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칼빈 선생과 우리 투고
2009.07.07 22:03 Edit
나그네 칼빈 선생과 우리
유해무(신대원)
칼빈 선생은 평생 3번의 시민권을 가졌다. 프랑스인으로 태어나서 30세(1539년)에 스트라스부르크 시민권을 얻었고, 50세(1559년)에는 제네바 시민권을 취득한다. 그 어간의 삶은 방랑과 도피의 연속이었고, 외국인이라는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살았다. 그렇지만 그 방랑과 망명의 틈바구니에서 종교개혁자로 우뚝 발돋움하였으니, 고난으로 영광의 업적을 이룬 삶이었다.
1. 방랑과 도피의 나그네
14세에 고향을 떠난 선생은 파리에서 예비 과정을 마치고 법학을 두 도시에서 공부한다. 전도유망한 인문주의자의 길을 걷다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홀연한 회심’을 체험하면서 로마교의 미신의 수렁에서 벗어났다. 그때부터 방랑과 도피의 길을 걷는다. 27세(1536년)에 제네바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였으나 2년 후에 추방을 당한다. 스트라스부르크로 가서 3년 동안 훌륭하게 사역하였다. 32세(1541년)에 다시 제네바의 청빙을 받아 두 번째 사역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첫 14년 동안 토착민들의 괄시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당하였다. 55세(1564년)로 별세할 때까지 마지막 9년 동안 성시(聖市) 제네바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3. 나그네 칼빈 선생의 사역
선생은 학창 시절에 너무 과하게 공부한 연고로 평생 허약하였고, 갖가지 질병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 기도하고 일과를 준비하였다. 주일에는 두 차례 설교하였고, 월,수,금에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강해하였고, 화,목,토요일에는 공개 강연도 하였다. 목요일에는 당회를 주재하였고, 금요일 오전 7시에는 목사 성경 공부에 참석하고 때로는 인도하였다. 교구의 가정들을 정기적으로 심방하였고, 병자와 죄수를 심방하였다. 게다가 수천 통의 편지를 썼다. 소책자와 논문, 보고서를 작성했고, 속기사가 가져온 설교와 강해를 교정하여 책으로 출판하였다. 게다가 시의회의 요청으로 제네바의 법률까지 교정하여 편찬하였다!
3. 말씀과 성례
선생은 두 번의 제네바 사역에서 교회를 고백교회로 세웠다.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성도들이 믿는 바를 바로 알게 하였다. 그리고 교회정치로는 직분을 바로 세우고 예배모범과 권징조례를 만들어 합당한 예배를 드렸다.
선생은 말씀, 곧 설교를 아주 중시하였다. 우리는 성부께서 베푸신 은덕들과 복음인 그리스도를 성령님의 으뜸 사역이신 믿음으로 소유하며 구원과 영복(영생)에 참여한다. 이 믿음을 낳은 것은 설교가, 크게 하는 것은 성례(세례와 성찬)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고 경청하며, 성례를 그리스도의 제정을 따라 집행하는 곳마다 교회가 있다.” 목사는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해야 하고, 성도는 그 말씀을 순수하게 경청해야 한다. 주일 설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선생은 아이들에게는 요리문답을, 성인에게는 주중에 성경을 가르쳤다. 믿음을 일으키는 말씀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나아가 성례를 거룩하게 집행하였다. 세례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가입한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예식이다. 성찬 참여로써 참 교리와 사랑의 일체성을 증거한다. 선생은 성찬의 거룩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선한 삶을 사는 이들을 여러 지역에 세워 교인들의 삶을 살필 것을 제안한다. 즉 지역 장로가 교인들의 교리와 생활을 살펴 성찬상의 성결을 유지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말씀과 성례를 보호하는 권징의 시행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던 필생의 사역은 번번이 제네바 시의회의 간섭을 받았다. 시의회 의원이나 이들이 뽑은 행정관들이 권징을 받는 일이 많았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생을 다시 추방하려 하였다.
4. 공교회주의자
선생은 종교개혁의 많은 지도자들과 교분을 나누었고 여러 지역을 방문하였다. 비록 나그네로 살았지만 안목만은 공교회적이었다.
첫째는 자신이 등진 조국 프랑스에 남아있는 개혁교인들인 위그노의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큰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작인 「기독교강요」를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한 것이나, 독일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둘째로 선생은 종교개혁 진영의 일치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일을 위하여 열 바다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5. 나그네 칼빈 선생과 우리
아브라함은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창 17:7, 23:4). 소명에 응하는 삶 자체가 바로 나그네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시는 곳에 서서 일하며 순종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나그네이다. 칼빈 선생도 이런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자기의 생각을 따라 나그네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섭리를 깨닫고서는 원하지 않은 자리에 섰다.
엄청난 교회성장이 점차 과거가 되고 있는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도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 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시는 곳에 가서 순종하는 나그네의 계보를 잇는 사역자들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