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파가 여전히 존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 신사참배 거부정신과 그 신학화와 생활화의 실패 투고
2003.04.23 22:48 Edit
고려파가 여전히 존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유해무
필자는 2000년 총회 신학부 주최 하기목회대학원에서 "왜 여전히 고려파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을 하였다. "고려파가 여전히 존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는 그 특강 중에 필자가 제기한 질문 중 하나였다. 필자는 그 때에도 고려파의 정체성의 상실 위기에 대하여 강하게 경고하였는데, 이제는 이 정체성의 향방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비교적 긴 원고가 완성되어 있지만 몇 차례로 나누어 게재하려고 한다.
결국 학교법인 고려학원에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3년 4월 1일자로 고신 총회가 선출한 이사들의 등록을 취소하였다. 학교법인과 고신대학교의 운영권이 "신탁통치" 하에 들어갔다. 학교법인을 세우고 이사들을 선임하여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고신교회의 주권 자체가 상실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그 주권을 자주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당분간"이라는 말에서부터 위로를 받을 형편이 아니다. 신탁통치 하에 있게 될 대학교나 복음병원과는 달리 고신교회와 신학 및 신학교육은 "바벨론 포로" 하에 처해졌다. 고신교회와 신학대학원과의 법적인 관계는 이 기간동안은 끊긴 상태를 맞게 된다. 이것은 정교분리의 장로교 기치의 위기이다. 관선이사를 파견한 교육부는 이 점에 대하여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복음병원의 재무 구조의 정상화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고신교회 역시 신학과 신학교육의 바벨론 포로가 어떠한 수욕인지를 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여전히 정체성을 지닌 교회라면 천안을 포기하고 신대원의 인가를 반납하는 것이 그나마 정직할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와 그 원인을 고신교회 50년 역사로부터 추적하고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가 고신교회의 정체성을 대변했던 신사참배 거부 정신의 상실이요, 따라서 고신교회는 당분간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참담한 판단에서 이 글을 쓴다.
1. 신사참배 거부정신과 그 신학화와 생활화의 실패
고신교회는 단군전 건립을 우상숭배로 여기고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경각심을 촉구하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선배들의 후배답게 신앙의 용기를 발휘하였다. 그러나 밖에서 이처럼 신사참배 거부 정신을 전파하는 것에 걸맞게 고신교회가 내부적으로도 이 정신을 철저하게 지켰는가. 관선이사의 파견은 고신교회 전부를 위기에 몰아넣으면서 참배거부로 요약되는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신사참배거부정신은 시대적 대세를 거슬리는 신앙적 결단이요 행동이었다. 이 투쟁이 외적인 핍박과 고립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내적으로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시는 언약의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적 결단이 전제되어 있다. 감옥의 고난을 받았던 선배들은 해방으로 출옥하면서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였다. 고신교회의 특색은 회개운동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법이 되었고 이 법을 범하는 모든 행위, 그 중에서도 제 1계명을 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솔선하여 회개하고 생사를 걸고 고난 받으며 경고하는 것이 고신교회의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려던 고신교회는 한국장로교회로부터 축출 당하였고 자체적인 갈등과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면서 승동측과 교회 연합을 성취하였다. 그렇지만 이 연합은 "원리 없이" 이루어졌다. 곧장 환원하면서 거부 정신의 결실이었던 고려신학교는 비로소 "교회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이와 거의 동시에 대학인가를 취득하기 위하여 참배거부정신과는 배치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내부적인 문제와 갈등이 교육부라는 세속 권한을 가운데 놓고서 서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외적 알력 현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 속에서 존재해야 하지만 그 행위와 존재의 정당성은 항상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온다. 교회와 그 기관은 세속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교회가 세속법을 준수해야 하는 동기와 기준은 세속법이 제시하지 않는다.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삼는 세속법이 아니라 마음과 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법이 기준이다. 따라서 교회는 "법 없이" 살아가야 한다. 이 말은 교회가 세속법을 무시한다는 말이 결코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현재의 위기를 당한 고신교회는 하나님의 법보다 세속법을 앞세웠다. 이웃사랑의 법과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겨야 한다는 황금률이 아니라 교육법의 자구적 해석에만 매달리면서 각자의 권익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공략하였다. 대학을 세우고 병원을 수익기관과 대학병원으로 만들려 했던 의도 자체와 그리고 이 고등교육기관의 운영이 신사참배거부 정신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경계 정신이 없었다. 대학을 세우려던 분들은 세속법에 부합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은 말할 필요도 없고 세속법까지 어겨가면서 계획을 강행하였다. 공개적인 토론이 없었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포용성도 부족하였다. 이런 계획을 막고 반대한 세력도 하나님의 법을 회복하는 개혁을 시도하기보다는 같이 세속법에 호소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구약적 율법에 매여 있으면서 이 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후배들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이런 공방에 출옥성도들 뿐 아니라 신학교의 설립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순교정신을 배웠다는 고신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다 이 공방에 개입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고신교회를 지금까지 혼란으로 몰아넣고 이 위기를 자초한 계파정치가 형성된 것이다.
고신교회가 현재 당한 위기는 신사참배거부정신의 신학화의 실패를 말한다. 글의 성격상 매도하는 듯한 인상을 풍길지도 모르겠지만,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의 위기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이 방식이 아니고는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인물이나 정치계파를 들먹이면서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이들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며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일차적인 의도는 거부정신의 "신학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어떤 신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었고, 이런 상태에서 고신대학교와 병원이 확장되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을 강조할 따름이다. 결국 신학과 원리는 무시되었고 계파 위주의 인맥 구성을 통한 교회정치가 고신교회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출옥성도들이 거부 정신을 신학화할 수 있을 정도로 신학적 수업을 받지 못했다고 이들을 변호할 수도 있다. 가령 독일 고백교회는 자신들의 신앙 투쟁을 신학화하였고 전후에는 이를 기초로 하여 포용적 자세를 취했으나, 고려파 선배들은 신학적 훈련이 부족하였고 따라서 포용성을 갖지 못한 "분리주의적 교회관"을 가졌다고 변호를 위장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그렇게 말하는 후배들은 선배들을 비난할 만큼 신학적으로 더 훈련받았고 그래서 선배들보다 유능하게 거부정신을 신학화하였는가.
신학과 원리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벌여놓은 분들이나 이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분들이나 동일하게 원리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분석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인적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일을 추진하거나 이를 쾌히 여기지 않으면 인적 청산을 개혁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것은 현재의 고신교회 내의 상황을 대변한다.
유해무
필자는 2000년 총회 신학부 주최 하기목회대학원에서 "왜 여전히 고려파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을 하였다. "고려파가 여전히 존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는 그 특강 중에 필자가 제기한 질문 중 하나였다. 필자는 그 때에도 고려파의 정체성의 상실 위기에 대하여 강하게 경고하였는데, 이제는 이 정체성의 향방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비교적 긴 원고가 완성되어 있지만 몇 차례로 나누어 게재하려고 한다.
결국 학교법인 고려학원에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3년 4월 1일자로 고신 총회가 선출한 이사들의 등록을 취소하였다. 학교법인과 고신대학교의 운영권이 "신탁통치" 하에 들어갔다. 학교법인을 세우고 이사들을 선임하여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고신교회의 주권 자체가 상실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그 주권을 자주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당분간"이라는 말에서부터 위로를 받을 형편이 아니다. 신탁통치 하에 있게 될 대학교나 복음병원과는 달리 고신교회와 신학 및 신학교육은 "바벨론 포로" 하에 처해졌다. 고신교회와 신학대학원과의 법적인 관계는 이 기간동안은 끊긴 상태를 맞게 된다. 이것은 정교분리의 장로교 기치의 위기이다. 관선이사를 파견한 교육부는 이 점에 대하여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복음병원의 재무 구조의 정상화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고신교회 역시 신학과 신학교육의 바벨론 포로가 어떠한 수욕인지를 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여전히 정체성을 지닌 교회라면 천안을 포기하고 신대원의 인가를 반납하는 것이 그나마 정직할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와 그 원인을 고신교회 50년 역사로부터 추적하고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가 고신교회의 정체성을 대변했던 신사참배 거부 정신의 상실이요, 따라서 고신교회는 당분간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참담한 판단에서 이 글을 쓴다.
1. 신사참배 거부정신과 그 신학화와 생활화의 실패
고신교회는 단군전 건립을 우상숭배로 여기고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경각심을 촉구하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선배들의 후배답게 신앙의 용기를 발휘하였다. 그러나 밖에서 이처럼 신사참배 거부 정신을 전파하는 것에 걸맞게 고신교회가 내부적으로도 이 정신을 철저하게 지켰는가. 관선이사의 파견은 고신교회 전부를 위기에 몰아넣으면서 참배거부로 요약되는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신사참배거부정신은 시대적 대세를 거슬리는 신앙적 결단이요 행동이었다. 이 투쟁이 외적인 핍박과 고립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내적으로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시는 언약의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적 결단이 전제되어 있다. 감옥의 고난을 받았던 선배들은 해방으로 출옥하면서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였다. 고신교회의 특색은 회개운동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법이 되었고 이 법을 범하는 모든 행위, 그 중에서도 제 1계명을 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솔선하여 회개하고 생사를 걸고 고난 받으며 경고하는 것이 고신교회의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려던 고신교회는 한국장로교회로부터 축출 당하였고 자체적인 갈등과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면서 승동측과 교회 연합을 성취하였다. 그렇지만 이 연합은 "원리 없이" 이루어졌다. 곧장 환원하면서 거부 정신의 결실이었던 고려신학교는 비로소 "교회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이와 거의 동시에 대학인가를 취득하기 위하여 참배거부정신과는 배치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내부적인 문제와 갈등이 교육부라는 세속 권한을 가운데 놓고서 서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외적 알력 현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 속에서 존재해야 하지만 그 행위와 존재의 정당성은 항상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온다. 교회와 그 기관은 세속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교회가 세속법을 준수해야 하는 동기와 기준은 세속법이 제시하지 않는다.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삼는 세속법이 아니라 마음과 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법이 기준이다. 따라서 교회는 "법 없이" 살아가야 한다. 이 말은 교회가 세속법을 무시한다는 말이 결코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현재의 위기를 당한 고신교회는 하나님의 법보다 세속법을 앞세웠다. 이웃사랑의 법과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겨야 한다는 황금률이 아니라 교육법의 자구적 해석에만 매달리면서 각자의 권익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공략하였다. 대학을 세우고 병원을 수익기관과 대학병원으로 만들려 했던 의도 자체와 그리고 이 고등교육기관의 운영이 신사참배거부 정신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경계 정신이 없었다. 대학을 세우려던 분들은 세속법에 부합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은 말할 필요도 없고 세속법까지 어겨가면서 계획을 강행하였다. 공개적인 토론이 없었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포용성도 부족하였다. 이런 계획을 막고 반대한 세력도 하나님의 법을 회복하는 개혁을 시도하기보다는 같이 세속법에 호소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구약적 율법에 매여 있으면서 이 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후배들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이런 공방에 출옥성도들 뿐 아니라 신학교의 설립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순교정신을 배웠다는 고신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다 이 공방에 개입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고신교회를 지금까지 혼란으로 몰아넣고 이 위기를 자초한 계파정치가 형성된 것이다.
고신교회가 현재 당한 위기는 신사참배거부정신의 신학화의 실패를 말한다. 글의 성격상 매도하는 듯한 인상을 풍길지도 모르겠지만,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의 위기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이 방식이 아니고는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인물이나 정치계파를 들먹이면서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이들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며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일차적인 의도는 거부정신의 "신학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어떤 신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었고, 이런 상태에서 고신대학교와 병원이 확장되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을 강조할 따름이다. 결국 신학과 원리는 무시되었고 계파 위주의 인맥 구성을 통한 교회정치가 고신교회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출옥성도들이 거부 정신을 신학화할 수 있을 정도로 신학적 수업을 받지 못했다고 이들을 변호할 수도 있다. 가령 독일 고백교회는 자신들의 신앙 투쟁을 신학화하였고 전후에는 이를 기초로 하여 포용적 자세를 취했으나, 고려파 선배들은 신학적 훈련이 부족하였고 따라서 포용성을 갖지 못한 "분리주의적 교회관"을 가졌다고 변호를 위장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그렇게 말하는 후배들은 선배들을 비난할 만큼 신학적으로 더 훈련받았고 그래서 선배들보다 유능하게 거부정신을 신학화하였는가.
신학과 원리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벌여놓은 분들이나 이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분들이나 동일하게 원리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분석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인적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일을 추진하거나 이를 쾌히 여기지 않으면 인적 청산을 개혁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것은 현재의 고신교회 내의 상황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