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교황 베네딕토 16세 투고
2005.04.28 00:58 Edit
(합동측 교단지 기독신문 2005,4,27일자에 기고한 글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1927-)
유 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수)
4월 24일 라칭어 추기경이 제 265대 교황으로 취임했다. 그가 제의 위에 양털로 짠 띠와 그 위에 세 개의 핀을 꽂고, 베드로의 반지를 받아 끼자, 12명이 꿇어 반지에 입을 맞추었다. 양털은 잃어버린 양을, 띠는 그들을 목에 멘 목자를, 핀은 십자가의 고난을, 반지는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12명은 12사도를 상징한다. 취임식은 교황이 예수님의 대리자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교회를 한 손에 쥐고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세계 언론은 세속주의와 종교적 상대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를 이을 만한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 보도했다. 전통을 사수하면서도 개혁과 개방 정책을 펴나가기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추기경회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과 후임 교황 선출 회의에서 설교를 맡았던 보수파 라칭어를 단 4번째 회의에서 선출함으로써 로마교회의 단합을 과시했다.
이런 연고로 라칭어는 과도기적인 교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바티칸의 교리청을 24년간 맡아서 전임 교황의 보수 성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신학자였다. 그런데도 그가 초기단계에 선출된 것은 내부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4월 16일에 78세가 되는 그는 지난 275년 동안 최고령으로 선출된 교황이다. 그런 그를 선출한 것은 급격한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많은 축하와 기대 가운데서도 가톨릭 내의 여성운동이나 해방신학, 진보적인 윤리관을 가진 개혁파는 아주 비판적이다. 독일의 한 좌파 신문은 일면을 새까맣게 만들고, ‘오, 나의 하나님, 라칭어가 새 교황이라니요’만을 인쇄할 정도였다. 교황무오설을 비판하다가 1979년에 가톨릭신학을 가르칠 자격을 박탈당한 한스 큉은 그의 선출을 ‘대실망’이라 논평했다.
추기경회의의 폐회 미사가 그 의장인 라칭어가 교황으로서 행한 첫 공식 업무였다.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추종자들의 가시적인 연합의 재구축을 쉬지 않고’ 추구함이 자신의 첫 과제라고 말하면서, 타종교 뿐 아니라 젊은이와도 진지하게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올해가 가톨릭의 현대화와 개혁을 결의했던 제 2바티칸회의(1962-1965)가 폐회한 40주년임을 상기시켰다. 젊은 사제로서 자기 주교의 자문역으로 그 회의에 참석한 그는 개혁적이었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던 라칭어는 1968년의 학생운동이 막시즘으로 무장하고서 전통적인 신앙을 위협할 때에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면서 보수적인 교리 수호자로 변하였다. 그 시절 튀빙겐대학교에서 그와 함께 가르치면서 고민했던 독일 복음주의 신학자 바이에르하우스의 말처럼, 교황은 상대주의의 위협 속에서도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베네딕토 16세는 낙태, 동성애, 안락사 등에 있어서 전임 교황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라칭어가 교황으로 취임한 것을 환영한다.
그렇지만 그의 이런 입장은 로마교회의 유구한 전통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추기경회의 폐회 미사에서 갓 선출된 교황은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약속(마 16:16-19)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에, 주님은 교황 자신을 대리자로 세우시면서 만인이 신뢰 가운데 의지할 ‘반석’으로 삼아주셨다고 선언했다. 취임 설교에서도 그는 띠와 반지의 상징적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그가 기독교계의 단합을 강조한다 하여도, 그것은 자신이 유일한 목자요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한 교회이고, 다른 교회, 곧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라는 전통 안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교황의 보수성은 윤리적으로는 제한된 기대를 자아내지만, 교리적 보수성은 종교개혁이 정당했음을 입증할 것이다. 그리고 교황이 취할 강요된 개혁정책은 가톨릭의 교리적, 기구적 와해를 가져올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1927-)
유 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수)
4월 24일 라칭어 추기경이 제 265대 교황으로 취임했다. 그가 제의 위에 양털로 짠 띠와 그 위에 세 개의 핀을 꽂고, 베드로의 반지를 받아 끼자, 12명이 꿇어 반지에 입을 맞추었다. 양털은 잃어버린 양을, 띠는 그들을 목에 멘 목자를, 핀은 십자가의 고난을, 반지는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12명은 12사도를 상징한다. 취임식은 교황이 예수님의 대리자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교회를 한 손에 쥐고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세계 언론은 세속주의와 종교적 상대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를 이을 만한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 보도했다. 전통을 사수하면서도 개혁과 개방 정책을 펴나가기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추기경회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과 후임 교황 선출 회의에서 설교를 맡았던 보수파 라칭어를 단 4번째 회의에서 선출함으로써 로마교회의 단합을 과시했다.
이런 연고로 라칭어는 과도기적인 교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바티칸의 교리청을 24년간 맡아서 전임 교황의 보수 성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신학자였다. 그런데도 그가 초기단계에 선출된 것은 내부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4월 16일에 78세가 되는 그는 지난 275년 동안 최고령으로 선출된 교황이다. 그런 그를 선출한 것은 급격한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많은 축하와 기대 가운데서도 가톨릭 내의 여성운동이나 해방신학, 진보적인 윤리관을 가진 개혁파는 아주 비판적이다. 독일의 한 좌파 신문은 일면을 새까맣게 만들고, ‘오, 나의 하나님, 라칭어가 새 교황이라니요’만을 인쇄할 정도였다. 교황무오설을 비판하다가 1979년에 가톨릭신학을 가르칠 자격을 박탈당한 한스 큉은 그의 선출을 ‘대실망’이라 논평했다.
추기경회의의 폐회 미사가 그 의장인 라칭어가 교황으로서 행한 첫 공식 업무였다.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추종자들의 가시적인 연합의 재구축을 쉬지 않고’ 추구함이 자신의 첫 과제라고 말하면서, 타종교 뿐 아니라 젊은이와도 진지하게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올해가 가톨릭의 현대화와 개혁을 결의했던 제 2바티칸회의(1962-1965)가 폐회한 40주년임을 상기시켰다. 젊은 사제로서 자기 주교의 자문역으로 그 회의에 참석한 그는 개혁적이었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던 라칭어는 1968년의 학생운동이 막시즘으로 무장하고서 전통적인 신앙을 위협할 때에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면서 보수적인 교리 수호자로 변하였다. 그 시절 튀빙겐대학교에서 그와 함께 가르치면서 고민했던 독일 복음주의 신학자 바이에르하우스의 말처럼, 교황은 상대주의의 위협 속에서도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베네딕토 16세는 낙태, 동성애, 안락사 등에 있어서 전임 교황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라칭어가 교황으로 취임한 것을 환영한다.
그렇지만 그의 이런 입장은 로마교회의 유구한 전통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추기경회의 폐회 미사에서 갓 선출된 교황은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약속(마 16:16-19)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에, 주님은 교황 자신을 대리자로 세우시면서 만인이 신뢰 가운데 의지할 ‘반석’으로 삼아주셨다고 선언했다. 취임 설교에서도 그는 띠와 반지의 상징적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그가 기독교계의 단합을 강조한다 하여도, 그것은 자신이 유일한 목자요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한 교회이고, 다른 교회, 곧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라는 전통 안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교황의 보수성은 윤리적으로는 제한된 기대를 자아내지만, 교리적 보수성은 종교개혁이 정당했음을 입증할 것이다. 그리고 교황이 취할 강요된 개혁정책은 가톨릭의 교리적, 기구적 와해를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