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길, 고난의 길 투고

 

예수님의 길, 고난의 길

SBS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보고.
유 해 무


        SBS는 4부작 ‘신의 길 인간의 길’을 서둘러 종영하였다.1) 한국교회가 취한 강한 대응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는 이런 프로그램에 놀라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아주 이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곱씹어볼 거리이기도 하다.


        1. 의심이 가는 제작 의도

        SBS의 의도는 방대한 답사와 현지 취재를 기초로 역사적 예수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학적인 기독교 교양 강좌가 아니다. 그랬다면 다른 종교의 반발을 유발했을 터이다. 방영 초기부터 나온 반응은 정반대인데, 개신교회가 크게 반발하였다. 상업 방송이 성탄절도 아닌 시절에 무슨 객관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하겠는가.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 그것도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왜 서로 질시하고 때로는 살인을 자행하는지를 두고 그 뿌리를 추적한다. 한편으로는 이 종교들의 교리와 실천의 분리 현상을, 다른 편으로는 이미 폐쇄성을 지닌 교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를 집중하여 분석하면서, 그중에서도 왜 한국교회가 폐쇄적이고 도발적인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기독교의 뿌리인 예수님은 허구이거나 역사적 인물이라 하여도 신격화된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기독교의 교리와 실천을 비판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의욕적으로 예수님을 비신격화하려는 의도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SBS의 의도에는 다분히 시사적인 정치적 측면도 있다. 즉 촛불집회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도발적인 선교의 배경에는 혈맹관계인 미국이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교회의 친미적 성향을 부각시킨다.


        2. 합리성을 앞세운 편파성

        ‘기독교 교리는 허구나 신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증하기 위하여 기독교 유적지 답사와 취재, 여러 학자들을 인터뷰한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이적과 기사,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 부활, 재림, 심판과 천국 등은 결코 기독교적이지 않고 독창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디오니시오스나 미트라스와 같은 신화적 영웅이나 성인과 동일시하려고 애를 쓴다.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에는 많은 영웅 신화가 있으며, 이것들을 유대적 배경으로 채색하여 역사적 예수가 출현하였다는 논리이다. 예수님께서 구약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합리성을 앞세운 편파성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이 프로그램의 관점은 종교 현상학이나 비교종교학이다. 예수님을 다양한 지역의 역사, 문화나 종교 속에다 분해시키고는 역사적 예수는 없다는 식이다. 광신적인 한국교회는 합리적이지 않고 신화 내지는 역사를 가장한 예수상(象)을 벗어던지고 합리적인 인간이 되라는 권면까지 담고 있다. 미국이 이슬람과 치르는 성전(聖戰)의 배경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선신과 악신의 이원론이 있다는 식이다. 과연 공중파 방송이 이런 식으로 편파적인 가치관을 방영하여도 되는가. 합리성을 앞세운 편파성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3. “온유와 두려움”(벧전 3:15)이 필요한 한국교회

        어쩌다 한국교회가 이런 지경까지 오고 말았는가. 일전에 다른 공중파 방송도 한국교회의 치부와 특히 소수의 목회자의 호화로운 사생활까지 들추어내었다. 한국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눈초리를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반성해야 한다.

        SBS 사옥 앞에서 교인들이 시위한 것이 어느 정도 ‘성경적’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윤리위원회에 제소하여 합리적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니 이보다는 더 “예수님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다.”(벧전 2:21) 예수님은 권세와 힘을 가지셨지만, 아예 사용하시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이 길을 걸어가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름이 폄훼를 당한다. 주후 120년경에 행한 最古의 설교를 읽어보자(제 2 클레멘스서 13장).

        “형제들아, 이제 길게 회개하자! 그리고 선을 향하여 바로 서자! 우리가 어리석음과 사악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전의 범죄를 지워버리자! 마음으로 회개하여 구원을 누리자! 사람에게 아부하거나 우리끼리만 기쁘게 하지 말고, 의를 위하여 외인들도 기쁘게 하여, 우리 연고로 하나님이 훼방을 받으시지 않게 하자! 여호와께서는,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어찌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느냐? 무엇이 더럽히는 것이냐? 내가 원하는 바를 행치 아니함이 곧 훼방이니라”(사 52: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 이방인들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말씀의 빼어남과 가치에 놀라지만, 우리의 몸가짐이 그 말씀에 합당하지 않음을 나중에 전해 듣고는 훼방의 기회로 삼아서 그 말씀은 신화요 사기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우리에게서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눅 6:32-34)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는다. 들을 때마다 이 말씀의 뛰어난 선하심에 놀란다. 그러나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우리를 조롱하기 시작하니, 곧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는다.”

        한국교회가 짓밟히고 있는 것을 그냥 ‘사단의 책동’이라고 일언지하에 단정하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영원불변한 진리이지만, 우리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받고 있지 않는지 베옷을 입고 살필 때이다. 우리가 가진 소망을 묻는 자에게 대답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다.”(벧전 3:15-16)


        4. 말과 실천의 변증학이 절실히 필요하다

        프로그램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터뷰에 응한 한국인 신학자들의 발언은 실망을 자아내었다. 게다가 해설자 문 성근씨는 유명 신학자의 자제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안팎으로 비판과 공격을 받는 시절이 되었다. “고난의 길”을 말과 실천으로 변증하여야 한다.

        먼저 말과 글로 진리를 변증해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고 교회가 고백하는 진리를 ‘합리적’으로 변증하는 학자와 교인을 양성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여러 차례 방송에서도 나온 장면인 ‘성령 충만’은 합리성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비난거리로만 남을 것이다. 특히 이번 방송에 대해서는 신약학자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이심을 온유하고 두려움으로 답하고 변증해야 할 거리가 많다.

        두 번째, 실천으로 변증해야 한다. 방송에 나온 어떤 한국인 신학자는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길임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알면, 교회와 신자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 폐쇄적이거나 독선적인 태도를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신자마다 왜 우리가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깊이 반성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겸손하게 실천해야 한다. 특히 교회가 세속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사회의 이념적 대결의 현장에 섣불리 교회의 이름으로 개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받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군림하려는 승리주의는 그 흔적이라도 제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말씀이 부족하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고난의 길이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고난의 길을 삶으로 실천하자. 교회는 항상 핍박을 받아왔고, 온유하고 두려움으로 핍박자를 “의인들의 회중”(시 1:5) 속으로 인도할 때에 부흥하였다. 한국교회는 확실하게 기로에 서있다. 흥분하지 말고 온유하게 고난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이심을 말과 실천으로 증거하자.


1) 2008년 6월 29일(일),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 7월 6일(일), “무함마드, 예수를 만나다”; 7월 12일(토), “남태양의 붉은 십자가”, “길 위의 인간”. 네 번 매 주일 저녁에 방영하려는 애초의 계획을 바꾸고, 속히 종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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