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연구와 신학의 자립 - 기독교보 투고

교부전집 ‘민녀’
  고려신학대학원 도서관은 뜻을 가지신 두 분의 성도로부터 현재까지 출간된 가장 방대한 교부전집을 기증 받았다. 이로써 고려신학대학원은 한국 개신교 신학교 중에 최초로 이 전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 전집은 아마 단일서로서는 가장 방대한 양을 담고 있는데, 도합 백만페이지가 넘는다. 이분들의 헌금은 계속 다른 교부 전집들과 라틴어로 된 중세신학과 개혁자들의 작품들 및 독일어, 불어와 영어로 된 기독교 고전들의 구입에 사용될 것이다.
  이번에 기증받은 교부전집은 편집자요 출판인이었던 이의 이름을 따라 ‘민녀’라고 통칭된다. 민녀(Migne, Jacques-Paul; 1800-75)는 불란서 신부였다. 1824년에 서품을 받았다. 1833년에 파리에서 언론인의 일을 시작하면서 신문과 잡지사를 창간하였다. 이것들은 폐간하고? 2000권에 이르는 대전집의 출판을 기획하였다. 이를 위하여 1836년에 파리 남부에서 완벽한 출판사를 설립하고, 300여명을 고용하여서 매 주당 1권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1868년에 엄청난 화재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을 때까지 그는 1000권을 출판하였다. 출판된 책들은대부분 기독교 고전들의 원전들이었고, 佛蘭西語 신학백과사전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그의 헬라/라틴교부 전집이 대표적이다. 민녀는 자기 이전의 단편적이거나 조직적인 편집본들을 합법적으로 이용하였다. 라틴 전통에 서 있는 그로서는 먼저 터툴리안에서부터 216년 작품에 이르는 라틴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의 작품들을 편집하였다. 이 라틴어전집은 218권에 달하고, 색인이 따로 4권에 이른다. 이 전집은 1844에서 1855년의 어간에 편집, 출판되었다. 그리고 헬라교부전집들은 교회사의 초기부터 1438년에 이르는 헬라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작품들을 166권에 담고 있다. 이 전집은 1857년에서 1866년의 어간에 출판되었다. 그리고 1879년에 3인의 편집자들이 2권에 이르는 헬라교부 색인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라틴어판에 대한 비평적인 보완전집이 1958년 이후에 5권으로 출판되었다. 이 양대 전집은 교부 П만?부활시키는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우리는 위에 언급된 전집, 색인 및 보완전집 등을 다 구입하였다.
  이 전집은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개인 소장자는 아예 없고, 유럽 대학 도서관이나 카톨릭 계통의 수도원에만 소장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 전집의 거래는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다만 수도원이 폐원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유럽의 수도원들은 이런 귀중본?가능하면 미국이나 비유럽권에 있는 카톨릭 계통의 신학교나 수도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자료실을 설립하기로 한 뒤 1년 만에 이 전집을 극적으로 구할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다른 자료들의 확보에도 어려움이 예상되기에, 우리는 삼위 하나님?선하신 인도하심이 우리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을 기도 드린다.

기독교고전자료실의 의미
이 전집과 고전 자료실은 우리 목회와 신학의 자립을 향하는 길목에서 필수 불가결한 동반자이다. 신학은 헬라어계에서 라틴어계로 그리고 종교 개혁을 통하여 개신교 중심의 신학 역사가 지속되었다. 17세기 이후 영국과 불란서를 거치면서 19세기 이후에는 독일어권 신학이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2차 대전 직후까지도 유럽 신학에 의존적이던 미국 신학이 이제는 세계 신학의 본류에 합류하였다. 물론 교회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신학의 발전은 교회의 융성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사상 가장 획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한한국교회이기에, 한국교회도 이제는 신학의 본류에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한국교회에게는 이것이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한국교회 내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신학적 자립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기회이고, 다른 편으로는 세계교회를 향?신학적 책임과 기여이다. 우리는 내부의 현안들 뿐 아니라 세계교회사라는 공교회적 책임을 지기 위하여 엄청난 추월을 시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세계 신학의 본류에 진입하려면, 첫째로, 우리는 신학하는 자세에서 ‘식민지 상황’을 버려야 한다. 왕성한 교회는 신학을 생산할 수 있지만, 여건상 그런 신학을 오로지 소비만 하는 교회도 있다. 신학의 생산에는 무기력하고 소비에만 관심을 가지는 자세는 치명적인 위험?내포하고 있다. 비록 같은 피라 할지라도 혈액형이 다른 피를 수혈할 경우 생명이 위협을 받듯이, 혈액형과 토양을 고려하지 않은 문자적 번역과 이에 기초하여 남의 이론을 답습하는 것은 고유한 혈액과 토양, 곧 교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신학과 목회가 한국교회라?일상적인 실천의 터전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최종 결론은 항상 외국 신학자나 목회자의 권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교회와 목회의 현장에서 유리된 신학이란 근대 서구의 학문 발생에 입각한 사변적인 신학일 따름이다.
  둘째로, 신학이 자립하려면 기독교 고전을 연구하여야 한다. 여기서 고전은 교회사적으로 부흥한 교회가 생산하였던 헬라/라틴 교부, 중세신학, 종교개혁자들, 영어, 불어 및 독일어로 된 고전들을 통칭한다. 만약 현장성과 이에 기초한 실천만이 강조되면 특수성은 부각되고실천성은 강화될는지 모르지만 통시성이나 보편성은 확보되기 어렵다. 세계화가 배제된 한국화는 시대착오적이듯이, 마찬가지로 공교회성을 무시하면서 이루어지는 한국 신학화 작업은 패배 정신의 산물일 수도 있다. 즉 실천의 자리요 신학적 작업의 배경과 힘이 되는 교회의 왕성을 통하여 교회 역사의 유구한 흐름 속에서 신학적 유산을 창조하고 이를 전수했던 교회와 그 교회의 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어찌 우리의 현실에 맞는 신학을 확립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형성된 기독교 고전들은 이미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우리가 비로소 처음으로 성경을 읽는 행운아가 아니며, 우리가 비로소 처음으로 실천에 입각하여 신학의 이론을 정립해야 하는 불운한 자들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앞서 많은 이들이 벌써 각자의 상황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교회를 섬기며 신학하며 교회를 굳세게세워 나갔다. 우리가 이들을 읽는 것은 식민 피지배자의 비굴한 자세가 아니라 이 전통을 당당하게 전수받음과 동시에 창의적으로 이 전통에 합류하여서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기 위함이다.
  기독교 고전 공부는 글을 읽고 논문을 쓰려는 데에 일차적 목표가 있지는 않다. 고전이란 그 발생 저변에 있는 실천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삶의 이론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고전을 공부함에는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니, 이 고전 공부는 이미 성령님의 사역이다. 고전은 죽은 과거를 웅변적으로 대변하는 비석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지혜와 힘을 얻게 하는 성령님의 손에 쥐어진 방편들이다. 이를 위하여 고전 문헌들을 확보하여야 하며, 이것들이 쓰여진 언어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언어와 이를 기록한 텍스트를 이론과 실천이 분리된 근대 학문의 장에서가 아니라 성도의 교제와 공교회적 관점에서 읽는다면, 한국 신학의 자립이 이루어지며, 이 자립화는 결코 편파적인 ‘동네 신학’일리 만무할 것이다.
  셋째로, 공교회성에 기초한 한국 신학의 자립이 개혁신학이라는 전통에서는 어떻게 그 모습을 들어내어야 할까. 개혁신학은 개혁시대를 넘어서 중세와 고대의 고전을 제대로 연구할 때, 종교개혁과 개혁신학이 겨냥했던 원래의 의도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신학적 입장을 개혁자들, 특히 칼빈에게서 유래하는 개혁신학이라 한다면 우리는 한국교회를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섬기며 선도하여야 하고, 세계적으로도 이런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는 아주 단순하다. 성경 말씀에 의거하여 바로 믿고제대로 행하자는 명백하고 용기 있는 자세를 말한다. 이제는 종교개혁이나 칼빈을 다만 우리 신학의 원조만으로 보려드는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누가 칼빈의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용하였는가를 중심 주제로 삼기 보기보다는, 칼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기 위하?시대를 소급하여 이전 시대를 연구하며, 그 연구의 결과를 가지고 칼빈을 다시 조명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통하여 한국교회를 다시 반성하는 학풍을 길러야 할 때가 되었다. 즉 개혁신학을 한다는 말은 칼빈을 연구하는 데에 주안점이 있지 않고, 이전 시대를 포함하여 다양하고 포괄적인 연구를 통하여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떤 루터와 칼빈이 요구되어지는가를 자문자답하는 신학이 진정한 개혁신학이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이라 하겠다. 물론 실천의 장인 한국교회를 귀히 여기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지만, 번역적인 자세나식민지적 근성에 근거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자세는 있을 수 없다. 또한 중세와 고대를 경원시하는 편협한 자세도 지양하여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실천의 장 그 자체를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말씀이 주어지는 그 순간 그 현장은 말씀의 초청을 받음과 동시에 심판 하에 있다. 이를 파악하지 못한 ‘토착화 신학’은 지역주의의 편협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성경말씀에 입각하여 우리의 현장을 중시하되, 공교회적이고 창의적인 신학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뼈를 깍는 듯한 내적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전망
천안의 신학대학원 건물에 유휴 공간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러기에 기독교 고전자료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은 준비되어 있었다. 당장 현장과 현실이 중요하지만, 이처럼 미래에 개방적인 여유 있는 지혜도 우리에게는 있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는가. 고전 수집과연구가 목회나 교회 성장에 당장 유익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한국 신학과 목회의 독립을 이룰 것이다. 신학 연구의 자료인 기독교고전의 원전(原典)이 한국에 없는 한 당분간은 전통적인 유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 원전들을 읽을 수 있는 언어 훈쳄?한국에서 받을 수 없는 한 유학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하던 시기는 끝이 났다는 말은 여전히 만용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많은 서양 교회들이 비어가고 있다. 서양 문명의 저변에 놓여있는 개인주의가 교회와 신앙 속에도 침투하여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따뜻한 교회이다. 이것이 우리 신학의 자립화의 힘이다. 교제와 봉사에서 열기를 지닌 공동체성만이 개인주의를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가 지닌 저력이요, 세계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재료이다. 고전 연구를 통하여 이 재료를 공교회적인 신학으로 작업하는 사명을 우리는 성실하게 진행하여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 작업을 위한 고전들을 공급하고, 신학자는 현장 이해와 고전 연구에 전념하여, 신학과 목회를 자립하는 데에 매진하여야 하겠다.
  기독교고전연구실은 앞으로 출판된 기독교고전의 원전들을 구입할 뿐 아니라, 이를 연구하는 데에 필요한 영어, 독일어, 불어로 출간된 번역본들, 사전류, 문법서들을 함께 구하려고 한다. 헬라와 로마 그리고 중세와 개혁 당시의 역사, 문학, 철학 등에 관한 주변 자료들도 필요하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연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다. 아직도 한국교회(구교 포함) 안에는 헬라교부와 라틴교부를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교부학자는 한 사람도 없다. 이런 사람을 키울 수 있는 고전어학자도 한 사람도 없다. 연구 인력 발굴 자체와 그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 자가 국제적인 연구자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용의주도하게 강구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 강좌, 원전의 번역 출판, 전문 잡지 간행, 국제학회 유치와 국제적 연구기관들과의 연대 등 앞으로 할 일은 아주 많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사명이요 기회이기에 이 일을 우리는 기도하면서 신실하게 하나씩 추진하여 나가려고 한다.

유 해 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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