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2005.3.13
 설 교 자: 유해무목사
 제   목: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복 되도다
 본문말씀: 시편 1편
   
  
:: 시편 1편 ::

시편 1편은 나머지 시편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6절 안에 시편의 내용이 잘 압축, 요약되어 있습니다. 시편 1편의 서두는 "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복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 속에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1절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록합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악인과 죄인, 오만한 자들은 한 무리입니다. 악인은 꾀를 생각해내고, 죄인들은 그 꾀를 가지고 백주 대낮에 실행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범죄 이후에, 그들의 은밀한 곳으로 돌아가 흐뭇해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노래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간섭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이 없다"라고 외칩니다. (시73:9) 그리고 땅을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는 자들을 조롱하고 짓밟습니다.
  1절의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복수형으로 쓰여 있고, 복 있는 자는 단수로 쓰여 있습니다. 이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들은 협력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침상(은밀한 곳)에서 꾀를 계획하고, 계획이 결정되면 실행을 합니다. (미2:1~2) 그에 비해 의인은 이 악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는 '하나'입니다. 성전 문을 나서서 직장, 학교로 나아가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대적들에게 둘러싸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넓은 길로 함께 가자고 유혹을 합니다. 그들은 서로 꾀하여 우리가 그들의 길에 동참하도록 설득합니다.
  이들에 둘러싸인 우리의 모습은 "복 있는 자"라는 표현이 무색합니다. 오히려 "불쌍하다! 왕따를 당하는 자여!"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을 '복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2절의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1절의 내용처럼 안 하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그 말씀을 깨닫고 악인과 죄인의 길을 거부하기 때문에 복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3절은 우리가 복된 이유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표현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렘17:8)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성도의 성도됨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뽑으셔서, 자신이 만든 수로 곁에 우리를 심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독하지만 고립된 '왕따'가 아닙니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고립된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이 모르는 은밀한 공급자가 계십니다. 땅 밑으로, 하늘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택한 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보십니다. 성도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악인과 죄인, 오만한 자들의 포위망을 뚫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