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하리라” 투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하리라”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수)

        교회에는 항상 문제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령님의 지혜를 받은 교회는 문제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말씀 봉사의 사명을 직접 받았다. 이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니까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다. 이제는 사도들이 본업이 아니라 부업인 식탁 봉사에까지 매달려야 하였다. 이때에 사도들은 회중을 소집하여 이 일을 맡을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자 일곱을 택하라고 요청하였다. 마치 그대들이 좋은 말씀의 봉사를 즐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를 이 부업에서 풀어주시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말씀 설교에 충실하면 제자는 많아지고 문제도 나타나지만, 지혜와 성령과 믿음에 충만한 성도도 많아져서 문제를 잘 해결하고 말씀은 더 왕성할 것이다. 사도들은 교회의 질서를 위하여 선한 정치를 하였다.

        1. 현재 고신교회 안에는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사람 일곱이 없는가?
        사도들은 직분을 직접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문제가 된 구제에 대해서 주님은 직접 직분자를 세우지 않으시고 어떤 지침도 주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도들 스스로가 본업에 충실하면서 이 부업을 직접 맡아도 잘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도들은 신령하였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알았고, 교회 안에 어떤 분란이나 분열의 씨가 될 수 있는 원인을 속히 제거하려고 하였다. 모든 권한은 자기들의 손에 있었지만, 사도들은 문제를 덮지 않았고, 회중을 소집하여서 알리고 그들과 더불어 해결을 모색하였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사도들의 말씀 봉사의 직책을 이어받은 목사들은 지금 고신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든 제자들을 불러서, 우리 교회가 앓고 있는 문제를 선배 사도들과 같이 정직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왜 중세 교회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가? “교황의 감독들은 마치 머리를 열 개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업무를 독점한다.”(칼빈)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삼을 수 없는 관선이사의 파송을 막아서, 이들을 대신하여 일할 사람, 곧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여 칭찬 듣을 만한 사람 일곱이 없단 말인가?

        2. 일곱은 기도와 말씀 봉사의 결실이다
        목사가 사도의 후계자라면 사도들과 같이 처신하고 사역하여야 한다. 과부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사도들에게 더 중요한 본업은 기도와 말씀 봉사였고 이 일을 위하여 구제의 일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도들은 본업도 충실하고 부가적인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독점하지 않았다.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직무를 위하여 직분자를 세워서 그들과 협력하였다. 그렇게 할 때, 자신들이 본업에 매진하여도 교회는 평안 중에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칭찬 받는 일곱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한 결실이다. 기도와 말씀 봉사는 교회 성장으로도 나타나지만, 이처럼 칭찬 받는 동역자의 모습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우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님의 지혜로 무장한 일곱이 나서야 한다. 고신교회의 모든 설교자들은 속히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여서 칭찬을 받는 일곱을 찾아야 한다.

        3. 고신교회 목사들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하였는가?
        고신교회 안에는 칭찬을 받는 일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한 설교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말을 회중이 듣고 기뻐하면서 직접 일곱을 천거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회중이 뽑는 일에 목사는 섣불리 관여하지를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위기가 설교자들이 기도와 말씀봉사에 전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왔다고 단언하려고 한다. 사도들의 선한 정치가 아니라, 편향적인 계파정치가 고신교회 50년을 얼룩지게 만들었다. 누구의 책임인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현상황에 개입한 설교자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도들의 정치와 고신교회 역사 전체를 깊이 살피지 않는 한, 그 정당성은 결코 완전한 정당성이 될 수 없다. 구제라는 부업, 이 경우 복음병원의 일을 맡은 이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을 도대체 누가 세웠는가? 현재의 위기의 책임은 근원적으로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하지 않은 설교자들이 져야 한다. 가르치는 목사가 없는 곳에 교회가 없기 때문이다(칼빈이 초안한 불란서신앙고백 25장)

        4. 목사는 회개하고 교인은 기도하자!
        신실한 목사까지 포함하여 고신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은 모두 금식하고 회개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을 의식한 시위가 아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받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하지 않은 범죄를 통회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교단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은 설교자들은 필요하다면 공개적이고 개별적인 참회까지 하여야 한다. 목사 스스로가 기도를 통하여 이 난국과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혜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 지혜를 얻기 전에는 각종 회의와 대책 위원회를 모여도, 비난과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왜 복음이 없는 불신자들의 모습을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해야 하는 목사들이 앞장서서 보이고 있는가? 이것은 말씀과 말씀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을 부인하는 엄청난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인들도 깨어 기도해야 한다. 물론 교인들이 이 위기를 가져온 것은 아니며 위기의 내막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 시절의 이스라엘과 같이 자신의 죄와 열조의 죄를 자복하여야 한다(느헤 9:2). 목사들이 이런 부업에서 돌아와서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할 수 있도록 교인들은 기도하고 속히 일곱을 택하여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이 말씀을 맡아서 기도에 전무해야 하는 목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말씀 봉사에도 전무하지 않으면 고신교회에는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 아니, 이 기근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아직은 진멸하지 않았으니 회개와 회복의 여유는 남아있다. 회개한 목사들은 일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야 한다.

        5. 회개하고 기도한다면 일곱에게 자리를 양보하여야 한다
        우리는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화합하고 마지막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떻게 싸우시는지를 가만히 서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송사와 세속법적인 방법으로 권익을 주장하거나, 난국을 타개하려고 하는 처사는 고린도전서 6장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큰 범죄라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협력의 법이 아니라, 세속 법정이 안겨주는 판결을 의존해야 한다면, 관련 당사자들은 모두 신자라는 것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 그나마 정직할 것이다. 그리하면 교회의 학교와 병원이라는 이름은 사라져도 좋다.
        연관을 가진 설교자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였다면, 하나님만이 이 난국을 해결하여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하므로 목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본업에 속히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움을 받아서 복음병원에 직접 간접으로 개입하여서, 책임을 지고 일하던 교인들의 수고는 인정해야 한다 하더라도, 이들도 일단은 그 자리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벨론 포로’를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복음병원이나 고신대학교 그리고 신대원 건물에 대한 재산적인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도와 말씀이 없거나 무력한 교회를, 신이 아닌 신을 섬긴 교회를, 그러나 자기가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기도와 말씀의 주인이신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징벌하는 방식으로 고신교회를 개혁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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