하였고 위기가 올 때마다 그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주필은 사설에서, 편집국장은 칼럼에서 위기의 소식과 이에 대한 평가의 글을 게재하였다. 그럼에도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고신교회 교인들은 복음병원의 위기에 대한 소식을 기독교보보다는 다른 교계 신문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교단지로서 지켜야 할 코드가 있고 기독교보가 이점에서 신중하게 대처하였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기독교보 홈페이지에는 이 위기와 관련된 토론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기독교보가 현재의 위기와 관련된 토론을 일절 사양한다는 사고를 읽은 적이 없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교인들의 무관심을 잘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보는 이에 대한 기획 기사를 계획하고 교인들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가령 관선이사의 파송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문가의 의견을 교인들에게 알려주면 좋을 것이다.

        4.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기구 구성을 제안한다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을 위하여 수고한 분들이 학교와 병원 안팎에 많이 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책임 당사자로서 개인적인 어려움을 당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이런 분들의 수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도리어 위기만이 더 고조되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이 분들을 돕기 위한 방법이 없겠는가.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한시적인 자문기구의 구성을 제안한다. 자문기구는 자문만 할 뿐 어떤 권한도 갖지 않는다. 다만 고신교회에 속한 교인 가운데서 지금까지 직접, 간접적으로 대학교와 병원문제에 관여한 적이 없는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먼저 대학경영의 경험이 있는 교인과 의과대학 교수인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분들은 대학교수와 의사들의 입장을 살필 수 있다. 노조의 입장을 살피기 위해서는 대규모 노사분규를 겪은 현장에서 협상의 경험이 있는 기업체 임원이나 노조 운동 경력자를 청할 수 있다. 취약한 재정 상태를 진단하기 위하여 세무관서나 은행 또는 회계 법인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분을 찾아 세밀한 분석과 대안의 모색을 요청할 수 있다. 학교법인의 법적인 문제를 살피기 위하여 교육법과 여타 법에 정통한 교육부 관료나 변호사를 찾아 위촉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 필요한 분야와 전문가를 더 발굴할 수 있다.
        이것은 제안일 뿐이다. 이런 전문가를 찾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이분들이 자주 회합을 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이를 위하여 고신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 중에서 신앙과 덕망을 겸비한 한 분을 추대하여 이 일에 전적으로 투신하면서 선정된 전문가들과 밀접한 접촉을 통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어떤 대안을 제안하고 이사회 등 책임 기관이 이를 집행하도록 자문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5. 글을 맺으면서
        우리의 위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계속될 수 없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고수할 것은 고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선배들의 후배답게 회개해야 한다. 나아가 구체적인 원리가 제시되고 대의가 취합되어야 한다. 복음병원을 살려야 한다면 살려야 하고 관선이사 파송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어쨌든 모든 교인들이 참여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또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구성하여 문제를 정확하고 솔직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기독교보가 대대적인 토론의 장이 될 것을 기대한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