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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벌초하러 가서 법정아재께 큰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27폭동"때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다.
"27폭동"은 법정아재께서 7,8살쯤에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27폭동"을 찾아 보니 1948년 2월 7일에 발생했다고 되어 있네요.
다음은 인터텟에서 가져온 "한국 현대사 연표(1945~1995년)"입니다.
"27폭동"은 아래 1948년 2월 7일, 2월 10일을 참고하세요.
*** 한국 현대사 연표 [해방 이후, 1945~1995년] ***
http://blog.daum.net/cielomio/5488611
http://blog.daum.net/wrmcf/2996599
| ▶ 194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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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8.15 일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 여운형 주도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발족, 제주에 일본군 제58군 병력 66,780명 잔존
45.09.02 맥아더, 북위 38도선을 미소 양군의 군사 경계선으로 포고
45.09.06 건준 중심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선언
45.09.08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 24군단, 인천을 통해 한국에 진주
45.09.09 맥아더 포고 제1호 발포 (미군정 선포/일제 관리의 계속 근무를 명함)
45.09.10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오대진), 제주농업학교에서 결성
45.9중순 미군선발대(인솔자 미군정 사법부 에모리 우달)가 제주 주둔 일본군의 항복 절차 협의 차 제주에 왔다가 돌아감
45.09.22 제주도 인민위원회(위원장 오대진) 결성
45.09.26 조천면 함덕리에서 친일경력으로 눈총을 받던 30대 남자가 동네 청년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절명
45.09.28 일본군 제58군의 항복 조인을 위해 미군 제주 상륙, 제주농업학교에서 항복 조인식을 가짐
45.10.10 군정장관 아놀드 소장, 북위 38도선 이남의 유일한 정부는 미군정이라며 인공의 존재 거부 성명 발표
45.10.21 전남 제8관구 경찰청 제22구 경찰서(제주 경찰서)발족
45.10.22 일본군 송환 임무를 맡은 미군 전술단 입도
45.10.23 미 LST편으로 제주 잔류 일본군 철수 개시 (11월 12일까지 일본군 48,524명 송환)
45.10.24 도내 청년들로 로고스회 창립해 제북교에서 영어 강습 등 실시, 이 밖의 청년단체로 백록회, 학병동맹 등이 결성됨
45.11.05 인민위원회 산하 보안대에 의해 한라단 단원 피습 사건 발생, 미군정, 인민위 사무실 급습해 154명 체포하고 밤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 발동
45.11.10 군정 업무팀인 미군 20연대 59군정 중대 입도. 본격적인 군정업무 실시(군정관 스타우드 소령)
45.11.18 제주비행장 창고에서 일제 의복을 훔쳐 나오던 한 여인이 미군 위병이 쏜 총에 맞아 절명, 이와 유사한 사건이 연말까지 두 건 더 발생함
45.11.20 서울서 3일간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 대회에 제주 대표로 오대진 최남식 김정노 이운방 등 참가
45.12.01 제주제일중학원(오현중 전신)제주중학원(제주중 전신) 등 사립학교 설립 추진
45.12.09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 결성
45.12.12 중문면 주민들, 면장 집에 몰려가 "공출쌀 내놓으라"고 시위하다가 이를 거절하는 면장을 집단 구타. 신고 받고 출동한 미군이 시위 군중에 발포하여 민간인 1명 사망, 1명 중상
45.12.28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한국 문제에 관한 결정 소식이 국내에 전해짐
| ▶ 194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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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1.05 신탁통치반대 군중대회
46.2월 군정청 정치분석과장 홍양명의 인솔로 제주도제 실시 사전답사차 중앙기자단 내도
46.02.14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민주의원'(의장 이승만)발족
46.02.15 민주주의민족전선(약칭 '민전') 결성
46.3월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제주도지부(위원장 김충희) 발족
46.03.20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막
46.05.08 제1차 미소공위 무기휴회
46.05.15 미군정,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진상 발표
46.06.05 이승만, 이리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 시사 발언
46.06.17 전국에 콜레라 만연. 군정 당국 제주도에 입도할 때에는 6일간의 검역기간 거치도록 통제
46.7월 초순 독촉국민회 제주도지부 결성
46.07.14 김구, 한독당제주도당부(위원장 홍순용)대회 참석차 내도. 제주북교에서 시국 강연
46.08.01 제주도제 실시 2군 1읍 12면 행정체제(지사 박경훈, 북제주군수 박명효, 남제주군수 김영진)
46.08.27 콜레라에 의한 제주도 사망자 360명(총 환자수 708명)
46.08.30 미7함대 순찰구축함,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던 4척의 선박(승선자 175명)나포
46.09.11 제주감찰청(청장 김대봉) 발족
46.10.01 10월 대구 인민 항쟁 발발
46.10.09 경찰관서 앞에서의 항위 시위 발생 보고에 따라 광주에서 미군 부대 파견
46.10.18 추곡수집량, 제주도 5천석으로 결정(미곡수집 반대운동 벌어짐)
46.10월 흉년으로 식량난. 주정공장에 쌓아 두었던 주정원료인 절간고구마 3천 가마를 대용식으로 방출
46.10.21 AP통신 시사평론가 화이트, "제주도는 전략기지로서 동양의 지브롤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타전. 국내 신문에 보도되면서 파문 일어남
46.10.29 과도입법의원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제주도에서만 유일하게 좌파 인물인 문도배김시탁 선출
46.11.16 조선경비대 제9연대(연대장 장창국 부위) 모슬포에서 창설
46.11.23 남로당 결성(제주의 경우 815 직후에 조직된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가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로 개칭됨)
46.12..04 서귀포 지서가 제2구 경찰서(서장 유기병)로 승격. 제주경찰서는 제1구 경찰서(서장 강동효)로 개칭됨
46.12.08 제주도감찰청장에 신자균 부청장 승진 발령. 김대봉청장은 경무부로 발령됨
46.12.13 제주출신 입법의원 문도배김시탁, 서울 민전회관에서 입법의원 참가 거부 성명 발표
| ▶ 194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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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1.11 재일동포의 희사품을 싣고 오던 복시환이 서귀포 근해에서 밀수혐의로 나포
47.01.12 제주도 민청(위원장 김택수) 결성
47.01.25 제주도 부녀동맹(위원장 김이환 ) 결성
47.02.01 광복청년회 제주도지회 (위원장 한효현 → 김인선) 결성
47.02.05 동아일보서울신문 등 중앙지, '복시환 사건'을 둘러싼 모리행위 보도
47.02.10 제주 읍내 중고교생 1천여 명, '양과자 반대' 등 반미구호를 외치며 관덕정 광장서 시위.
47.02.17 제주도 31투쟁기념준비위원회(위원장 安世勳) 결성
47.02.19 복시환사건에 연루된 제주감찰청장 신자균 해임(3월 20일자로 파면결정). 후임 청장에 강인수 발령
47.02.23 제주도 민전(공동의장 안세훈이일선현경호) 결성. 충남충북경찰청 소속 경찰관 100명 제주도착
47.03.01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 제주북교에서 개최. 제주읍과 애월조천면 주민 등 3만 명 참가. 기념식이 끝난 후 일부 주민들 '통일조국독립 전취', '삼상회의 지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경찰발포로 6명 사망, 8명 중경상
47.03.05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제주도 31사건대책 남로당 투쟁위원회'(위원장 김용관) 결성. 대정면당의 건의로 전도 총파업 결의
47.03.08 '31발포사건'과 관련해 주조선미군정주조선미육군사령부 합동조사단(단장 카스틔어 대령) 내도
47.03.09 제주감찰청, '제주경찰감찰청'으로 개칭. '제주 31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홍순용) 결성
47.03.10 제주도청을 시발로 경찰수뇌부 인책사임과 발포경관 처벌 등을 요구하며 민관합동 총파업 돌입. 13일까지 166개 기관단체에서 41,211명 파업에 가세
47.03.11 강인수 감찰청장, 도립병원 앞에서의 발포를 '경찰의 무사려한 행위'로 규정하며 유감 표명
47.03.12 경무부 최경진 차장, 제주파업사태 언급하면서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
47.03.14 조병옥 경무부장 내도
47.03.15 전남경찰청 소속 122명, 전북경찰청 소속 100명 등 응원경찰대 222명이 추가로 내도. 조병옥, 파업주모자 검거명령
47. 3월중순 미 CIC 제주사무소 설치
47.03.17 응원경찰대, 중문 지서 앞에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군중에 발포, 8명 중경상
47.03.18 강인수 감찰청장, 파업사태와 관련된 검속자가 200명에 이른다고 발표
47.03.19 조병옥 경무부장, 관덕정 앞에서 벌어진 경찰발포에 대해 '치안유지의 대국에 입각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는 담화문 발표
47.03.21 CIC, 제주도의 우익 정당단체는 섬 전체적으로 겨우 1,000명의 단원을 확보한 불완전한 조직체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섬주민 60~80%의 성향이 좌익이라고 중앙에 보고함
47.03.22 남로당 지도 아래 전국적인 총파업
47.03.24 민전 중앙본부, 제주사태 특별조사단(단장 오영 조사부장)을 제주에 파견했으나 경찰에 의해 서울로 압송
47.03.31 제주경찰감찰청장에 강인수 청장의 후임으로 김영배 발령
47.04.02 미군정, 제2대 제주도 군정장관에 렛셀 D. 베로스 중령을 임명
47.04.03 31사건 연루자 군정재판 첫 개정. 군정재판 1호는 제주농업학교 영어교사 한병택으로 체형 6월 선고
47.04.04 민관수습회의 개최
47.04.10 경찰 당국, 파업검속자는 500명에 이르며 이 중 260명을 군정재판에 회부했다고 발표
47.04.28 응원경찰대의 교체병력으로 철도경찰 245명을 제주경찰에 배속. 제주경찰 정원 500명으로 증원
47.04.30 제주도 민청위원장 김택수, 서울서 검거됐으나 미 CIC의 조사받고 석방됨
47.05.07 응원경찰대, 제주서 철수
47.05.20 제주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밀항선 대마도 근해에서 침몰, 승객 20여 명 사망
47.05.21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47.05.23 31사건과 관련 재판에 회부된 328명에 대해 공판 완결. 체형 52명, 집행유예 52명, 벌금형 56명, 나머지 168명은 기소유예 및 불기소처분
47.05.24 제1구 경찰서장을 김차봉(제주 출신)으로 교체
47.05.26 피의자 고문사건으로 한림지서장차석 등 경찰관 2명 구속
47.06.01 9연대장 이치업 소령으로 교체. 경찰, 삐라 살포 혐의로 제주읍내 중학생 20명 검속
47.06.02 제주여중학생들, 파쇼교육 중단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47.06.06 구좌면 종달리에서 민청 집회를 단속하던 경찰관 3명이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한 세칭 '종달리 66사건'발생. 이 사건으로 43명 기소돼 이 중 10명이 실형 선고
47.06.11 하곡수집량 북군에 10,800석, 남군에 6,200석 할당
47.06.20 여러 마을 청년들, 삐라살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됨
47.06.24 독촉국민회독청제주도지부 연합으로 60일간 세력확장을 위한 도내 순회계몽활동
47.07.03 제주농업학교 학생들, 삐라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퇴학처분을 받자 이에 항의해 집단퇴학원을 제출
47.07.18 전 지사 박경훈, 제주민전 의장에 추대
47. 7월말 한림면 명월리에서 하곡수집을 거부하는 농민들과 우익청년단체원 간에 충돌
47.08.07 제주에서 '미군을 축출하자'는 반미 삐라 나돎
47.08.08 안덕면 동광리에서 마을청년들이 곡물수집관리 3명에 집단폭행 가함
47.08.12 미군정, '815폭도음모사건'과 관련해 좌파세력에 대한 대규모 검거작전 전개(전국 검속자 13,769명)
47.08.13 경찰, 조천면 북촌리에서 삐라 붙이던 소년을 추격하며 발포해 주민 3명 총상. 흥분한 주민 200여 명, 경찰관 3명을 붙잡아 뭇매를 가한 뒤 함덕지서로 몰려가 항의시위. 마을주민 40여 명 체포됨
47.08.14 경찰,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을 비롯 도청 간부사회인사 등 30여 명을 '815 폭동 음모'와 관련해 체포. 朴 의장은 3일만에 석방됨
47.08.19 제주도 전역에 곡물수집을 반대하는 삐라 살포됨
47.08.27 경찰, 애월면 하귀리 미수동에서 무허가 집회와 삐라살포 혐의로 마을주민 10여 명을 검속
47.08.28 유해진 지사, 사상문제를 빌미로 도 과장급 4명에 권고사직시키는 것을 시발로 인사정비 착수
47.09.07 도 식량사무소장 박태훈, 자택에서 정체 불명의 청년들로부터 테러당함. 서청단원의 소행으로 밝혀짐
47.09.15 중앙청 식량행정처, 제주의 하곡수매실적은 53%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하다고 발표
47.09.17 제2차 미소공위 결렬, 미국, 한반도문제를 UN에 상정
47.09.26 제1구 경찰서장 김차봉 해임. 후임 서장에 문용채(평남출신) 발령
47.09.27 생필품영단 직원과 제주농업학교제주중 교사 등 36명, 불온서류와 관련돼 검속됨
47.10.06 제주지법, 포고령위반으로 기소된 남로당 제주도위원장 안세훈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천 원을 언도하고 석방
47.10.07 구좌면 행원리에서 우익조직 확장운동을 벌이던 대청단원과 마을청년 충돌. 경찰 16명 연행
47.10.19 미 CIC 제주사무소, 우익정당 당원확장 과정에서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고 중앙에 보고
47.10.21 미 CIC 제주사무소의 개입으로 대동청년단 제주도단부(단장 김충희) 결성
47.11.02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결성대회
47.11.05 미군 4명, 제주 읍내 식당에서 종업원들을 구타한데 이어 이를 만류하는 경찰관과 행인들에게도 폭행
47.11.18 서청단원들, 자금모금을 위한 광범위한 테러 행위로 인하여 미 CIC와 지방경찰로부터 경고받음.
47.11.25 CIC 제주사무소는 서청 제주도단장이 '제주도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말해왔다고 상부에 보고
47.12.03 제3대 제주도 군정장관으로 맨스필드 중령 부임
47.12.07 조선민족청년단 제주도단부(단장 백찬석) 제1차 총회
47.12.13 CIC 제주사무소, '제주도 경찰이 빠른 시일 내에 정의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제주감찰청에 대한 공격이 있으리라'는 여론을 상부에 보고
47.12.26 제주도의 추곡수매 실적 11%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
| ▶ 194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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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월 7일, 초등교육 의무교육 실시.
48.01.08 UN조선위원단 입경
48.01.12 구좌면 김녕리에서 지서, 서청, 대청 등의 간판이 훼손되는 사건 발생
48.01.22 군정경찰, 조천에서 있었던 남로당 집회장 덮쳐 106명 검거. 미군 정보팀, 압수한 문서에 의하면 '2월 중순과 3월 5일 사이에 폭동계획이 있었다'고 보고. 26일까지 전도적으로 남로당 관련자 115명 추가 체포
48.01.23 미군 정보팀, '제주도의 좌익은 반미적이 아니며, 최근의 테러는 우익이 자행했다'고 상부에 보고
48.01.30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122 검거사건'에 언급, "경찰은 남로당에 가입한 자를 탄압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비합법적 행도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라고 발표
48.02.01 9연대장 이치업 중령 후임으로 부연대장 김익열 소령 임명
48.02.07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27 구국투쟁' 발생
48.02.10 조병옥 경무부장, '27 폭동'으로 전국적으로 39명이 사망했으며 8,479명이 검거했다고 발표
48.02.14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함덕성산포조천대정하도삼양화북두모 등지에서 시위가 있었고 사계리에서 경찰관 납치사건이 있었다고 발표
48.02.25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에게 남북협상 제의 서한 발송
48.02.26 UN임시총회에서 'UN한국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안이 채택. 단독선거 시행 현실로 나타남
48.3월 초순 한림면과 애월면 중산간 지역에서 '청년들이 무장훈련을 한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 현지 출동
48.03.01 UN한국위원단, 남한만의 단독선거 결정 발표
48.03.02 함덕지서가 공격을 받았으나 경찰이 공포를 쏘아 시위자들을 해산시킴
48.03.04 조천지서에서 취조받던 조천중학원 학생 김용철, 고문으로 사망
48년 3월 8일, 김구, 남북협상을 제의.
48.03.10 조천중학원 학생들과 주민들, 지서에 몰려가 고문치사사건 항의시위
48.03.11 김구 김규식 김창숙 조소앙 조성환 조완구 홍명희 등 7인 공동성명으로 510선거 반대
48.03.12 성산면 관내 청년 66명, 남로당을 탈퇴해 대동청년단에 가입한다는 성명 발표. 이후 남로당 탈퇴 성명 줄이음
48.03.14 모슬포지서에서 영락리출신 청년 양은하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
48년 3월 16일, 북한중공, 비밀군사협정 체결.
48.03.29 한림면 금릉마을에서 미군정을 비판하던 청년 박행구를 경찰과 서청에서 붙잡아 현장사살
48.03.30 전국 일원에서 510 총선거 선거인 등록업무 개시
4월 3일, 제주도에서 4˙3사태 시작. 16일, 최초의 총선거, 입후보자 등록마감(934명 등록).
48.04.04 미군정, 제주도 사태를 '치안상황'으로 간주해 각 도의 경찰청에서 1개 중대씩차출, 8개 중대 1,700명의 본토 경찰 병력을 제주에 파견하는 것을 승인
48.04.05 제주경찰감찰청 내에 '제주비상경비사령부'(사령관 金正浩 경무부 공안국장) 설치
48.04.06 조병옥 경무부장, 서울에서 기자회견 통해 제주도사태의 인명피해 상황 밝히고 응원경찰대 급파했다고 발표. 조병옥, 서청본부에 반공정신이 투철한 서청단원 500명을 제주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
48.04.09 510 총선거 선거인 등록마감(전국 등록률 91.7%, 제주도 등록률 64.9%)
48.04.10 육지부와의 해상교통망 일체 차단한다는 내용의 제주도 도령 공포.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모슬포 9연대 방문해 경비대 병력지원 요청했으나 김익렬 연대장 '치안상황에 군이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
48.04.13 9연대, 미군 주둔지와 정부 시설 경비 목적으로 특별경비부대 제주읍에 파견 미군 당국, 본토에서 제주에 미군 증파
48.04.15 남로당 제주도당 대회에서 무장봉기 추인. 기존의 자위대 해체해 인민유격대 편성
48.04.16 제주도 인민유격대 총책 김달삼의 명의로 미군정을 상대로 '510망국단선 반대를 위한 무장봉기 성명' 발표. 딘 군정장관, 만 18세 이상 55세 이하 남자는 모두 의무적으로 향보단원이 돼야 한다는 향보단 조직 계획 발표. 경무부, 전국적으로 선거사무 방해사건이 143건에 이른다고 발표
48.04.17 미군정, 그 동안 관망상태의 9연대에 진압작전 출동 명령, 9연대 군사고문으로 정보장교 출신 드루스 대위 부임
48.04.19 미군정 경찰고문관 레스터 코퍼닝, 제주 시찰한 뒤 '섬 북부의 주민 대부분이 산속으로 들어갔으며 경찰관은 신경과민 상태에 놓여 있다. 는 요지의 정보 보고. 김구김규식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48.04.23 무장대 토벌작전은 경비대가 맡고, 경찰은 치안만을 담당하는 내용의 역할 재조정
48.04.24 제주비행장에 착륙하려던 미 군용기 C-47기가 저격받음. 미군 정보기관, 제주도 유격대의 집결지로 애월면 어도지경 '샛별오름', 애월면어도지경 '바리악', 조천면 선흘지경 '거문오름' 등 세 곳을 지목.
48.04. 25일께 평화협상 추진중이던 김익열 연대장에게 딘 장군의 고문이 나타나 초토화작전 감행 회유. 김 연대장 이를 거부. 미군정, 부산 5연대 1개 대대(대대장 오일균 소령)를 제주에 파병명령
48.04.25 제주도경비사령부, 4월 3일부터 25일까지의 제주도 인명피해 상황 발표. 이 기간의 사망자 83명의 인적사항을 경찰관 7명, 양민 27명, 관공리 2명, 폭도 47명으로 분류
48.04.28 중산간지대인 구억 국민학교에서 김익열김달삼 간의 평화회담 성사. 이 회담에서 ①72시간 내에 전투중지 ②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위반하면 즉각 전투재개 ③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의 신병보장 등 3가지 조건에 합의
48.04.29 딘 군정장관 극비 제주시찰. 이 방문 뒤 미군정의 정책이 화평보다는 토벌위주로 선회
48.04.30 제주읍 오라리에서 대청 단원 부인 2명, 좌익청년들에 의해 인근 산인 '민오름'으로 납치당함. 경찰의 추격전이 벌어진 가운데 1명은 숨지고 1명은 극적으로 살아남. UP통신, 4월 한 달 동안 남한에서 선거관련 무력충돌로 154명 사망했다고 전세계에 타전.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남한 단독선거 반대와 미소 주둔군의 동시철수 결의 공동성명 발표
48.05.01 서청대청 단원들에 의해 제주읍 오라리에서 방화사건 발생. 이 와중에 경찰과 무장대의 총탄에 여인 2명 사망.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경비대는 '우익단체의 소행'으로, 경찰은 '폭도의 소행'으로 엇갈린 보고를 함. 미군정은 경찰의 보고를 수용. 특히 CIC 장교는 김익열 연대장에게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 초토화 토벌작전을 지시. 오라리사건을 주무대로 촬영된 미군 기록영화 '제주도의 메이데이'는 이 사건을 폭도의 소행으로 조작 편집
48.05.03 제주읍 남서쪽 야외에서 미군과 경비대의 인솔 아래 산에서 내려오던 귀순자 대열을 향해 경찰이 중기관총으로 난사. 이 사건을 놓고 경비대는 평화협상의 진로를 훼방하는 경찰의 소행으로, 경찰측은 폭도들이 경찰로 가장해서 저지른 소행으로 각각 주장
48.05.04 귀경한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기자회견에서 "제주폭동에 팔로군 참가, 기관총 소지 등의 풍설은 전연 낭설이고 폭도들은 주로 제주도민이고 그 수효는 300~400명으로 추측된다."고 발표
48.05.05 딘 군정장관, 제주도 미군정청 회의실에서 제주도사태의 진압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9인 최고수뇌회의 소집. 이 회의에서 경비대측은 화평정책을, 경찰측은 토벌정책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다가 급기야 조병옥 경무부장과 김익열 연대장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짐
48.05.06 김익열 연대장 전격 해임. 후임 연대장에 박진경 중령 부임. 딘 군정장관, 박 연대장에게 최소한의 무력 사용해 반란을 진압하라는 밀명 내림. 미군정, 수원에서 창설된 11연대 1개 대대 제주에 파병 명령 귀경한 딘 군정장관, 외지인들의 선동에 의해 제주폭동이 일어났다고 발표. 또 '현재의 제주도 분위기는 평온하며 경찰과 경비대가 협력활동하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
48.05.0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사건의 치안수습대책'발표. 당면대책으로 ①경찰전문학교 정예부대 제주 파견 ②유능 형사대 파견을, 영구대책으로 ①제주경찰학교 강화 ②경찰인사 재편 ③경찰정원 증원, 2개 경찰서 신설계획을 천명
48.05.09 UP통신, 510선거 앞두고 남한의 상황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며 '그리스 사태의 완전한 재연'이라고 타전
48.05.10 510 총선거, 도내 각지에서 투표 거부 사태 발생(좌익계남북협상파 불참).
48.05.11 전국 200개 선거구 가운데 제주도 북제주군 갑구(투표율 43%), 북제주군 을구(투표율 46.5%)등 2개 선거구만 과반수 투표 미달 사태 초래. 전국투표율 94.9%. 제주도 전체 투표율은 62.8%. 제주도 군정장관, 섬의 봉쇄를 위해 2척의 구축함과 게릴라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전투기를 제주 상공에 보내줄 것을 요청. 미군함 '크레이크'호 등이 출동, 북부 해안 봉쇄. 미군 정보보고서, 7~11일 5일간 전국에서 경찰 8명, 후보 1명, 선거위원 4명, 우익 29명, 폭도 50명 등 모두 92명이 사망했다고 기록. 제주도의 인명피해는 경찰 1명, 우익 14명, 폭도 21명 등 36명으로 기록.
48.05.12 박진경 중령의 9연대, 본격적인 수색작전 착수해 첫날 제주읍 오등리와 애월면 광령2리에서 218명 체포
48. 05월 중순 미 20연대장 브라운 대령, 제주지역 미군사령관으로 부임. 현지 진압작전 최고지휘권 행사
48. 5월 14일, 북한, 남한 송전(送電) 중단, 남북협상 결렬
48.05.1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폭동 진압차 정예부대 파견했다면서 '그 동안 귀순 회오반성을 기다리던 소극적인 대책을 떠나 이번에는 실력으로써 적극적으로 폭도들을 진압섬멸할 방침'이라는 담화를 발표
48.05.20 9연대 소속 군인 41명 모슬포부대에서 무기와 장비탄약 5,600발을 갖고 탈영, 무장대에 가담.
48.05.24 딘 군정장관, 제주도 2개 선거구에 대해 선거무효 선언. 오라리 방화사건 혐의자로 모슬포 부대 영창에 구금됐던 대청단원을 박진경 연대장이 석방
48.05.25 제주경비사령부, 4월 3일 이후 5월 25일까지의 인명피해 상황 발표. 사망은 경찰관 23명, 경찰관 가족 13명, 양민 2명, 관공리 3명, 폭도 119명, 부상자는 경찰관 29명, 경찰관 가족 2명, 양민 65명, 관공리 6명, 폭도 8명
48.05.27 최천 제주비상경비사령관,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과 회담한 후 ①절단된 전주복구 부락별로 할 것 ②1948년 하곡수집 철폐 ③하산자는 관용포섭한다는 3개항 발표. 유동열 통위부장, 육해 경비대가 제주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한 결과 5월 27일까지 포로 3,12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
48.05.28 경비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는 산악소탕작전 전개
48.5월 말 미군정, 탈영 사건 일으킨 9연대 해체하고 제주도 토벌 부대로 11연대 재편
48.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6.10. 의장 이승만, 부의장 신익희김동원).
48.05.31 43 가담 혐의자에 대한 첫 공판이 제주지방심리원 법정에서 개정(주심 매로 소령)
48.06.01 박진경, 진압 작전에 대한 공로로 대령 진급
48.06.10 딘 군정장관, 6월 23일 시행예정인 북제주군 갑 을 선거구의 재선거를 무기 연기한다고 발표
48.06.11 5월 31일의 공판에 참석했던 서울 법조인들 제주 떠남. 귀경 후 제주도 사태의 원인에 대해 경찰 서청 관공리의 잘못도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함.
48.06.12 {조선일보}, 경비대와 경찰에 체포된 자가 약 6,000명에 이른다고 보도. 조선신문 기자회, '미군정이 제주도 작전에 일본군을 투입했다'는 풍문의 진상을 밝힐 것을 하지 중장에게 공개 질의
48.06.14 미군정 이인 검찰총장, 제주도 사태의 원인으로 관공리의 부패 지적
48.06.17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출신 김봉호 총경 발령
48.06.18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숙소에서 피살
48.06.21 미군정, 후임 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임명
48.06.23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치안 수습에 대하여'란 담화를 통해 각게의 경찰 과오 지적을 반박하면서 "근본 원인은 소련의 야심인 조선의 소령 연방화에 있다"고 강변
48.07.10 경무부, 철도관구 경찰청 소속 경찰관 300명 차출해 선발대 제주에 증파
48.07.12 박진경 암살사건의 혐의자로 문상길 중위 등 8명 서울로 압송
48.07.14 최경록 연대장, 기자회견에서 "폭도 수효를 정확히 모르나 약 200명 될 것 같다. 팔로군이나 북조선 인민군 가담 사실은 없다"고 피력
48.07.15 제11연대에 소속됐던 본래의 9연대 병력 배속 해제, 9연대 재편성. 9연대장에 제11연대 부연대장 송요찬 소령 발령
48. 7월 17일, 헌법 및 정부조직법 등 공포. 20일, 국회,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 선출(24일 취임)
48.07.21 3여단의 제5연대와 6연대에서 1개 대대씩 차출, 9연대에 배속
48.07.24 최경록 연대장의 11연대, 수원으로 철수. 이후 제주도 토벌 작전은 송요찬 연대장의 9연대가 맡음
48.08.07 제주읍 화북 포구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려던 100명 체포
48.08.11 제주도 민보단 창설
48.08.14 박진경 암살사건 군법회의,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신상우 배경용 하사관에게 사형, 2명 징역형, 2명 무죄 선고
48.0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48.08.21 해주에서 '남조선 인민 대표자회의' 개회. 제주도에서는 김달삼 등 6명 참가
48.08.24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 체결, 이에 따라 정부수립 이후에도 군 작전지휘권이 미군에 귀속
48.08.25 비상경비사령부, "최대의 토벌전 있으리라" 포고문 발표
48.08.26 미국특사 무초, 주한미고문사절단(AMIK)를 이끌고 내한해 정부 이양작업. AMIK 산하에 임시군사고문단(PMAG, 단장 로버츠준장) 설치
48.08.27 콜터 장군, 하지장군을 대신해 미24군단장 겸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부임
48.08.28 수도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 800명이 제주로 출발. 9개 정당 사회단체가 참가한 '제주도사태 진상조사단'이 목포에 도착했으나, 당국은 제주행 제지.
48. 9월 1일,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개최.(수상 김일성). 9일,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48.09.15 주한 미군, 비밀리에 철수 시작
48.09.19 소련, UN결의에 따라 북한주둔 소련군이 연말까지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
48.09.22 [반민족행위특별처벌법] 공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구성
48.09.23 이종형등 친일파 주도로 반민법에 반대하는 [반공구국총궐기대회] 개최. 이승만이 참석해 축사
48.9월말 9연대, 중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토끼몰이식 수색작전 전개
48.10.01 광주지법서 제주43연루자 첫 공판, 22명중 11명에 무죄선고. 무장대 총공세 재개
48.10.05 제주출신 김봉호 후임으로 평남 출신 홍순봉을 제주경찰청장으로 발령
48.10.09 5여단 고문관 트레드웰 대위, 미군이 제주도작전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로버츠 고문단장에게 올림
48.10.11 제주도경비사령부(사령관 김상겸 대령) 설치
48.10.13 소장파의원을 중심으로한 국회의원 47명이 [외군철퇴 긴급동의안]을 제출
48.10.17 송요찬 9연대장, 제주 해안에서 5Km 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는 포고문 발포
48.10.18 제주해안 봉쇄. 여수주둔 제14연대 1개대대 제주도에 증파명령
48.10.19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발생. 김상겸 대령 파면, 송요찬 9연대장이 제주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겸임
48.10.20 임시군사고문단 로버츠 준장 여순사건 대책 비상회의 소집. 하우스만 대위 등 미군이 진압작전 지휘
48.10.22 국방장관 이범석 국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제주도사태를 전국에 전개시키려 한다"고 발언
48.10.24 무장대, 이덕구 명의로 정부에 선전포고, 토벌대에는 호소문 발표
48.11월초 9연대장병 1백여명 불법 처형. 수장화장굴속 암매장의 방법으로 흔적 없앰
48.11.01 최난수, 경찰프락치 사건 발생 직후 수도경찰청 수사대 이끌고 내도
48.11.02 이승만, '국군'이라 불리는 5만 병력의 훈련과 장비지급을 요청. 그러나 미군은 '국군'의 존재자체를 불인정
48.11.09 김두현 제주도총무국장 고문치사 사건 발생
48.11.12 미국특사 무초, 여순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면서 미군철수를 연기토록 요청
48.11.중순 군경토벌대, 제주도에서 초토화작전 시작. 2백명의 서청경찰대 제주 도착
48.11.17 이승만, 계엄법이 없는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국무회의 의결 거쳐 계엄선포
48.11.19 국회,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요구하는 결의안 통과
48.11.20 {조선일보}, "제주도에 게엄령이 선포됐다는 말은 전연 무근지설" 국방부 보도과 담화 인용 보도
48.11.27 콜터장군 "로버츠휘하에 있는 고문단들에 의해 만족할 만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한국군 야전부대에 배치돼 있다"고 밝힘
48.11.30 {조선일보} 11월20일 보도와 상반된 내용을 보도 "11월21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23일에는 7종목의 세칙이 발표됐다" - 국방부 검열 기사
48.12.01 국가보안법 공포. "제주도 연대장이 11월20일~27일간 유격대 122명 체포,576명 사살, 10월1일~11월20일 사이에 1,625명 사살,1383명 체포. 노획된 무기는 없다고 보고"
48.12.06 , "이승만과 신성모의 합의에 따라 서북청년단원들 한국군에 6,500명, 국립경찰에 1,700명 공급예정"보고
48.12.10 명동 서울시공관에서 열린 서청 총회에 이승만이 참석해 "전국 각지에 서청을 배치하겠다"고 연설
48. 12월 10일, 한미경제원조협정 조인.
48.12.12 UN총회,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면서(46대 6 가결) 미소 양군의 조속한 철군을 요구.
48.12.14 이범석장관, "11월16일 선포된 계엄령으로 상황이 급속히 양호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48.12.17 미 국무성, 48년 12월말까지 주한미군을 철수키로 결정한 대한정책지침서인 에 대해 이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
48.12.19 대동청년단서북청년단 등이 통합해 [대한청년단] 결성
48.12.25 소련, 북한주둔 소련군을 완전 철수했다고 발표
48.12.29 2연대(연대장 함병선 중령), 9연대와 교체해 제주에 진주
48.12.31 제주도지구 계엄령 해제
| ▶ 194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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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1.03 함병선 연대장 "소련선박 제주해안서 발견" 보고
49.01.04 함병선 연대장, 중앙에 계엄령 해제조치 철회 요구
49.01.05 토벌대, 구좌면 동복리에서 무장대원으로 위장해 민가에 들어가 '숨겨달라'며 함정을 파 주민 학살
49. 1월 8일,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 발족
49.01.10 여순사건 관련 군사재판 결과 발표
49.01.15 주한 미24군단, 부대 해체를 위해 일본으로 떠남. 임시군사고문단장인 로버츠 준장이 주한미군사령관 겸임
49.01.18 모슬포와 성산포에 경찰서 신설. 이로써 기존의 제주경찰서, 서귀포경찰서와 함께 도내에 경찰서가 4개로 증가함
49.02.05 "제주도 계엄령 한국 정부에 의해 선포된 일 없다"고 기록
49.03.02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 참모장 함병선 중령 겸임) 설치
49.03.10 이범석 총리신성모 내무장관 제주 시찰 때 "여러차례 소련 선박이 출현해 한라산 폭도와 화광 신호를 교환했다"고 보고
49.03.23 미 대통령, 대한정책 지침서인 를 승인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49년 6월말까지로 연기함
49.04.01 "게릴라들 북한으로부터의 병참지원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아무런 증거없다" "9연대가 중산간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 채택. 지난 한해동안 1만4천~1만5천명의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중 80%가 보안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보고
49.04.09 이승만 내도, 약 250명에게 사면령
49.04.29 소개령 해제
49.05.10 1년전 무효화됐던 북제주군 갑를 선거구에 대한 재선거 실시
49.05.15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해산
49. 5월 20일, 남로당(南勞黨) 국회프락치사건 적발
49.05.26 안덕면 화순리 주민 3명, 바닷가에서 은신생활을 하다 발각돼 1명은 현장에서 총살되고 2명은 육지 형무소로 보내짐
49.05.30 무장대, 중문면 도순리 주민 1명을 살해
49.06.06 친일파경찰, 반민특위 습격
49.06.07 이덕구 교전 중 사망
49.06.21 [국회프락치사건] 발생,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49.06.25 국민보도연맹 결성, . 25일, 북한 남북의 민족전선‘을 통합,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
49.06.26 백범 김구, 안두희에게 암살
49.06.29 김구 피살(포병소위 안두희가 백주에 경고장에서 저격). 7월 5일, 김구 국민장 거행(최초의 국민장).
49.06.30 주한미군 철수 완료. 군사고문단 5백명 잔류
49. 8월 6일 장제스[蔣介石] 자유중국 총통 내한, 진해(鎭海)에서 대통령 이승만과 정상회담.
49.11.24 계엄법 제정 공포
49.12.29 무장대, 제주도 중문면 하원리를 습격해 보초서던 주민을 살해하고 식량을 탈취
| ▶ 195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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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한미 상호방위원조협정 조인.
2월 16일, 이대통령, 맥아더 초청으로 일본 방문.
3월 13일, 국회, 제1차 개헌안(내각책임제) 부결.
3월 27일, 남로당 총책 김삼룡(金三龍) 이주하(李舟河) 검거.
4월 12일, 한국, 보스턴마라톤대회 1~3위 제패. 24일, 제1회 국전(國展) 개최.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
6월 1일, 6년제 의무교육 실시.
6월 12일, 한국은행 발족(초대 총재 具鎔書).
6월 16일, 북한, 김삼룡 이주하와 조만식(曺晩植) 교환 제의. 이대통령, 조건부 수락. 북한 조건 불수락으로 이뤄지지 않음.
6월 19일, 제2대국회 개원(의장 신익희, 부의장 장택상 조봉암).
6월 25일, 북한군 불법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6월 27일, 유엔 안보리, 대북한 제제 결의.
6월 28일, 서울 함락, 한강 인도교 폭파.
7월 1일, 연합군 지상부대, 부산에 상륙.
9월 1일, 부산 문화극장에서 피난국회로 재개.
9월 15일,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9월 16일, 낙동강전선에서 반격전 개시.
9월 26일, 국군, 서울 진입 성공,
9월 28일 서울 수복.
10월 1일, 국군, 38선 돌파,
10월 19일 평양 탈환.
10월 25일, 중공군, 한국전 개입 시작.
10월 26일, 국군, 압록강(楚山) 탈환.
10월 27일, 정부, 서울 환도.
10월 29일, 이대통령, 평양 시찰.
12월 4일, 평양 철수. 북한주민 약 50만 명, 피난길 등정.
12월 16일, 국민방위군설치령 국회 통과.
12월 24일, 서울시민에 피난령 발함.
| ▶ 195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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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중공군 6개 사단, 압록강 건너 남진 시작.
1월 3일, 정부, 부산으로 이전.
2월 10일, 국군, 서울에 진입.
2월 11일, 거창(居昌)양민학살사건 발생.
3월 5일, 정부, 120만 소작인에 대한 농지 분배 발표.
4월 11일,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직에서 해임. 후임에 리지웨이 중장 임명.
5월 9일, 이시영(李始榮) 부통령, 이대통령을 성토하고 사직.
5월 15일, 국회, 부통령에 김성수(金性洙) 선출.
6월 23일, 말리크 소련 유엔 대표, 38선 정전회담 제의.
7월 8일, 휴전예비회담 개성(開城)에서 열림.
9월 6일, 여군 창설.
10월 17일, 국무회의, 대통령 직선, 양원제 개헌안 의결.
10월 20일 한일 제1차 회담 도쿄에서 개막.
10월 25일, 남북휴전회담, 장소를 판문점(板門店)으로 옮김.
12월 1일, 부산대구를 제외,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12월 2일, 서남지구(지리산 일대) 공비토벌작전 개시(52.3.12.종료).
| ▶ 195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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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국회, 제2차 개헌안(대통령직선제:양원제, 정부안) 부결.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선포.
2월 15일, 제1차 한일회담 개최.
2월 18일,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좌익계 폭동 발생.
4월 17일, 국회의원 123명, 내각책임제의 제3차 개헌안 제출(5.7. 공고).
4월 20일, 장면(張勉), 국무총리직 사임. 동양통신(東洋通信) 창립.
4월 24일, 서민호(徐珉濠) 의원사건 발생.
5월 6일, 장택상, 국무총리에 임명됨.
5월 7일, 거제도포로수용소의 공산포로들 폭동.
5월 10일, 초대 도의원 선거.
5월 14일, 정부, 제4차 개헌안(대통령직선제양원제) 제출.
5월 19일, 민중자결단땃벌떼백골단 등, 국회해산 요구 시위.
5월 25일, 부산과 경남전남북에 계엄령 선포(~7.28.).
5월 26일, 부산정치파동. 대통령직선제 강행으로 정계 격동.
5월 29일, 김성수 부통령, 이대통령 탄핵하고 국회에 사표 제출.
6월 18일, 국회, 임시의장에 신익희, 부의장에 조봉암 김동성 선출.
6월 20일, 부산국제구락부에서야당인사들, 반독재호헌구국선언 발표(국제구락부사건).
6월 21일, 발췌개헌안 국회에 상정. 25일,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발생. 범인 유시태(柳時泰) 체포.
7월 4일, 국회, 경찰 포위 속에 제34차 개헌안 발췌통과(제1차 개헌)
8월 5일, 직선제 정부통령선거 실시(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咸台永) 당선.
8월 13일, 근로기준법 국회 통과(53.5.13. 공포).
9월 30일, 장택상 총리, 고시진(古市進)사건 인책사임.
10월 17일, 국회, 이윤영(李允榮) 총리인준 부결.
10월 29일, 국회, 정부 불신임안 발의.
11월 27일, 부산국제시장 대화재.
12월 2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 내한.
12월 3일, 유엔총회, 한국전쟁포로의 중립지대로 이송안(인도案) 통과.
| ▶ 195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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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이승만 대통령 일본 방문 요시다[吉田] 총리와 회담.
2월 15일, 긴급통화조치령 발표, 제1차 통화개혁(110대 1로 인하. 원(圓)를 환로 개칭).
2월 23일, 휴전회담 재개.
6월 8일, 포로교환협정 조인(8.5. 교환 시작, 9.6. 완료).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 단행.
7월 27일, 휴정협정 조인.
| ▶ 195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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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국방대학원 창설.
1월 18일, 독도에 영토 표지판 설치(5.1. 민간수비대 파견).
1월 21일, 반공포로 인수,
1월 28일, 친공포로 인도 완료.
1월 30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발족.
5월 20일, 제3대 민의원 선거 실시(의장 이기붕, 부의장 최순주 곽상훈).
6월 15일, 진해에서 제1회 아시아민족대회 개최(~21일).
11월 14일, 수복지구 행정권 인수받음. 불교의 대처승과 비구승 간 분쟁 격화.
11월 29일, 국회, 개헌안 사사오입(四捨五入)이론을 적용, 통과 처리.
11월 30일, 국회에 호헌동지회 결성됨.
12월 7일, 국회, 초대대통령 중임제한 폐지 개헌안(9.8. 정부가 제안) 부결.
12월 10일, 국보 3,400점을 부산 용두산 화재로 소실.
12월 20일, 정부기구를 12부 1설 1원으로 개편.
| ▶ 195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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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김성수(金性洙) 국회부의장(전부통령) 사망(2.24. 국민장). 조경규(趙瓊奎), 부의장이 됨.
8월 8일, 증권시장 개장.
8월 16일,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죽음.
9월 13일, 《대구매일(大邱每日)》, 학생정치도구화 반대 사설을 게재로 필화(筆禍).
9월 18일, 호헌동지회의 자유민주파, 민주당 창당(대표최고위원 申翼熙).
10월 1일, 광복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 개최.
10월 26일, 중공군 6개 사단 철수 완료.
| ▶ 195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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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제2여당으로 민정당(民正黨) 발기(최고위원 이범석 장택상).
2월 27일, 김창룡 저격범 허태영(許泰榮) 대령 등 구속(11.22. 강문봉 중장 등 추가구속).
3월 30일에 공화당(共和黨)으로 발족.
3월 30일, 김창룡(金昌龍) 육군특무대장 피살.
5월 5일,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유세중 이리(裡里)에서 급서(5.23. 국민장).
5월 12일, 첫 텔레비전방송국(호출부호 HLKI) 개국.
5월 15일, 제3대 정부통령선거 실시. 대통령에 자유당 이승만(李承晩), 부통령에 민주당의 장면(張勉) 당선됨.
6월 8일 국회, 의장에 이기붕, 부의장에 조경규 황성수(黃聖秀) 선출.
9월 28일, 민주당전당대회, 대표최고위원회에 조병옥(趙炳玉) 선출. 대회장에서 퇴장하던 장면 부통령 피습. 현장에서 범인 김상붕(金相鵬) 체포.
10월 1일, 장부통령 저격사건 배후조종자 최훈(崔薰) 구속.
11월 10일, 진보당 창당위원장 조봉암(曺奉岩), 간사장 윤길중(尹吉重) 선출.
11월 29일, 국제시계밀수사건에 황성수 국회부의장, 박영출(朴永出) 외무위원장 관련.
| ▶ 195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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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유엔총회, 유엔 감시하의 통한(統韓)총선거 결의,
1월 14일, 유도회(儒道會) 분규 격화.
5월 5일,어린이헌장선포.
5월 25일, 야당 주최 장충단(忠壇) 시국강연회장에서 테러단 난동(12.5. 주범 유지광 체포됨).
8월 가짜 이강석(李康石)사건으로 사회가 소란.
9월 1일에 주인공 강성병 체포됨.
10월 9일, 《우리말큰사전》(전6권) 30년 만에 완간. 국회, 동성동본(同姓同本)과 8촌 이내 인척의 결혼금지안 채택.
| ▶ 195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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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민참의원 선거법안 국회통과.
1월 13일, 진보당사건 발생. 위원장 조봉암 등, 간부 7명 간첩혐의로 구속(1959.2.27. 대법에서 조봉암 사형 확정).
3월 3일, 북한, 김두봉(金枓奉) 숙청, 천리마(千里馬)운동 시작.
5월 2일, 4대민의원 선거 실시(자유당 126, 민주당 79, 무소속 27석 등 차지).
| ▶ 195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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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보안법 반대데모 전국으로 확산.
12월 13일, 정부, 재일교포 북송문제와 관련,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일본에 제의(일본은 거부).
12월 14일, 교포북송 제1진 975명, 일본 니가타[新潟]를 출항, 청진(淸津) 도착.
| ▶ 196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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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조병옥(趙炳玉) 민주당 대통령 후보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죽음(25. 국민장).
2월 28일, 대구에서 반독재 학생데모 일어남.
3월 15일, 제5대 정부통령 선거 실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 데모.
4월 6일, 민주당민총공명선거위원회 등 3개단체가 합동, 3.15부정선거 규탄 데모.
4월11일, 피살된 김주열(金朱烈)의 시체인양 계기로 제2마산 데모 발생.
4월18일, 고려대학생 데모대, 정치깡패의 기습으로 부상.
4월19일, 서울시내 2만여 학생 총궐기, 419혁명 발발. 경무대 어귀에서 경찰발포로 42명 희생. 서울 등 5개도시에 비상계엄령 선포.
4월21일, 국무위원 일괄사표.
4월23일, 장면(張勉) 부통령 사임.
4월24일,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 총재직 사퇴. 이기붕(李起鵬) 국회의장, 모든 공직에서 사퇴 발표.
4월26일, 데모군중 증가. 상오 10시경 10만에 달함.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4월27일, 대통령권한대행에 허정(許政) 외무장관.
4월28일, 이기붕일가 자살. 조용순(趙容淳) 대법원장 사표. 허정 과도내각 성립(5.1. 315선거 무효확인).
5월21일, 내각책임제 개헌안 공고(6.15. 국회 통과˙공포. 제2공화국 성립됨).
5월29일, 이승만, 하와이로 망명.
6월17일, 곽상훈(郭尙勳) 국회의장, 새 헌법에 의거, 대통령권한을 대행.
7월29일, 민참의원선거 실시(민주당 대승).
8월 8일, 국회 양원 개원(참의원 의장 白樂濬, 민의원 의장 郭尙勳).
8월12일, 민참 합동회의, 제2공화국 대통령에 윤보선(尹潽善) 선출.
8월14일, 북한 김일성, 남북 연방제 제의.
▶ 19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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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대일정책결의안(선국교후경제 등) 채택.
5월 16일, 군사정변. 군사혁명위원회 발족(의장 장도영 부의장 박정희).
5월 18일, 장면내각 총사퇴. 혁명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
5월 20일 최고회의 내각 조직(내각수반에 장도영 의장 겸임).
7월 1일, 서울국제방송국(HLCA) 개국.
7월 2일, 최고회의 의장에 박정희 소장 취임.
7월 3일, 반공법 공포.
7월 22일, 경제재건 5개년계획 발표.
8월 12일, 박정희 최고의장 812성명(정권 이양시기˙국회 구성문제 등) 발표.
12월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실시.
▶ 19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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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공용년호를 서력으로 변경.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성안.
3월 16일, 정치활동정화법 공포.
3월 19일, 원자력연구소 원자로에 첫 점화.
3월 22일, 윤보선 대통령 사임.
3월 24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대통령권한대행.
5월 31일, 증권시장, 약 500억 환의 5월분 수도결제 불이행(증권파동).
6월 10일, 제2차 통화개혁(10대 1로 평가절하, 환를 원로 변경).
12월 17일,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서 가결.
12월 27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민정이양절차 발표.
▶ 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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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민간인 정치활동 재개.
2월 18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218성명(민정 불참선언 및 정국수습 9개 방안 제시) 발표.
2월 21일, 민주공화당 창당.
3월 16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316성명 발표.
5월 14일, 민정당 창당, 대통령후보에 윤보선 지명.
7월 27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민정이양일정 발표.
10월 10일, 서울가정법원 개원.
10월 15일, 대통령선거 실시(박정희 당선).
11월 26일, 국회의원선거 실시.
12월 17일, 제3공화국 발족(새 헌법 발효).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 제6대 국회 개원.
▶ 19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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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제주도 일원 첫 통금해제.
5월 2일, 민주자민국민당 통합 선언.
6월 3일, 63사태 발생. 서울에 비상계엄령 선포.
8월 2일, 언론윤리위법안 국회 통과.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발족.
10월 31일, 한월남, 월남지원을 위한 국군 파견에 관한 협정 체결.
▶ 19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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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국무회의, 비전투병력 2,000명 월남파병 의결.
3월 1일, 충북지역 야간 통금 해제.
3월 22일, 단일변동환율제 실시.
3월 24일, 비둘기부대 제1진 사이공 도착.
4월 17일, 한일협정 반대 데모대, 효창공원서 시민궐기대회.
5월 3일, 민정민주 양당, 민중당 창당.
6월 22일, 한일협정 조인, 국교 정상화.
7월 2일, 국무회의, 1개 전투사단 월남파병 의결.
7월 17일, 이승만 하와이서 사망,
7월 23일 유해 환국.
▶ 19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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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과학기술연구소(KIST) 발족.
3월 1일, 국세청 수산청 발족.
3월 30일, 신민당 창당.
6월 25일, 김기수, 세계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이 됨.
7월 9일, 한미 행정협정 조인(1967. 2. 9. 발효).
7월 29일, 국무회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공표.
9월 5일, 백마부대 제1진 월남 상륙.
10월 31일, 존슨 미국 대통령 한국 방문.
11월 1일, 한미 정상회담,
11월 2일 공동성명 발표.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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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대구 서문시장에 큰불.
2월 7일 민중신한당 통합, 신민당 창당.
3월 22일,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판문점서 위장귀순.
3월 30일, 과학기술처 신설, 원자력원을 청으로 개칭.
5월 3일, 제6대 대통령 선거(공화당 박정희 후보 당선, 7.1. 취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
8월 9일, 제1차 한일각료회담 개최(도쿄).
▶ 196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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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121사태,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월 23일,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원산 앞바다서 북한에 피랍.
2월 7일, 경전선 개통.
4월 1일, 향토예비군 창설.
5월 27일, 제1차 한미국방장관회의(워싱턴).
7월 15일, 문교부, 중학입시제도 폐지 발표.
8월 15일, 정치정화법 시효 완료.
9월 9일,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개막.
10월 14일, 문교부, 대학입시 예비고사제 실시 발표.
11월 21일, 시도민증 없애고 주민등록증으로 대체.
11월 29일, 서울시의 전차 철거.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발표
12월 11일, 광화문 복원 준공
▶ 19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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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국토통일원 개원.
3월 3일, 정부, 가정의례준칙 발표.
3월 28일,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에 서품.
6월 17일, 3선개헌반대 학생 데모 시작.
7월 21일, 경인고속도로 개통.
9월 7일, 신민당,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 국회에 제출.
9월 14일, 3선개헌안국민투표법안 국회서 변칙 통과.
10월 17일, 개헌안 국민투표 실시.
12월 24일, 국제통화기금, 한국을 특별인출권(SDR)통과공여국으로 지정.
▶ 19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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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서울 와우시민아파트 도괴. 사망 33명.
5월 16일, 서울대교 개통.
5월 18일 금산인공위성지구국 우주통신 중계 개시.
6월 2일, 특수층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담시(譚詩) 《오적(五賊)》 필화사건. 필자 김지하, 등 구속.
7월 1일, 우편번호제 실시.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8월 15일, 서울 남산 제1호터널 개통.
10월 31일, 국토종합개발심의회, 국토종합개발 10개년계획 확정.
12월 23일, 정부종합청사 준공.
12월 30일, 호남고속도로(대전~전주 간) 개통.
▶ 19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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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3월 19일, 원자력발전소 기공(경남 동래).
3월 31일, 서울~부산 간 자동전화 개통.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 실시(박정희 후보 당선, 7. 3. 취임).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
7월 8일, 충남 공주에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발굴.
7월 26일, 제8대 국회 개원.
9월 20일, 남북적, 이산가족찾기 예비회담 판문점서 첫 개최.
10월 15일, 서울시에 위수령 발동.
12월 9일, 파월 국군 첫 철수부대 부산항에 개선.
12월 27일, 국가보안법 국회서변칙 통과.
▶ 19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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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최고의 고려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直指心經)》발견.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발표(기업사채 동결).
8월 30일, 남북적십자사, 첫 본회담 평양에서 개막.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특별선언 발표.
10월 17일, 계엄사, 포고 제1호로 대학휴교, 신문통신 사전검열제 실시.
11월 21일, 개헌 위한 국민투표 실시.
11월 22일, 유신헌법 확정.
12월 15일, 첫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8대 대통령에 박정희 후보 선출(12. 27. 취임).
12월 27일 유신헌법 공포(정치활동 재개).
▶ 197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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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비상국무회의, 국정감사 폐지법안 의결.
2월 27일, 제9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3월 3일, 한국방송공사 발족.
4월 1일, 주민세 실시.
4월 10일, 한국 여자탁구팀 세계 제패(유고 사라예보).
5월 5일, 어린이 대공원 개원.
5월 27일, 소련, 한국인(유덕형)에 첫 입국허가. 중앙선 전철 개통(청량리~제천 간).
8월 8일, 김대중피랍사건 발생(일본 도쿄), 한일간 긴장 야기.
▶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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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개헌논의 금지) 2호(비상군법회의 설치) 선포.
1월 14일,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조치 3호 선포.
8월 15일, 광복절기념식장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사건 발생. 대통령부인 육영수 피격 서거.
8월 15일, 서울시지하철(서울역~청량리역 간) 개통.
9월 6일, 반일데모대, 일본대사관 침입, 일장기 찢고 자동차 등 불태움.
11월 15일, 유엔군사령부,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땅굴을 파고 남방 1`km까지 콘크리트구조물 을 구축했다고 발표
11월 22일, 포드 미국 대통령 내한,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발표.
▶ 197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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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 73.11`%).
9월 1일,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 준공.
9월 15일, 조총련계 재일교포 700여명 추석성묘차 모국 방문.
9월 22일, 민방위대 발대식.
10월 14일,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 19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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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경제기획원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월 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경기대회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첫 금메달 획득.
8월 18일, 북한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집단 도끼만행으로 미군 장교 2명 살해.
10월 11일,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송원대의 유물 대량 인양.
▶ 19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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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하비브 브라운 미국 대통령 특사, 박정희대통령과 회담, 철군문제 협의.
6월 19일, 국내 최초로 고리원자력 1호 발전기 점화.
7월 1일, 부가가치세제 실시. 11월 11일, 이리역 화약운송열차 폭발로 참사 발생.
▶ 19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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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동력자원부 발족.
4월 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4월 21일, 대한항공 B707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남쪽 200마일 지점에 강제 착륙.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7월 6일, 제2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집회에서 박정희후보 제9대 대통령 당선.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 발족.
12월 12일, 제10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 197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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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카터 미국 대통령 내한. 12차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발표.
8월 11일, 경찰,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인 YH무역 여공 200여명 강제 해산.
10월 4일, 국회, 김영삼의원 제명.
10월 18일, 정부, 학생시위로 부산에 비상계엄령 선포.
10월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 선포.
10월 26일, 마산창원에 위수령 선포. 충남 삽교호방조제 준공.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정보부장에 의해 피격 사망(1026사태).
10월 27일, 전국(제주도 제외)에 비상계엄령 선포. 대통령권한대행에 최규하 국무총리 취임.
11월 3일, 국장.
11월 6일, 계엄사,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전모 발표.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12월 12일, 수사당국, 정승화 육참총장을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관련혐의로 연행(1212사태).
▶ 1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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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최규하 대통령, 각계 원로중진 23명으로 국정자문회의 구성.
5월 17일, 정부,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
5월 18일, 광주학생시민대규모 데모.
5월 27일, 계엄군 개입으로 진압.
5월 31일, 정부, 계엄하의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신설(의장 최규하 대통령, 상임위원장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
7월 31일, 계엄사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음모혐의로 기소,
9월 17일, 김대중 사형선고.
8월 2일 컬러 텔레비전 시판 개시.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8월 27일,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 제11대 대통령에 당선.
9월 5일, 문교부, 대학교육개혁시안 발표(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 채택).
9월 29일, 정부, 제5공화국 헌법개정안 공고.
10월 22일, 제5공화국헌법 확정.
10월 27일, 입법회의, 국가보위입법회의법 의결.
11월 14일, 신문협회방송협회, 언론기관 통폐합 결정.
12월 1일, 한국방송공사(KBS), 컬러텔레비전 첫 방영.
▶ 19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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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민주정의당 창당(총재 전두환).
1월 17일, 민주한국당 창당(총재 류치송).
1월 24일, 정부, 비상계엄 전면 해제.
2월 11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2월 25일, 전두환대통령, 제12대 대통령 당선.
3월 25일,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4월 20일, 국정자문회의 발족(의장 최규하).
5월 6일,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9월 30일, 제84차 IOC총회, 제24회 하계올림픽경기대회 서울 개최 의결.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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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문교부, 중고생 교복(83년부터)과 머리형 자율화하기로 결정.
1월 5일, 정부, 야간통금 전면해제.
9월 24일, 서울국제무역박람회 개막.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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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공직자윤리법(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발표.
6월 30일,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시작. 1만 189명 혈육 상봉.
9월 1일, 소련 전투기, 사할린 부근서 KAL기 격추(KAL기 사건).
10월 9일,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서 북한 공작원이 장치한 폭탄 폭발, 참배 준비 중이던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 고위관리 17명 순국.
11월 13일, 미국 대통령 레이건 내한(12일 1차 한미정상회담, 13일 2차 한미정상회담, 14일 공동성명발표).
11월 29일, 88서울올림픽경기대회 휘장마스코트 발표.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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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미국 대통령 레이건 한반도 안정위해 남북한과 미중국의 4자회담 제의.
4월 2일, 안기부, 78년 홍콩서 실종된 영화배우 최은희, 감독 신상옥의 북한 납치사실 발표.
5월 1일, 서울대공원 개원.
5월 3일, 교황 바오로 2세 방한(6일 여의도에서 한국순교자 103위의 시성식 집전).
▶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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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5월 17일, 전국 80개 대학 3만 8000여명, 광주사태 진상규명 요구 시위.
6월 17일, 김영삼 김대중 회동, 민주화요구 공동발표문 채택.
7월 19일, 부산 지하철 1호선 1단계 구간(범어사~서면) 개통.
8월 17일, 고대 의대, 냉동정액을 이용한 수정으로 임신된 아기가 국내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발표.
9월 20일, 남북한 고향방문단 서울과 평양 도착(남북한 각각 151명씩 3박 4일간 체류).
9월 21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 40년만에 고향방문단 혈육 상봉.
9월 27일, 한국이 참여한 첫 해외개발유전인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서 생산 개시.
11월 19일, 한국, 남극자원보존협약 가입.
▶ 19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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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납북된 최은희신상옥,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
3월 26일, 재무부, 덤핑방지관세제 실시.
8월 21일, 새 국립중앙박물관, 구 중앙청청사를 개조해 개관.
9월 20일,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막(~10월 5일).
10월 6일, (주)삼성전자 문태원 연구원, 세계 최초로 초소형 4mm VTR개발.
▶ 19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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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군, 경찰고문으로 사망.
2월 4일, 과학기술원 윤한식손태항 박사팀, 최강력고분자 알로이섬유 세계 최초로 개발.
3월 6일, 서울시교위, 시위전력의 교육대학 졸업생 12명 교사임용 제외.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 호헌 선언.
6월 10일,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 610민중항쟁.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총재 회담.
6월 25일, 경찰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에 대한 연금해제.
6월 29일, 629선언.
7월 4일, 김영삼 민주당총재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 시국대처방안 위한 6개항을 발표.
8월 5일, 노태우 대표 민정당 총재 취임.
8월 29일, 대전 오대양(주) 여사장 등 32명, 용인공장서 동반자살시체로 발견.
9월 27일,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발족.
10월 27일, 헌법개정국민투표 실시(찬성 93.1%).
10월 29일, 개헌안 확정 공포.
10월 30일, 신민주공화당 창당(총재대통령후보 김종필).
11월 9일, 민주당, 임시정당대회에서 김영삼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
11월 12일, 평화민주당 창당대회(총재대통령후보 김대중 선출).
12월 3일, 중부고속도로(서울~대전 간) 개통.
12월 15일, 정부, 대한항공기 폭파용의자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시체)를 바레인에서 서울로 이송.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 실시.
12월 18일, 중앙선관위 노태우 민정당후보 당선 공포.
▶ 19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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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대한상의, 공산권 경제단체와는 처음으로 헝가리 상공회의소 경제협력확대를 위한 업무협조협정 체결.
2월 12일, 교통부, 금호그룹에 제2민간항공인가.
2월 22일, 보사부, 국내 첫 AIDS환자 발생 발표.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 제13대 대통령 취임. 새 헌법(전문과 본문 130조, 부칙 6조) 발효. 제6공화국 출범.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7월 19일, 정부, 월북작가의 해방전 문학작품에 대한 출판허용조치 발표.
9월 17일,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개막(10월 2일까지 16일간 160개 IOC회원국에서 1만 3626명의 선수단 참가).
10월 4일, 유고, 서울무역사무소 개설.
10월 15일, 서울장애자올림픽 개막(65개국 4,361명 참가).
11월 2일, 국회 5공비리 특위, 국회에서 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관련 비리조사를 위한 1차 청문회 시작.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자신의 재임 중에 일어났던 비리를 시인사과하고 재산 일체를 국가에 헌납하기로 발표.
▶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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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헝거리와 국교 수립(공산권 국가로는 처음).
3월 26일, 문익환 목사, 북경을 경유 평양에 도착, 김일성과 회담.
4월 13일, 귀국, 공안합수부에 체포됨.
6월 30일, 북한의 중앙방송, 전대협대표 임수경(林秀卿)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
8월 31일, 동아건설, 세계 최대규모인 리비아 2차대수로공사를 수주(53억달러).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 5공특위광주특위 연석회의에 출석, 125개 항목에 걸친 서면질문에 관해 증언함.
▶ 199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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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김영삼 민주당 총재김종필 공화당 총재, 청와대에서 3당 통합을 선언.
2월 9일, 3당합당 의결, 당명 민주자유당(민자당).
2월 21일, 외무부, 모스크바주재 영사처 개설을 발표.
5월 17일, 교통부, 수도권 신공항입지를 영종도로 확정.
6월 5일, 노태우 대통령코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 한소간 조속한 수교에 합의하고 상호 교환방문하기로 합의.
6월 28일, 국무회의, 새 민방(民放)의 방송법 개정안 의결.
9월 4일, 강영훈 총리 연형묵 북한 총리, 서울에서 첫 총리회담 개최(~7일).
10월 31일, 정부, 새 민방텔레비전방송국의 지배주주로 (주)태영(泰榮)을 선정.
12월 13일, 노태우 대통령, 소련 방문(~17일).
12월14일 양국 정상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 후 「모스크바선언」을 발표.
12월 15일, 국회, 지방자치법지방의회선거법지방자치단체선거법 등 지자제관계 3개법안 통과.
▶ 199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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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정부, 걸프전의 군의료진 지원조사단 26명 사우디에 파병.
1월 22일, 한국의료지원단 현지로 출발.
1월 30일, 군수송단 파견.
3월 26일, 시군구의회 의원선거 실시.
4월 19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소련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제주도) 방문.
6월 20일, 광역의회의원선거 실시.
9월 28일, 유엔총회, 남북한유엔가입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12월 9일, 새 민방 서울방송(SBS) 개국.
▶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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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노태우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의 대북한 직접협상을 배제하고 한반도 핵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하며, 북한은 조기에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국제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2월 8일, 통일국민당 창당대회(대표최고위원 정주영).
2월 8일, 남북한, 두만강개발회담 실무접촉에서 나진선봉지구개발에 공동보조하기로 합의.
2월 18일, 정원식 총리 및 연형묵 북한총리, 남북고위급회담(평양)에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등 합의서 본문을 교환발효.
2월 20일, 정원식 총리, 김일성 주석 예방.
3월 24일, 제14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4월 10일, 정부,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개방한다는 내용의 농산물협상이행계획서를 GATT에 제출.
5월 5일,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개최. 북한총리 등 대표단 90명 서울 도착.
6월 12일, 정부, 종합유선방송법시행령확정.
8월 9일, 황영조(黃永祚), 바로셀로나올림픽경기대회 마라톤 우승.
8월 11일, 한국 최초의 과학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8월 24일, 한국 외무장관 및 중국 외교부장, 양국 정부의 외교관계 수립 등 6개항의 공동성명 발표.
8월 27일, 한국주재 중국대사관 개관.
9월 29일, 노태우 대통령, 중국방문 중 한중정상 회담결과 8개항의 공동언론발표문 발표.
10월 8일, 노태우 대통령, 중립내각개편 단행.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선거 실시.
12월 19일, 김영삼후보 당선. 김대중, 대통령선거패배와 관련 정계은퇴선언.
12월 22일, 한국, 베트남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 19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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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정주영 국민당 대표, 대표최고위원직 사퇴하고 정계은퇴의사를 밝힘.
2월 25일,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3월 12일, 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
3월 14일, 정부, 북한의 NPT탈퇴 해결 때까지 남북대화 중단.
3월 28일,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구포역 입구에서 지반붕괴로 전복(68명 사망, 124명 중경상).
3월 29일,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 부동산취득의혹과 관련 민자당 탈당.
4월 27일, 국회, 박준규의장 사퇴안을 가결하고 이만섭(李萬燮)의원을 새의장으로 선출.
4월 7일, 정부, 소말리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약 250명의 건설공병부대를 파견하기로 유엔측에 공시통보.
5월 6일 안기부, 작가 황석영(黃晳暎) 89년 3월 첫 밀입북한 이래 5차례 밀입북하여 김일성과 고려연방제 등을 논의했으며 대남공작지침에 따라 범민련을 결성, 운영해 온 것으로 발표.
5월 20일, 국회,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처리.
5월 29일, 정부, 종합유선방송(CATV)의 방송구역으로 서울 21구역을 비롯 전국 116개 구역을 고시.
6월 7일, 보사부, 약사관련 규칙개정으로 한약사 분쟁.
7월 17일, 대검, 율곡(栗谷)사업비리사건과 관련 이종구(李鍾九)이상훈(李相勳) 전국방장관과 한주석(韓周奭) 전공참총장 및 김철우(金鐵宇) 전해참총장 등 4명을 구속.
8월 6일, 대전엑스포 개막, 108개국33개 국제기구 참가.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
8월 17일, 감사원, 평화의 댐 및 율곡사업 특별감사와 관련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게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서면조사서 전달.
8월 20일, 경부고속철도 차종을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로 확정.
8월 31일, 국회 1212사태율곡사업평화의 댐 진상조사 착수.
9월 26일, 우리별 2호 발사 성공(프랑스령 기아나).
10월 10일, 전북 부안(扶安) 앞바다에서 서해페리호(110`t급) 침목로 268명 이상 사망실종.
10월 15일, 전교조(全敎組), 해직교사의 복직문제와 관련하여 쟁점이 되어 온 전교조탈퇴 조건을 수용 복직하기로 결정.
12월 13일, 한국 및 미국, 쌀시장개방안 타결.
▶ 19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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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영남지역 악취수돗물 파동.
1월 24일, 서울지검, 장영자(張玲子)를 107억원을 편취하고 37억원의 당좌수표 중 5억원을 부도낸 혐의로 재구속.
2월 22일, 감사원, 정부서 불우이웃돕기 등으로 모은 성금을 판공비시설비 등에 유용한 사실을 밝혀내 17개부처시도에 문책 통보.
4월 22일 김영삼 대통령과 이희창(李會昌) 국무총리,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갈등으로 국무총리 사표 제출.
7월 9일, 평양방송, 김일성 사망(8일)을 보도.
7월 19일, 김일성 장례식.
7월 20일, (주)현대중공업 직장폐쇄, 전노대(全勞大) 개입.
8월 4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요구.
9월 5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태권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경기대회 정식종목으로 승인.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10월 24일, 안기부, 625전쟁 때 포로로 잡혀 납북된 조창호(趙昌浩)가 43년 만에 북한을 탈출하여 표류 중 구출되었다고 발표.
12월 3일, 기획원-재무부, 건설부-교통부를 통합하는 등 정부조직개편.
▶ 19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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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정부, 부동산실명제를 7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확정발표.
2월 21일,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공식 출범(총재 김종필).
3월 1일, 케이블TV 27개채널 본방송 개시.
4월 28일, 대구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사고 발생.
5월 26일, 정부, 북한에 조건없이 곡물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남북 대표회담개최 제의.
6월 17일, 남북대표들, 베이징[北京]에서 대북 쌀제공에 관한 첫 회담 개최.
6월 25일, 대북 지원을 위한 대북 지원 쌀 동해항 출발, 청진항 도착.
6월 27일, 지방선거 실시. 서울시장 조순(趙淳) 후보 당선.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 2개동 중 북쪽건물 붕괴. 사망실종 506명, 부상 940여 명.
7월 18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 신당 창당 공식 선언.
7월 24일, 8만여 톤 원유를 적재한 유조선 시프린스호, 전남 여천군 해상에서 태풍으로 좌초, 최악의 해양오염사고 발생.
8월 2일, 서석재(徐錫宰) 총무처장관,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 4,000여억원의 가명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밝힘.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해명을 요구.
8월 5일, 무궁화위성, 한국 최초의 위성으로 미국 케이프 커내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 성공.
8월 11일, 교육부,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한다고 발표.
8월 18일, 북한 평양방송, 북한 대동강 일대 등에 폭우로 홍수가 발생했다고 보도.
9월 20일, 제1회 광주 비엔날레 개막(9.20.~11.20).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朴啓東)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주)우일양행 명의로 된 128억 2700여만원 예금조회표를 공개하며 이는 노태우 전대통령의 퇴임 직전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됐던 4,000억원의 비자금을 100억원씩 40개 계좌로 분산 예치시킨 것 중 일부라고 주장.
10월 27일, 노태우 전대통령, 자택 기자회견에서 재임 중 통치자금을 조성, 대국민사과.
11월 8일, 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출.
11월 16일, 검찰, 노태우 전대통령이 재임기간에 30개 재벌기업체 대표들로부터 2,358억 96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밝힘. 노태우 전대통령,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
12월 2일, 전두환 전대통령, 검찰의 1212와 518재수사와 관련,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겠다고 연희동 자택에서 성명을 통해 거부의사를 밝히고 측근들과 합천(陜川)으로 낙향.
12월 3일, 검찰, 검찰소환을 거부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 안양교도소에 수감.
12월 5일, 민자당, 새 당명을 신한국당로 변경.
12월 6일, 불국사 8만대장경 종묘 등 3건의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
12월 19일, 국회, 1212 및 518관련자 처벌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안의결.
12월 26일, 5월 30일 북한군에 나포된 우성호 선원 5명과 사망한 3명의 유해, 판문점을 통해 송환.
"27폭동"은 법정아재께서 7,8살쯤에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27폭동"을 찾아 보니 1948년 2월 7일에 발생했다고 되어 있네요.
다음은 인터텟에서 가져온 "한국 현대사 연표(1945~1995년)"입니다.
"27폭동"은 아래 1948년 2월 7일, 2월 10일을 참고하세요.
*** 한국 현대사 연표 [해방 이후, 1945~1995년] ***
http://blog.daum.net/cielomio/5488611
http://blog.daum.net/wrmcf/2996599
| ▶ 194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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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8.15 일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 여운형 주도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발족, 제주에 일본군 제58군 병력 66,780명 잔존
45.09.02 맥아더, 북위 38도선을 미소 양군의 군사 경계선으로 포고
45.09.06 건준 중심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선언
45.09.08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 24군단, 인천을 통해 한국에 진주
45.09.09 맥아더 포고 제1호 발포 (미군정 선포/일제 관리의 계속 근무를 명함)
45.09.10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오대진), 제주농업학교에서 결성
45.9중순 미군선발대(인솔자 미군정 사법부 에모리 우달)가 제주 주둔 일본군의 항복 절차 협의 차 제주에 왔다가 돌아감
45.09.22 제주도 인민위원회(위원장 오대진) 결성
45.09.26 조천면 함덕리에서 친일경력으로 눈총을 받던 30대 남자가 동네 청년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절명
45.09.28 일본군 제58군의 항복 조인을 위해 미군 제주 상륙, 제주농업학교에서 항복 조인식을 가짐
45.10.10 군정장관 아놀드 소장, 북위 38도선 이남의 유일한 정부는 미군정이라며 인공의 존재 거부 성명 발표
45.10.21 전남 제8관구 경찰청 제22구 경찰서(제주 경찰서)발족
45.10.22 일본군 송환 임무를 맡은 미군 전술단 입도
45.10.23 미 LST편으로 제주 잔류 일본군 철수 개시 (11월 12일까지 일본군 48,524명 송환)
45.10.24 도내 청년들로 로고스회 창립해 제북교에서 영어 강습 등 실시, 이 밖의 청년단체로 백록회, 학병동맹 등이 결성됨
45.11.05 인민위원회 산하 보안대에 의해 한라단 단원 피습 사건 발생, 미군정, 인민위 사무실 급습해 154명 체포하고 밤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 발동
45.11.10 군정 업무팀인 미군 20연대 59군정 중대 입도. 본격적인 군정업무 실시(군정관 스타우드 소령)
45.11.18 제주비행장 창고에서 일제 의복을 훔쳐 나오던 한 여인이 미군 위병이 쏜 총에 맞아 절명, 이와 유사한 사건이 연말까지 두 건 더 발생함
45.11.20 서울서 3일간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 대회에 제주 대표로 오대진 최남식 김정노 이운방 등 참가
45.12.01 제주제일중학원(오현중 전신)제주중학원(제주중 전신) 등 사립학교 설립 추진
45.12.09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 결성
45.12.12 중문면 주민들, 면장 집에 몰려가 "공출쌀 내놓으라"고 시위하다가 이를 거절하는 면장을 집단 구타. 신고 받고 출동한 미군이 시위 군중에 발포하여 민간인 1명 사망, 1명 중상
45.12.28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한국 문제에 관한 결정 소식이 국내에 전해짐
| ▶ 194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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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1.05 신탁통치반대 군중대회
46.2월 군정청 정치분석과장 홍양명의 인솔로 제주도제 실시 사전답사차 중앙기자단 내도
46.02.14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민주의원'(의장 이승만)발족
46.02.15 민주주의민족전선(약칭 '민전') 결성
46.3월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제주도지부(위원장 김충희) 발족
46.03.20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막
46.05.08 제1차 미소공위 무기휴회
46.05.15 미군정,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진상 발표
46.06.05 이승만, 이리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 시사 발언
46.06.17 전국에 콜레라 만연. 군정 당국 제주도에 입도할 때에는 6일간의 검역기간 거치도록 통제
46.7월 초순 독촉국민회 제주도지부 결성
46.07.14 김구, 한독당제주도당부(위원장 홍순용)대회 참석차 내도. 제주북교에서 시국 강연
46.08.01 제주도제 실시 2군 1읍 12면 행정체제(지사 박경훈, 북제주군수 박명효, 남제주군수 김영진)
46.08.27 콜레라에 의한 제주도 사망자 360명(총 환자수 708명)
46.08.30 미7함대 순찰구축함,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던 4척의 선박(승선자 175명)나포
46.09.11 제주감찰청(청장 김대봉) 발족
46.10.01 10월 대구 인민 항쟁 발발
46.10.09 경찰관서 앞에서의 항위 시위 발생 보고에 따라 광주에서 미군 부대 파견
46.10.18 추곡수집량, 제주도 5천석으로 결정(미곡수집 반대운동 벌어짐)
46.10월 흉년으로 식량난. 주정공장에 쌓아 두었던 주정원료인 절간고구마 3천 가마를 대용식으로 방출
46.10.21 AP통신 시사평론가 화이트, "제주도는 전략기지로서 동양의 지브롤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타전. 국내 신문에 보도되면서 파문 일어남
46.10.29 과도입법의원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제주도에서만 유일하게 좌파 인물인 문도배김시탁 선출
46.11.16 조선경비대 제9연대(연대장 장창국 부위) 모슬포에서 창설
46.11.23 남로당 결성(제주의 경우 815 직후에 조직된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가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로 개칭됨)
46.12..04 서귀포 지서가 제2구 경찰서(서장 유기병)로 승격. 제주경찰서는 제1구 경찰서(서장 강동효)로 개칭됨
46.12.08 제주도감찰청장에 신자균 부청장 승진 발령. 김대봉청장은 경무부로 발령됨
46.12.13 제주출신 입법의원 문도배김시탁, 서울 민전회관에서 입법의원 참가 거부 성명 발표
| ▶ 194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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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1.11 재일동포의 희사품을 싣고 오던 복시환이 서귀포 근해에서 밀수혐의로 나포
47.01.12 제주도 민청(위원장 김택수) 결성
47.01.25 제주도 부녀동맹(위원장 김이환 ) 결성
47.02.01 광복청년회 제주도지회 (위원장 한효현 → 김인선) 결성
47.02.05 동아일보서울신문 등 중앙지, '복시환 사건'을 둘러싼 모리행위 보도
47.02.10 제주 읍내 중고교생 1천여 명, '양과자 반대' 등 반미구호를 외치며 관덕정 광장서 시위.
47.02.17 제주도 31투쟁기념준비위원회(위원장 安世勳) 결성
47.02.19 복시환사건에 연루된 제주감찰청장 신자균 해임(3월 20일자로 파면결정). 후임 청장에 강인수 발령
47.02.23 제주도 민전(공동의장 안세훈이일선현경호) 결성. 충남충북경찰청 소속 경찰관 100명 제주도착
47.03.01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 제주북교에서 개최. 제주읍과 애월조천면 주민 등 3만 명 참가. 기념식이 끝난 후 일부 주민들 '통일조국독립 전취', '삼상회의 지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경찰발포로 6명 사망, 8명 중경상
47.03.05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제주도 31사건대책 남로당 투쟁위원회'(위원장 김용관) 결성. 대정면당의 건의로 전도 총파업 결의
47.03.08 '31발포사건'과 관련해 주조선미군정주조선미육군사령부 합동조사단(단장 카스틔어 대령) 내도
47.03.09 제주감찰청, '제주경찰감찰청'으로 개칭. '제주 31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홍순용) 결성
47.03.10 제주도청을 시발로 경찰수뇌부 인책사임과 발포경관 처벌 등을 요구하며 민관합동 총파업 돌입. 13일까지 166개 기관단체에서 41,211명 파업에 가세
47.03.11 강인수 감찰청장, 도립병원 앞에서의 발포를 '경찰의 무사려한 행위'로 규정하며 유감 표명
47.03.12 경무부 최경진 차장, 제주파업사태 언급하면서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
47.03.14 조병옥 경무부장 내도
47.03.15 전남경찰청 소속 122명, 전북경찰청 소속 100명 등 응원경찰대 222명이 추가로 내도. 조병옥, 파업주모자 검거명령
47. 3월중순 미 CIC 제주사무소 설치
47.03.17 응원경찰대, 중문 지서 앞에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군중에 발포, 8명 중경상
47.03.18 강인수 감찰청장, 파업사태와 관련된 검속자가 200명에 이른다고 발표
47.03.19 조병옥 경무부장, 관덕정 앞에서 벌어진 경찰발포에 대해 '치안유지의 대국에 입각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는 담화문 발표
47.03.21 CIC, 제주도의 우익 정당단체는 섬 전체적으로 겨우 1,000명의 단원을 확보한 불완전한 조직체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섬주민 60~80%의 성향이 좌익이라고 중앙에 보고함
47.03.22 남로당 지도 아래 전국적인 총파업
47.03.24 민전 중앙본부, 제주사태 특별조사단(단장 오영 조사부장)을 제주에 파견했으나 경찰에 의해 서울로 압송
47.03.31 제주경찰감찰청장에 강인수 청장의 후임으로 김영배 발령
47.04.02 미군정, 제2대 제주도 군정장관에 렛셀 D. 베로스 중령을 임명
47.04.03 31사건 연루자 군정재판 첫 개정. 군정재판 1호는 제주농업학교 영어교사 한병택으로 체형 6월 선고
47.04.04 민관수습회의 개최
47.04.10 경찰 당국, 파업검속자는 500명에 이르며 이 중 260명을 군정재판에 회부했다고 발표
47.04.28 응원경찰대의 교체병력으로 철도경찰 245명을 제주경찰에 배속. 제주경찰 정원 500명으로 증원
47.04.30 제주도 민청위원장 김택수, 서울서 검거됐으나 미 CIC의 조사받고 석방됨
47.05.07 응원경찰대, 제주서 철수
47.05.20 제주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밀항선 대마도 근해에서 침몰, 승객 20여 명 사망
47.05.21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47.05.23 31사건과 관련 재판에 회부된 328명에 대해 공판 완결. 체형 52명, 집행유예 52명, 벌금형 56명, 나머지 168명은 기소유예 및 불기소처분
47.05.24 제1구 경찰서장을 김차봉(제주 출신)으로 교체
47.05.26 피의자 고문사건으로 한림지서장차석 등 경찰관 2명 구속
47.06.01 9연대장 이치업 소령으로 교체. 경찰, 삐라 살포 혐의로 제주읍내 중학생 20명 검속
47.06.02 제주여중학생들, 파쇼교육 중단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47.06.06 구좌면 종달리에서 민청 집회를 단속하던 경찰관 3명이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한 세칭 '종달리 66사건'발생. 이 사건으로 43명 기소돼 이 중 10명이 실형 선고
47.06.11 하곡수집량 북군에 10,800석, 남군에 6,200석 할당
47.06.20 여러 마을 청년들, 삐라살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됨
47.06.24 독촉국민회독청제주도지부 연합으로 60일간 세력확장을 위한 도내 순회계몽활동
47.07.03 제주농업학교 학생들, 삐라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퇴학처분을 받자 이에 항의해 집단퇴학원을 제출
47.07.18 전 지사 박경훈, 제주민전 의장에 추대
47. 7월말 한림면 명월리에서 하곡수집을 거부하는 농민들과 우익청년단체원 간에 충돌
47.08.07 제주에서 '미군을 축출하자'는 반미 삐라 나돎
47.08.08 안덕면 동광리에서 마을청년들이 곡물수집관리 3명에 집단폭행 가함
47.08.12 미군정, '815폭도음모사건'과 관련해 좌파세력에 대한 대규모 검거작전 전개(전국 검속자 13,769명)
47.08.13 경찰, 조천면 북촌리에서 삐라 붙이던 소년을 추격하며 발포해 주민 3명 총상. 흥분한 주민 200여 명, 경찰관 3명을 붙잡아 뭇매를 가한 뒤 함덕지서로 몰려가 항의시위. 마을주민 40여 명 체포됨
47.08.14 경찰,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을 비롯 도청 간부사회인사 등 30여 명을 '815 폭동 음모'와 관련해 체포. 朴 의장은 3일만에 석방됨
47.08.19 제주도 전역에 곡물수집을 반대하는 삐라 살포됨
47.08.27 경찰, 애월면 하귀리 미수동에서 무허가 집회와 삐라살포 혐의로 마을주민 10여 명을 검속
47.08.28 유해진 지사, 사상문제를 빌미로 도 과장급 4명에 권고사직시키는 것을 시발로 인사정비 착수
47.09.07 도 식량사무소장 박태훈, 자택에서 정체 불명의 청년들로부터 테러당함. 서청단원의 소행으로 밝혀짐
47.09.15 중앙청 식량행정처, 제주의 하곡수매실적은 53%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하다고 발표
47.09.17 제2차 미소공위 결렬, 미국, 한반도문제를 UN에 상정
47.09.26 제1구 경찰서장 김차봉 해임. 후임 서장에 문용채(평남출신) 발령
47.09.27 생필품영단 직원과 제주농업학교제주중 교사 등 36명, 불온서류와 관련돼 검속됨
47.10.06 제주지법, 포고령위반으로 기소된 남로당 제주도위원장 안세훈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천 원을 언도하고 석방
47.10.07 구좌면 행원리에서 우익조직 확장운동을 벌이던 대청단원과 마을청년 충돌. 경찰 16명 연행
47.10.19 미 CIC 제주사무소, 우익정당 당원확장 과정에서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고 중앙에 보고
47.10.21 미 CIC 제주사무소의 개입으로 대동청년단 제주도단부(단장 김충희) 결성
47.11.02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결성대회
47.11.05 미군 4명, 제주 읍내 식당에서 종업원들을 구타한데 이어 이를 만류하는 경찰관과 행인들에게도 폭행
47.11.18 서청단원들, 자금모금을 위한 광범위한 테러 행위로 인하여 미 CIC와 지방경찰로부터 경고받음.
47.11.25 CIC 제주사무소는 서청 제주도단장이 '제주도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말해왔다고 상부에 보고
47.12.03 제3대 제주도 군정장관으로 맨스필드 중령 부임
47.12.07 조선민족청년단 제주도단부(단장 백찬석) 제1차 총회
47.12.13 CIC 제주사무소, '제주도 경찰이 빠른 시일 내에 정의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제주감찰청에 대한 공격이 있으리라'는 여론을 상부에 보고
47.12.26 제주도의 추곡수매 실적 11%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
| ▶ 194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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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월 7일, 초등교육 의무교육 실시.
48.01.08 UN조선위원단 입경
48.01.12 구좌면 김녕리에서 지서, 서청, 대청 등의 간판이 훼손되는 사건 발생
48.01.22 군정경찰, 조천에서 있었던 남로당 집회장 덮쳐 106명 검거. 미군 정보팀, 압수한 문서에 의하면 '2월 중순과 3월 5일 사이에 폭동계획이 있었다'고 보고. 26일까지 전도적으로 남로당 관련자 115명 추가 체포
48.01.23 미군 정보팀, '제주도의 좌익은 반미적이 아니며, 최근의 테러는 우익이 자행했다'고 상부에 보고
48.01.30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122 검거사건'에 언급, "경찰은 남로당에 가입한 자를 탄압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비합법적 행도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라고 발표
48.02.01 9연대장 이치업 중령 후임으로 부연대장 김익열 소령 임명
48.02.07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27 구국투쟁' 발생
48.02.10 조병옥 경무부장, '27 폭동'으로 전국적으로 39명이 사망했으며 8,479명이 검거했다고 발표
48.02.14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함덕성산포조천대정하도삼양화북두모 등지에서 시위가 있었고 사계리에서 경찰관 납치사건이 있었다고 발표
48.02.25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에게 남북협상 제의 서한 발송
48.02.26 UN임시총회에서 'UN한국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안이 채택. 단독선거 시행 현실로 나타남
48.3월 초순 한림면과 애월면 중산간 지역에서 '청년들이 무장훈련을 한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 현지 출동
48.03.01 UN한국위원단, 남한만의 단독선거 결정 발표
48.03.02 함덕지서가 공격을 받았으나 경찰이 공포를 쏘아 시위자들을 해산시킴
48.03.04 조천지서에서 취조받던 조천중학원 학생 김용철, 고문으로 사망
48년 3월 8일, 김구, 남북협상을 제의.
48.03.10 조천중학원 학생들과 주민들, 지서에 몰려가 고문치사사건 항의시위
48.03.11 김구 김규식 김창숙 조소앙 조성환 조완구 홍명희 등 7인 공동성명으로 510선거 반대
48.03.12 성산면 관내 청년 66명, 남로당을 탈퇴해 대동청년단에 가입한다는 성명 발표. 이후 남로당 탈퇴 성명 줄이음
48.03.14 모슬포지서에서 영락리출신 청년 양은하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
48년 3월 16일, 북한중공, 비밀군사협정 체결.
48.03.29 한림면 금릉마을에서 미군정을 비판하던 청년 박행구를 경찰과 서청에서 붙잡아 현장사살
48.03.30 전국 일원에서 510 총선거 선거인 등록업무 개시
4월 3일, 제주도에서 4˙3사태 시작. 16일, 최초의 총선거, 입후보자 등록마감(934명 등록).
48.04.04 미군정, 제주도 사태를 '치안상황'으로 간주해 각 도의 경찰청에서 1개 중대씩차출, 8개 중대 1,700명의 본토 경찰 병력을 제주에 파견하는 것을 승인
48.04.05 제주경찰감찰청 내에 '제주비상경비사령부'(사령관 金正浩 경무부 공안국장) 설치
48.04.06 조병옥 경무부장, 서울에서 기자회견 통해 제주도사태의 인명피해 상황 밝히고 응원경찰대 급파했다고 발표. 조병옥, 서청본부에 반공정신이 투철한 서청단원 500명을 제주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
48.04.09 510 총선거 선거인 등록마감(전국 등록률 91.7%, 제주도 등록률 64.9%)
48.04.10 육지부와의 해상교통망 일체 차단한다는 내용의 제주도 도령 공포.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모슬포 9연대 방문해 경비대 병력지원 요청했으나 김익렬 연대장 '치안상황에 군이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
48.04.13 9연대, 미군 주둔지와 정부 시설 경비 목적으로 특별경비부대 제주읍에 파견 미군 당국, 본토에서 제주에 미군 증파
48.04.15 남로당 제주도당 대회에서 무장봉기 추인. 기존의 자위대 해체해 인민유격대 편성
48.04.16 제주도 인민유격대 총책 김달삼의 명의로 미군정을 상대로 '510망국단선 반대를 위한 무장봉기 성명' 발표. 딘 군정장관, 만 18세 이상 55세 이하 남자는 모두 의무적으로 향보단원이 돼야 한다는 향보단 조직 계획 발표. 경무부, 전국적으로 선거사무 방해사건이 143건에 이른다고 발표
48.04.17 미군정, 그 동안 관망상태의 9연대에 진압작전 출동 명령, 9연대 군사고문으로 정보장교 출신 드루스 대위 부임
48.04.19 미군정 경찰고문관 레스터 코퍼닝, 제주 시찰한 뒤 '섬 북부의 주민 대부분이 산속으로 들어갔으며 경찰관은 신경과민 상태에 놓여 있다. 는 요지의 정보 보고. 김구김규식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48.04.23 무장대 토벌작전은 경비대가 맡고, 경찰은 치안만을 담당하는 내용의 역할 재조정
48.04.24 제주비행장에 착륙하려던 미 군용기 C-47기가 저격받음. 미군 정보기관, 제주도 유격대의 집결지로 애월면 어도지경 '샛별오름', 애월면어도지경 '바리악', 조천면 선흘지경 '거문오름' 등 세 곳을 지목.
48.04. 25일께 평화협상 추진중이던 김익열 연대장에게 딘 장군의 고문이 나타나 초토화작전 감행 회유. 김 연대장 이를 거부. 미군정, 부산 5연대 1개 대대(대대장 오일균 소령)를 제주에 파병명령
48.04.25 제주도경비사령부, 4월 3일부터 25일까지의 제주도 인명피해 상황 발표. 이 기간의 사망자 83명의 인적사항을 경찰관 7명, 양민 27명, 관공리 2명, 폭도 47명으로 분류
48.04.28 중산간지대인 구억 국민학교에서 김익열김달삼 간의 평화회담 성사. 이 회담에서 ①72시간 내에 전투중지 ②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위반하면 즉각 전투재개 ③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의 신병보장 등 3가지 조건에 합의
48.04.29 딘 군정장관 극비 제주시찰. 이 방문 뒤 미군정의 정책이 화평보다는 토벌위주로 선회
48.04.30 제주읍 오라리에서 대청 단원 부인 2명, 좌익청년들에 의해 인근 산인 '민오름'으로 납치당함. 경찰의 추격전이 벌어진 가운데 1명은 숨지고 1명은 극적으로 살아남. UP통신, 4월 한 달 동안 남한에서 선거관련 무력충돌로 154명 사망했다고 전세계에 타전.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남한 단독선거 반대와 미소 주둔군의 동시철수 결의 공동성명 발표
48.05.01 서청대청 단원들에 의해 제주읍 오라리에서 방화사건 발생. 이 와중에 경찰과 무장대의 총탄에 여인 2명 사망.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경비대는 '우익단체의 소행'으로, 경찰은 '폭도의 소행'으로 엇갈린 보고를 함. 미군정은 경찰의 보고를 수용. 특히 CIC 장교는 김익열 연대장에게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 초토화 토벌작전을 지시. 오라리사건을 주무대로 촬영된 미군 기록영화 '제주도의 메이데이'는 이 사건을 폭도의 소행으로 조작 편집
48.05.03 제주읍 남서쪽 야외에서 미군과 경비대의 인솔 아래 산에서 내려오던 귀순자 대열을 향해 경찰이 중기관총으로 난사. 이 사건을 놓고 경비대는 평화협상의 진로를 훼방하는 경찰의 소행으로, 경찰측은 폭도들이 경찰로 가장해서 저지른 소행으로 각각 주장
48.05.04 귀경한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기자회견에서 "제주폭동에 팔로군 참가, 기관총 소지 등의 풍설은 전연 낭설이고 폭도들은 주로 제주도민이고 그 수효는 300~400명으로 추측된다."고 발표
48.05.05 딘 군정장관, 제주도 미군정청 회의실에서 제주도사태의 진압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9인 최고수뇌회의 소집. 이 회의에서 경비대측은 화평정책을, 경찰측은 토벌정책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다가 급기야 조병옥 경무부장과 김익열 연대장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짐
48.05.06 김익열 연대장 전격 해임. 후임 연대장에 박진경 중령 부임. 딘 군정장관, 박 연대장에게 최소한의 무력 사용해 반란을 진압하라는 밀명 내림. 미군정, 수원에서 창설된 11연대 1개 대대 제주에 파병 명령 귀경한 딘 군정장관, 외지인들의 선동에 의해 제주폭동이 일어났다고 발표. 또 '현재의 제주도 분위기는 평온하며 경찰과 경비대가 협력활동하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
48.05.0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사건의 치안수습대책'발표. 당면대책으로 ①경찰전문학교 정예부대 제주 파견 ②유능 형사대 파견을, 영구대책으로 ①제주경찰학교 강화 ②경찰인사 재편 ③경찰정원 증원, 2개 경찰서 신설계획을 천명
48.05.09 UP통신, 510선거 앞두고 남한의 상황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며 '그리스 사태의 완전한 재연'이라고 타전
48.05.10 510 총선거, 도내 각지에서 투표 거부 사태 발생(좌익계남북협상파 불참).
48.05.11 전국 200개 선거구 가운데 제주도 북제주군 갑구(투표율 43%), 북제주군 을구(투표율 46.5%)등 2개 선거구만 과반수 투표 미달 사태 초래. 전국투표율 94.9%. 제주도 전체 투표율은 62.8%. 제주도 군정장관, 섬의 봉쇄를 위해 2척의 구축함과 게릴라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전투기를 제주 상공에 보내줄 것을 요청. 미군함 '크레이크'호 등이 출동, 북부 해안 봉쇄. 미군 정보보고서, 7~11일 5일간 전국에서 경찰 8명, 후보 1명, 선거위원 4명, 우익 29명, 폭도 50명 등 모두 92명이 사망했다고 기록. 제주도의 인명피해는 경찰 1명, 우익 14명, 폭도 21명 등 36명으로 기록.
48.05.12 박진경 중령의 9연대, 본격적인 수색작전 착수해 첫날 제주읍 오등리와 애월면 광령2리에서 218명 체포
48. 05월 중순 미 20연대장 브라운 대령, 제주지역 미군사령관으로 부임. 현지 진압작전 최고지휘권 행사
48. 5월 14일, 북한, 남한 송전(送電) 중단, 남북협상 결렬
48.05.1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폭동 진압차 정예부대 파견했다면서 '그 동안 귀순 회오반성을 기다리던 소극적인 대책을 떠나 이번에는 실력으로써 적극적으로 폭도들을 진압섬멸할 방침'이라는 담화를 발표
48.05.20 9연대 소속 군인 41명 모슬포부대에서 무기와 장비탄약 5,600발을 갖고 탈영, 무장대에 가담.
48.05.24 딘 군정장관, 제주도 2개 선거구에 대해 선거무효 선언. 오라리 방화사건 혐의자로 모슬포 부대 영창에 구금됐던 대청단원을 박진경 연대장이 석방
48.05.25 제주경비사령부, 4월 3일 이후 5월 25일까지의 인명피해 상황 발표. 사망은 경찰관 23명, 경찰관 가족 13명, 양민 2명, 관공리 3명, 폭도 119명, 부상자는 경찰관 29명, 경찰관 가족 2명, 양민 65명, 관공리 6명, 폭도 8명
48.05.27 최천 제주비상경비사령관,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과 회담한 후 ①절단된 전주복구 부락별로 할 것 ②1948년 하곡수집 철폐 ③하산자는 관용포섭한다는 3개항 발표. 유동열 통위부장, 육해 경비대가 제주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한 결과 5월 27일까지 포로 3,12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
48.05.28 경비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는 산악소탕작전 전개
48.5월 말 미군정, 탈영 사건 일으킨 9연대 해체하고 제주도 토벌 부대로 11연대 재편
48.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6.10. 의장 이승만, 부의장 신익희김동원).
48.05.31 43 가담 혐의자에 대한 첫 공판이 제주지방심리원 법정에서 개정(주심 매로 소령)
48.06.01 박진경, 진압 작전에 대한 공로로 대령 진급
48.06.10 딘 군정장관, 6월 23일 시행예정인 북제주군 갑 을 선거구의 재선거를 무기 연기한다고 발표
48.06.11 5월 31일의 공판에 참석했던 서울 법조인들 제주 떠남. 귀경 후 제주도 사태의 원인에 대해 경찰 서청 관공리의 잘못도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함.
48.06.12 {조선일보}, 경비대와 경찰에 체포된 자가 약 6,000명에 이른다고 보도. 조선신문 기자회, '미군정이 제주도 작전에 일본군을 투입했다'는 풍문의 진상을 밝힐 것을 하지 중장에게 공개 질의
48.06.14 미군정 이인 검찰총장, 제주도 사태의 원인으로 관공리의 부패 지적
48.06.17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출신 김봉호 총경 발령
48.06.18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숙소에서 피살
48.06.21 미군정, 후임 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임명
48.06.23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치안 수습에 대하여'란 담화를 통해 각게의 경찰 과오 지적을 반박하면서 "근본 원인은 소련의 야심인 조선의 소령 연방화에 있다"고 강변
48.07.10 경무부, 철도관구 경찰청 소속 경찰관 300명 차출해 선발대 제주에 증파
48.07.12 박진경 암살사건의 혐의자로 문상길 중위 등 8명 서울로 압송
48.07.14 최경록 연대장, 기자회견에서 "폭도 수효를 정확히 모르나 약 200명 될 것 같다. 팔로군이나 북조선 인민군 가담 사실은 없다"고 피력
48.07.15 제11연대에 소속됐던 본래의 9연대 병력 배속 해제, 9연대 재편성. 9연대장에 제11연대 부연대장 송요찬 소령 발령
48. 7월 17일, 헌법 및 정부조직법 등 공포. 20일, 국회,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 선출(24일 취임)
48.07.21 3여단의 제5연대와 6연대에서 1개 대대씩 차출, 9연대에 배속
48.07.24 최경록 연대장의 11연대, 수원으로 철수. 이후 제주도 토벌 작전은 송요찬 연대장의 9연대가 맡음
48.08.07 제주읍 화북 포구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려던 100명 체포
48.08.11 제주도 민보단 창설
48.08.14 박진경 암살사건 군법회의,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신상우 배경용 하사관에게 사형, 2명 징역형, 2명 무죄 선고
48.0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48.08.21 해주에서 '남조선 인민 대표자회의' 개회. 제주도에서는 김달삼 등 6명 참가
48.08.24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 체결, 이에 따라 정부수립 이후에도 군 작전지휘권이 미군에 귀속
48.08.25 비상경비사령부, "최대의 토벌전 있으리라" 포고문 발표
48.08.26 미국특사 무초, 주한미고문사절단(AMIK)를 이끌고 내한해 정부 이양작업. AMIK 산하에 임시군사고문단(PMAG, 단장 로버츠준장) 설치
48.08.27 콜터 장군, 하지장군을 대신해 미24군단장 겸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부임
48.08.28 수도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 800명이 제주로 출발. 9개 정당 사회단체가 참가한 '제주도사태 진상조사단'이 목포에 도착했으나, 당국은 제주행 제지.
48. 9월 1일,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개최.(수상 김일성). 9일,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48.09.15 주한 미군, 비밀리에 철수 시작
48.09.19 소련, UN결의에 따라 북한주둔 소련군이 연말까지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
48.09.22 [반민족행위특별처벌법] 공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구성
48.09.23 이종형등 친일파 주도로 반민법에 반대하는 [반공구국총궐기대회] 개최. 이승만이 참석해 축사
48.9월말 9연대, 중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토끼몰이식 수색작전 전개
48.10.01 광주지법서 제주43연루자 첫 공판, 22명중 11명에 무죄선고. 무장대 총공세 재개
48.10.05 제주출신 김봉호 후임으로 평남 출신 홍순봉을 제주경찰청장으로 발령
48.10.09 5여단 고문관 트레드웰 대위, 미군이 제주도작전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로버츠 고문단장에게 올림
48.10.11 제주도경비사령부(사령관 김상겸 대령) 설치
48.10.13 소장파의원을 중심으로한 국회의원 47명이 [외군철퇴 긴급동의안]을 제출
48.10.17 송요찬 9연대장, 제주 해안에서 5Km 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는 포고문 발포
48.10.18 제주해안 봉쇄. 여수주둔 제14연대 1개대대 제주도에 증파명령
48.10.19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발생. 김상겸 대령 파면, 송요찬 9연대장이 제주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겸임
48.10.20 임시군사고문단 로버츠 준장 여순사건 대책 비상회의 소집. 하우스만 대위 등 미군이 진압작전 지휘
48.10.22 국방장관 이범석 국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제주도사태를 전국에 전개시키려 한다"고 발언
48.10.24 무장대, 이덕구 명의로 정부에 선전포고, 토벌대에는 호소문 발표
48.11월초 9연대장병 1백여명 불법 처형. 수장화장굴속 암매장의 방법으로 흔적 없앰
48.11.01 최난수, 경찰프락치 사건 발생 직후 수도경찰청 수사대 이끌고 내도
48.11.02 이승만, '국군'이라 불리는 5만 병력의 훈련과 장비지급을 요청. 그러나 미군은 '국군'의 존재자체를 불인정
48.11.09 김두현 제주도총무국장 고문치사 사건 발생
48.11.12 미국특사 무초, 여순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면서 미군철수를 연기토록 요청
48.11.중순 군경토벌대, 제주도에서 초토화작전 시작. 2백명의 서청경찰대 제주 도착
48.11.17 이승만, 계엄법이 없는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국무회의 의결 거쳐 계엄선포
48.11.19 국회,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요구하는 결의안 통과
48.11.20 {조선일보}, "제주도에 게엄령이 선포됐다는 말은 전연 무근지설" 국방부 보도과 담화 인용 보도
48.11.27 콜터장군 "로버츠휘하에 있는 고문단들에 의해 만족할 만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한국군 야전부대에 배치돼 있다"고 밝힘
48.11.30 {조선일보} 11월20일 보도와 상반된 내용을 보도 "11월21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23일에는 7종목의 세칙이 발표됐다" - 국방부 검열 기사
48.12.01 국가보안법 공포. "제주도 연대장이 11월20일~27일간 유격대 122명 체포,576명 사살, 10월1일~11월20일 사이에 1,625명 사살,1383명 체포. 노획된 무기는 없다고 보고"
48.12.06 , "이승만과 신성모의 합의에 따라 서북청년단원들 한국군에 6,500명, 국립경찰에 1,700명 공급예정"보고
48.12.10 명동 서울시공관에서 열린 서청 총회에 이승만이 참석해 "전국 각지에 서청을 배치하겠다"고 연설
48. 12월 10일, 한미경제원조협정 조인.
48.12.12 UN총회,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면서(46대 6 가결) 미소 양군의 조속한 철군을 요구.
48.12.14 이범석장관, "11월16일 선포된 계엄령으로 상황이 급속히 양호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48.12.17 미 국무성, 48년 12월말까지 주한미군을 철수키로 결정한 대한정책지침서인 에 대해 이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
48.12.19 대동청년단서북청년단 등이 통합해 [대한청년단] 결성
48.12.25 소련, 북한주둔 소련군을 완전 철수했다고 발표
48.12.29 2연대(연대장 함병선 중령), 9연대와 교체해 제주에 진주
48.12.31 제주도지구 계엄령 해제
| ▶ 194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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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1.03 함병선 연대장 "소련선박 제주해안서 발견" 보고
49.01.04 함병선 연대장, 중앙에 계엄령 해제조치 철회 요구
49.01.05 토벌대, 구좌면 동복리에서 무장대원으로 위장해 민가에 들어가 '숨겨달라'며 함정을 파 주민 학살
49. 1월 8일,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 발족
49.01.10 여순사건 관련 군사재판 결과 발표
49.01.15 주한 미24군단, 부대 해체를 위해 일본으로 떠남. 임시군사고문단장인 로버츠 준장이 주한미군사령관 겸임
49.01.18 모슬포와 성산포에 경찰서 신설. 이로써 기존의 제주경찰서, 서귀포경찰서와 함께 도내에 경찰서가 4개로 증가함
49.02.05 "제주도 계엄령 한국 정부에 의해 선포된 일 없다"고 기록
49.03.02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 참모장 함병선 중령 겸임) 설치
49.03.10 이범석 총리신성모 내무장관 제주 시찰 때 "여러차례 소련 선박이 출현해 한라산 폭도와 화광 신호를 교환했다"고 보고
49.03.23 미 대통령, 대한정책 지침서인 를 승인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49년 6월말까지로 연기함
49.04.01 "게릴라들 북한으로부터의 병참지원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아무런 증거없다" "9연대가 중산간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 채택. 지난 한해동안 1만4천~1만5천명의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중 80%가 보안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보고
49.04.09 이승만 내도, 약 250명에게 사면령
49.04.29 소개령 해제
49.05.10 1년전 무효화됐던 북제주군 갑를 선거구에 대한 재선거 실시
49.05.15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해산
49. 5월 20일, 남로당(南勞黨) 국회프락치사건 적발
49.05.26 안덕면 화순리 주민 3명, 바닷가에서 은신생활을 하다 발각돼 1명은 현장에서 총살되고 2명은 육지 형무소로 보내짐
49.05.30 무장대, 중문면 도순리 주민 1명을 살해
49.06.06 친일파경찰, 반민특위 습격
49.06.07 이덕구 교전 중 사망
49.06.21 [국회프락치사건] 발생,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49.06.25 국민보도연맹 결성, . 25일, 북한 남북의 민족전선‘을 통합,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
49.06.26 백범 김구, 안두희에게 암살
49.06.29 김구 피살(포병소위 안두희가 백주에 경고장에서 저격). 7월 5일, 김구 국민장 거행(최초의 국민장).
49.06.30 주한미군 철수 완료. 군사고문단 5백명 잔류
49. 8월 6일 장제스[蔣介石] 자유중국 총통 내한, 진해(鎭海)에서 대통령 이승만과 정상회담.
49.11.24 계엄법 제정 공포
49.12.29 무장대, 제주도 중문면 하원리를 습격해 보초서던 주민을 살해하고 식량을 탈취
| ▶ 195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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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한미 상호방위원조협정 조인.
2월 16일, 이대통령, 맥아더 초청으로 일본 방문.
3월 13일, 국회, 제1차 개헌안(내각책임제) 부결.
3월 27일, 남로당 총책 김삼룡(金三龍) 이주하(李舟河) 검거.
4월 12일, 한국, 보스턴마라톤대회 1~3위 제패. 24일, 제1회 국전(國展) 개최.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
6월 1일, 6년제 의무교육 실시.
6월 12일, 한국은행 발족(초대 총재 具鎔書).
6월 16일, 북한, 김삼룡 이주하와 조만식(曺晩植) 교환 제의. 이대통령, 조건부 수락. 북한 조건 불수락으로 이뤄지지 않음.
6월 19일, 제2대국회 개원(의장 신익희, 부의장 장택상 조봉암).
6월 25일, 북한군 불법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6월 27일, 유엔 안보리, 대북한 제제 결의.
6월 28일, 서울 함락, 한강 인도교 폭파.
7월 1일, 연합군 지상부대, 부산에 상륙.
9월 1일, 부산 문화극장에서 피난국회로 재개.
9월 15일,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9월 16일, 낙동강전선에서 반격전 개시.
9월 26일, 국군, 서울 진입 성공,
9월 28일 서울 수복.
10월 1일, 국군, 38선 돌파,
10월 19일 평양 탈환.
10월 25일, 중공군, 한국전 개입 시작.
10월 26일, 국군, 압록강(楚山) 탈환.
10월 27일, 정부, 서울 환도.
10월 29일, 이대통령, 평양 시찰.
12월 4일, 평양 철수. 북한주민 약 50만 명, 피난길 등정.
12월 16일, 국민방위군설치령 국회 통과.
12월 24일, 서울시민에 피난령 발함.
| ▶ 195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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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중공군 6개 사단, 압록강 건너 남진 시작.
1월 3일, 정부, 부산으로 이전.
2월 10일, 국군, 서울에 진입.
2월 11일, 거창(居昌)양민학살사건 발생.
3월 5일, 정부, 120만 소작인에 대한 농지 분배 발표.
4월 11일,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직에서 해임. 후임에 리지웨이 중장 임명.
5월 9일, 이시영(李始榮) 부통령, 이대통령을 성토하고 사직.
5월 15일, 국회, 부통령에 김성수(金性洙) 선출.
6월 23일, 말리크 소련 유엔 대표, 38선 정전회담 제의.
7월 8일, 휴전예비회담 개성(開城)에서 열림.
9월 6일, 여군 창설.
10월 17일, 국무회의, 대통령 직선, 양원제 개헌안 의결.
10월 20일 한일 제1차 회담 도쿄에서 개막.
10월 25일, 남북휴전회담, 장소를 판문점(板門店)으로 옮김.
12월 1일, 부산대구를 제외,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12월 2일, 서남지구(지리산 일대) 공비토벌작전 개시(52.3.12.종료).
| ▶ 195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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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국회, 제2차 개헌안(대통령직선제:양원제, 정부안) 부결.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선포.
2월 15일, 제1차 한일회담 개최.
2월 18일,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좌익계 폭동 발생.
4월 17일, 국회의원 123명, 내각책임제의 제3차 개헌안 제출(5.7. 공고).
4월 20일, 장면(張勉), 국무총리직 사임. 동양통신(東洋通信) 창립.
4월 24일, 서민호(徐珉濠) 의원사건 발생.
5월 6일, 장택상, 국무총리에 임명됨.
5월 7일, 거제도포로수용소의 공산포로들 폭동.
5월 10일, 초대 도의원 선거.
5월 14일, 정부, 제4차 개헌안(대통령직선제양원제) 제출.
5월 19일, 민중자결단땃벌떼백골단 등, 국회해산 요구 시위.
5월 25일, 부산과 경남전남북에 계엄령 선포(~7.28.).
5월 26일, 부산정치파동. 대통령직선제 강행으로 정계 격동.
5월 29일, 김성수 부통령, 이대통령 탄핵하고 국회에 사표 제출.
6월 18일, 국회, 임시의장에 신익희, 부의장에 조봉암 김동성 선출.
6월 20일, 부산국제구락부에서야당인사들, 반독재호헌구국선언 발표(국제구락부사건).
6월 21일, 발췌개헌안 국회에 상정. 25일,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발생. 범인 유시태(柳時泰) 체포.
7월 4일, 국회, 경찰 포위 속에 제34차 개헌안 발췌통과(제1차 개헌)
8월 5일, 직선제 정부통령선거 실시(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咸台永) 당선.
8월 13일, 근로기준법 국회 통과(53.5.13. 공포).
9월 30일, 장택상 총리, 고시진(古市進)사건 인책사임.
10월 17일, 국회, 이윤영(李允榮) 총리인준 부결.
10월 29일, 국회, 정부 불신임안 발의.
11월 27일, 부산국제시장 대화재.
12월 2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 내한.
12월 3일, 유엔총회, 한국전쟁포로의 중립지대로 이송안(인도案) 통과.
| ▶ 195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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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이승만 대통령 일본 방문 요시다[吉田] 총리와 회담.
2월 15일, 긴급통화조치령 발표, 제1차 통화개혁(110대 1로 인하. 원(圓)를 환로 개칭).
2월 23일, 휴전회담 재개.
6월 8일, 포로교환협정 조인(8.5. 교환 시작, 9.6. 완료).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 단행.
7월 27일, 휴정협정 조인.
| ▶ 195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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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국방대학원 창설.
1월 18일, 독도에 영토 표지판 설치(5.1. 민간수비대 파견).
1월 21일, 반공포로 인수,
1월 28일, 친공포로 인도 완료.
1월 30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발족.
5월 20일, 제3대 민의원 선거 실시(의장 이기붕, 부의장 최순주 곽상훈).
6월 15일, 진해에서 제1회 아시아민족대회 개최(~21일).
11월 14일, 수복지구 행정권 인수받음. 불교의 대처승과 비구승 간 분쟁 격화.
11월 29일, 국회, 개헌안 사사오입(四捨五入)이론을 적용, 통과 처리.
11월 30일, 국회에 호헌동지회 결성됨.
12월 7일, 국회, 초대대통령 중임제한 폐지 개헌안(9.8. 정부가 제안) 부결.
12월 10일, 국보 3,400점을 부산 용두산 화재로 소실.
12월 20일, 정부기구를 12부 1설 1원으로 개편.
| ▶ 195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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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김성수(金性洙) 국회부의장(전부통령) 사망(2.24. 국민장). 조경규(趙瓊奎), 부의장이 됨.
8월 8일, 증권시장 개장.
8월 16일,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죽음.
9월 13일, 《대구매일(大邱每日)》, 학생정치도구화 반대 사설을 게재로 필화(筆禍).
9월 18일, 호헌동지회의 자유민주파, 민주당 창당(대표최고위원 申翼熙).
10월 1일, 광복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 개최.
10월 26일, 중공군 6개 사단 철수 완료.
| ▶ 195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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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제2여당으로 민정당(民正黨) 발기(최고위원 이범석 장택상).
2월 27일, 김창룡 저격범 허태영(許泰榮) 대령 등 구속(11.22. 강문봉 중장 등 추가구속).
3월 30일에 공화당(共和黨)으로 발족.
3월 30일, 김창룡(金昌龍) 육군특무대장 피살.
5월 5일,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유세중 이리(裡里)에서 급서(5.23. 국민장).
5월 12일, 첫 텔레비전방송국(호출부호 HLKI) 개국.
5월 15일, 제3대 정부통령선거 실시. 대통령에 자유당 이승만(李承晩), 부통령에 민주당의 장면(張勉) 당선됨.
6월 8일 국회, 의장에 이기붕, 부의장에 조경규 황성수(黃聖秀) 선출.
9월 28일, 민주당전당대회, 대표최고위원회에 조병옥(趙炳玉) 선출. 대회장에서 퇴장하던 장면 부통령 피습. 현장에서 범인 김상붕(金相鵬) 체포.
10월 1일, 장부통령 저격사건 배후조종자 최훈(崔薰) 구속.
11월 10일, 진보당 창당위원장 조봉암(曺奉岩), 간사장 윤길중(尹吉重) 선출.
11월 29일, 국제시계밀수사건에 황성수 국회부의장, 박영출(朴永出) 외무위원장 관련.
| ▶ 195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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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유엔총회, 유엔 감시하의 통한(統韓)총선거 결의,
1월 14일, 유도회(儒道會) 분규 격화.
5월 5일,어린이헌장선포.
5월 25일, 야당 주최 장충단(忠壇) 시국강연회장에서 테러단 난동(12.5. 주범 유지광 체포됨).
8월 가짜 이강석(李康石)사건으로 사회가 소란.
9월 1일에 주인공 강성병 체포됨.
10월 9일, 《우리말큰사전》(전6권) 30년 만에 완간. 국회, 동성동본(同姓同本)과 8촌 이내 인척의 결혼금지안 채택.
| ▶ 195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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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민참의원 선거법안 국회통과.
1월 13일, 진보당사건 발생. 위원장 조봉암 등, 간부 7명 간첩혐의로 구속(1959.2.27. 대법에서 조봉암 사형 확정).
3월 3일, 북한, 김두봉(金枓奉) 숙청, 천리마(千里馬)운동 시작.
5월 2일, 4대민의원 선거 실시(자유당 126, 민주당 79, 무소속 27석 등 차지).
| ▶ 195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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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보안법 반대데모 전국으로 확산.
12월 13일, 정부, 재일교포 북송문제와 관련,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일본에 제의(일본은 거부).
12월 14일, 교포북송 제1진 975명, 일본 니가타[新潟]를 출항, 청진(淸津) 도착.
| ▶ 196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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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조병옥(趙炳玉) 민주당 대통령 후보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죽음(25. 국민장).
2월 28일, 대구에서 반독재 학생데모 일어남.
3월 15일, 제5대 정부통령 선거 실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 데모.
4월 6일, 민주당민총공명선거위원회 등 3개단체가 합동, 3.15부정선거 규탄 데모.
4월11일, 피살된 김주열(金朱烈)의 시체인양 계기로 제2마산 데모 발생.
4월18일, 고려대학생 데모대, 정치깡패의 기습으로 부상.
4월19일, 서울시내 2만여 학생 총궐기, 419혁명 발발. 경무대 어귀에서 경찰발포로 42명 희생. 서울 등 5개도시에 비상계엄령 선포.
4월21일, 국무위원 일괄사표.
4월23일, 장면(張勉) 부통령 사임.
4월24일,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 총재직 사퇴. 이기붕(李起鵬) 국회의장, 모든 공직에서 사퇴 발표.
4월26일, 데모군중 증가. 상오 10시경 10만에 달함.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4월27일, 대통령권한대행에 허정(許政) 외무장관.
4월28일, 이기붕일가 자살. 조용순(趙容淳) 대법원장 사표. 허정 과도내각 성립(5.1. 315선거 무효확인).
5월21일, 내각책임제 개헌안 공고(6.15. 국회 통과˙공포. 제2공화국 성립됨).
5월29일, 이승만, 하와이로 망명.
6월17일, 곽상훈(郭尙勳) 국회의장, 새 헌법에 의거, 대통령권한을 대행.
7월29일, 민참의원선거 실시(민주당 대승).
8월 8일, 국회 양원 개원(참의원 의장 白樂濬, 민의원 의장 郭尙勳).
8월12일, 민참 합동회의, 제2공화국 대통령에 윤보선(尹潽善) 선출.
8월14일, 북한 김일성, 남북 연방제 제의.
▶ 19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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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대일정책결의안(선국교후경제 등) 채택.
5월 16일, 군사정변. 군사혁명위원회 발족(의장 장도영 부의장 박정희).
5월 18일, 장면내각 총사퇴. 혁명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
5월 20일 최고회의 내각 조직(내각수반에 장도영 의장 겸임).
7월 1일, 서울국제방송국(HLCA) 개국.
7월 2일, 최고회의 의장에 박정희 소장 취임.
7월 3일, 반공법 공포.
7월 22일, 경제재건 5개년계획 발표.
8월 12일, 박정희 최고의장 812성명(정권 이양시기˙국회 구성문제 등) 발표.
12월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실시.
▶ 19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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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공용년호를 서력으로 변경.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성안.
3월 16일, 정치활동정화법 공포.
3월 19일, 원자력연구소 원자로에 첫 점화.
3월 22일, 윤보선 대통령 사임.
3월 24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대통령권한대행.
5월 31일, 증권시장, 약 500억 환의 5월분 수도결제 불이행(증권파동).
6월 10일, 제2차 통화개혁(10대 1로 평가절하, 환를 원로 변경).
12월 17일,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서 가결.
12월 27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민정이양절차 발표.
▶ 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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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민간인 정치활동 재개.
2월 18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218성명(민정 불참선언 및 정국수습 9개 방안 제시) 발표.
2월 21일, 민주공화당 창당.
3월 16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316성명 발표.
5월 14일, 민정당 창당, 대통령후보에 윤보선 지명.
7월 27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민정이양일정 발표.
10월 10일, 서울가정법원 개원.
10월 15일, 대통령선거 실시(박정희 당선).
11월 26일, 국회의원선거 실시.
12월 17일, 제3공화국 발족(새 헌법 발효).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 제6대 국회 개원.
▶ 19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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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제주도 일원 첫 통금해제.
5월 2일, 민주자민국민당 통합 선언.
6월 3일, 63사태 발생. 서울에 비상계엄령 선포.
8월 2일, 언론윤리위법안 국회 통과.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발족.
10월 31일, 한월남, 월남지원을 위한 국군 파견에 관한 협정 체결.
▶ 19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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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국무회의, 비전투병력 2,000명 월남파병 의결.
3월 1일, 충북지역 야간 통금 해제.
3월 22일, 단일변동환율제 실시.
3월 24일, 비둘기부대 제1진 사이공 도착.
4월 17일, 한일협정 반대 데모대, 효창공원서 시민궐기대회.
5월 3일, 민정민주 양당, 민중당 창당.
6월 22일, 한일협정 조인, 국교 정상화.
7월 2일, 국무회의, 1개 전투사단 월남파병 의결.
7월 17일, 이승만 하와이서 사망,
7월 23일 유해 환국.
▶ 19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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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과학기술연구소(KIST) 발족.
3월 1일, 국세청 수산청 발족.
3월 30일, 신민당 창당.
6월 25일, 김기수, 세계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이 됨.
7월 9일, 한미 행정협정 조인(1967. 2. 9. 발효).
7월 29일, 국무회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공표.
9월 5일, 백마부대 제1진 월남 상륙.
10월 31일, 존슨 미국 대통령 한국 방문.
11월 1일, 한미 정상회담,
11월 2일 공동성명 발표.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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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대구 서문시장에 큰불.
2월 7일 민중신한당 통합, 신민당 창당.
3월 22일,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판문점서 위장귀순.
3월 30일, 과학기술처 신설, 원자력원을 청으로 개칭.
5월 3일, 제6대 대통령 선거(공화당 박정희 후보 당선, 7.1. 취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
8월 9일, 제1차 한일각료회담 개최(도쿄).
▶ 196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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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121사태,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월 23일,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원산 앞바다서 북한에 피랍.
2월 7일, 경전선 개통.
4월 1일, 향토예비군 창설.
5월 27일, 제1차 한미국방장관회의(워싱턴).
7월 15일, 문교부, 중학입시제도 폐지 발표.
8월 15일, 정치정화법 시효 완료.
9월 9일,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개막.
10월 14일, 문교부, 대학입시 예비고사제 실시 발표.
11월 21일, 시도민증 없애고 주민등록증으로 대체.
11월 29일, 서울시의 전차 철거.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발표
12월 11일, 광화문 복원 준공
▶ 19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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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국토통일원 개원.
3월 3일, 정부, 가정의례준칙 발표.
3월 28일,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에 서품.
6월 17일, 3선개헌반대 학생 데모 시작.
7월 21일, 경인고속도로 개통.
9월 7일, 신민당,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 국회에 제출.
9월 14일, 3선개헌안국민투표법안 국회서 변칙 통과.
10월 17일, 개헌안 국민투표 실시.
12월 24일, 국제통화기금, 한국을 특별인출권(SDR)통과공여국으로 지정.
▶ 19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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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서울 와우시민아파트 도괴. 사망 33명.
5월 16일, 서울대교 개통.
5월 18일 금산인공위성지구국 우주통신 중계 개시.
6월 2일, 특수층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담시(譚詩) 《오적(五賊)》 필화사건. 필자 김지하, 등 구속.
7월 1일, 우편번호제 실시.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8월 15일, 서울 남산 제1호터널 개통.
10월 31일, 국토종합개발심의회, 국토종합개발 10개년계획 확정.
12월 23일, 정부종합청사 준공.
12월 30일, 호남고속도로(대전~전주 간) 개통.
▶ 19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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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3월 19일, 원자력발전소 기공(경남 동래).
3월 31일, 서울~부산 간 자동전화 개통.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 실시(박정희 후보 당선, 7. 3. 취임).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
7월 8일, 충남 공주에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발굴.
7월 26일, 제8대 국회 개원.
9월 20일, 남북적, 이산가족찾기 예비회담 판문점서 첫 개최.
10월 15일, 서울시에 위수령 발동.
12월 9일, 파월 국군 첫 철수부대 부산항에 개선.
12월 27일, 국가보안법 국회서변칙 통과.
▶ 19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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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최고의 고려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直指心經)》발견.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발표(기업사채 동결).
8월 30일, 남북적십자사, 첫 본회담 평양에서 개막.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특별선언 발표.
10월 17일, 계엄사, 포고 제1호로 대학휴교, 신문통신 사전검열제 실시.
11월 21일, 개헌 위한 국민투표 실시.
11월 22일, 유신헌법 확정.
12월 15일, 첫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8대 대통령에 박정희 후보 선출(12. 27. 취임).
12월 27일 유신헌법 공포(정치활동 재개).
▶ 197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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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비상국무회의, 국정감사 폐지법안 의결.
2월 27일, 제9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3월 3일, 한국방송공사 발족.
4월 1일, 주민세 실시.
4월 10일, 한국 여자탁구팀 세계 제패(유고 사라예보).
5월 5일, 어린이 대공원 개원.
5월 27일, 소련, 한국인(유덕형)에 첫 입국허가. 중앙선 전철 개통(청량리~제천 간).
8월 8일, 김대중피랍사건 발생(일본 도쿄), 한일간 긴장 야기.
▶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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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개헌논의 금지) 2호(비상군법회의 설치) 선포.
1월 14일,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조치 3호 선포.
8월 15일, 광복절기념식장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사건 발생. 대통령부인 육영수 피격 서거.
8월 15일, 서울시지하철(서울역~청량리역 간) 개통.
9월 6일, 반일데모대, 일본대사관 침입, 일장기 찢고 자동차 등 불태움.
11월 15일, 유엔군사령부,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땅굴을 파고 남방 1`km까지 콘크리트구조물 을 구축했다고 발표
11월 22일, 포드 미국 대통령 내한,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발표.
▶ 197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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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 73.11`%).
9월 1일,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 준공.
9월 15일, 조총련계 재일교포 700여명 추석성묘차 모국 방문.
9월 22일, 민방위대 발대식.
10월 14일,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 19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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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경제기획원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월 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경기대회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첫 금메달 획득.
8월 18일, 북한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집단 도끼만행으로 미군 장교 2명 살해.
10월 11일,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송원대의 유물 대량 인양.
▶ 19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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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하비브 브라운 미국 대통령 특사, 박정희대통령과 회담, 철군문제 협의.
6월 19일, 국내 최초로 고리원자력 1호 발전기 점화.
7월 1일, 부가가치세제 실시. 11월 11일, 이리역 화약운송열차 폭발로 참사 발생.
▶ 19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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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동력자원부 발족.
4월 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4월 21일, 대한항공 B707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남쪽 200마일 지점에 강제 착륙.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7월 6일, 제2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집회에서 박정희후보 제9대 대통령 당선.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 발족.
12월 12일, 제10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 197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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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카터 미국 대통령 내한. 12차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발표.
8월 11일, 경찰,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인 YH무역 여공 200여명 강제 해산.
10월 4일, 국회, 김영삼의원 제명.
10월 18일, 정부, 학생시위로 부산에 비상계엄령 선포.
10월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 선포.
10월 26일, 마산창원에 위수령 선포. 충남 삽교호방조제 준공.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정보부장에 의해 피격 사망(1026사태).
10월 27일, 전국(제주도 제외)에 비상계엄령 선포. 대통령권한대행에 최규하 국무총리 취임.
11월 3일, 국장.
11월 6일, 계엄사,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전모 발표.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12월 12일, 수사당국, 정승화 육참총장을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관련혐의로 연행(1212사태).
▶ 1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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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최규하 대통령, 각계 원로중진 23명으로 국정자문회의 구성.
5월 17일, 정부,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
5월 18일, 광주학생시민대규모 데모.
5월 27일, 계엄군 개입으로 진압.
5월 31일, 정부, 계엄하의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신설(의장 최규하 대통령, 상임위원장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
7월 31일, 계엄사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음모혐의로 기소,
9월 17일, 김대중 사형선고.
8월 2일 컬러 텔레비전 시판 개시.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8월 27일,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 제11대 대통령에 당선.
9월 5일, 문교부, 대학교육개혁시안 발표(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 채택).
9월 29일, 정부, 제5공화국 헌법개정안 공고.
10월 22일, 제5공화국헌법 확정.
10월 27일, 입법회의, 국가보위입법회의법 의결.
11월 14일, 신문협회방송협회, 언론기관 통폐합 결정.
12월 1일, 한국방송공사(KBS), 컬러텔레비전 첫 방영.
▶ 19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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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민주정의당 창당(총재 전두환).
1월 17일, 민주한국당 창당(총재 류치송).
1월 24일, 정부, 비상계엄 전면 해제.
2월 11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2월 25일, 전두환대통령, 제12대 대통령 당선.
3월 25일,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4월 20일, 국정자문회의 발족(의장 최규하).
5월 6일,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9월 30일, 제84차 IOC총회, 제24회 하계올림픽경기대회 서울 개최 의결.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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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문교부, 중고생 교복(83년부터)과 머리형 자율화하기로 결정.
1월 5일, 정부, 야간통금 전면해제.
9월 24일, 서울국제무역박람회 개막.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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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공직자윤리법(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발표.
6월 30일,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시작. 1만 189명 혈육 상봉.
9월 1일, 소련 전투기, 사할린 부근서 KAL기 격추(KAL기 사건).
10월 9일,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서 북한 공작원이 장치한 폭탄 폭발, 참배 준비 중이던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 고위관리 17명 순국.
11월 13일, 미국 대통령 레이건 내한(12일 1차 한미정상회담, 13일 2차 한미정상회담, 14일 공동성명발표).
11월 29일, 88서울올림픽경기대회 휘장마스코트 발표.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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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미국 대통령 레이건 한반도 안정위해 남북한과 미중국의 4자회담 제의.
4월 2일, 안기부, 78년 홍콩서 실종된 영화배우 최은희, 감독 신상옥의 북한 납치사실 발표.
5월 1일, 서울대공원 개원.
5월 3일, 교황 바오로 2세 방한(6일 여의도에서 한국순교자 103위의 시성식 집전).
▶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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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5월 17일, 전국 80개 대학 3만 8000여명, 광주사태 진상규명 요구 시위.
6월 17일, 김영삼 김대중 회동, 민주화요구 공동발표문 채택.
7월 19일, 부산 지하철 1호선 1단계 구간(범어사~서면) 개통.
8월 17일, 고대 의대, 냉동정액을 이용한 수정으로 임신된 아기가 국내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발표.
9월 20일, 남북한 고향방문단 서울과 평양 도착(남북한 각각 151명씩 3박 4일간 체류).
9월 21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 40년만에 고향방문단 혈육 상봉.
9월 27일, 한국이 참여한 첫 해외개발유전인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서 생산 개시.
11월 19일, 한국, 남극자원보존협약 가입.
▶ 19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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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납북된 최은희신상옥,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
3월 26일, 재무부, 덤핑방지관세제 실시.
8월 21일, 새 국립중앙박물관, 구 중앙청청사를 개조해 개관.
9월 20일,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막(~10월 5일).
10월 6일, (주)삼성전자 문태원 연구원, 세계 최초로 초소형 4mm VTR개발.
▶ 19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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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군, 경찰고문으로 사망.
2월 4일, 과학기술원 윤한식손태항 박사팀, 최강력고분자 알로이섬유 세계 최초로 개발.
3월 6일, 서울시교위, 시위전력의 교육대학 졸업생 12명 교사임용 제외.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 호헌 선언.
6월 10일,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 610민중항쟁.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총재 회담.
6월 25일, 경찰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에 대한 연금해제.
6월 29일, 629선언.
7월 4일, 김영삼 민주당총재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 시국대처방안 위한 6개항을 발표.
8월 5일, 노태우 대표 민정당 총재 취임.
8월 29일, 대전 오대양(주) 여사장 등 32명, 용인공장서 동반자살시체로 발견.
9월 27일,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발족.
10월 27일, 헌법개정국민투표 실시(찬성 93.1%).
10월 29일, 개헌안 확정 공포.
10월 30일, 신민주공화당 창당(총재대통령후보 김종필).
11월 9일, 민주당, 임시정당대회에서 김영삼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
11월 12일, 평화민주당 창당대회(총재대통령후보 김대중 선출).
12월 3일, 중부고속도로(서울~대전 간) 개통.
12월 15일, 정부, 대한항공기 폭파용의자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시체)를 바레인에서 서울로 이송.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 실시.
12월 18일, 중앙선관위 노태우 민정당후보 당선 공포.
▶ 19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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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대한상의, 공산권 경제단체와는 처음으로 헝가리 상공회의소 경제협력확대를 위한 업무협조협정 체결.
2월 12일, 교통부, 금호그룹에 제2민간항공인가.
2월 22일, 보사부, 국내 첫 AIDS환자 발생 발표.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 제13대 대통령 취임. 새 헌법(전문과 본문 130조, 부칙 6조) 발효. 제6공화국 출범.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7월 19일, 정부, 월북작가의 해방전 문학작품에 대한 출판허용조치 발표.
9월 17일,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개막(10월 2일까지 16일간 160개 IOC회원국에서 1만 3626명의 선수단 참가).
10월 4일, 유고, 서울무역사무소 개설.
10월 15일, 서울장애자올림픽 개막(65개국 4,361명 참가).
11월 2일, 국회 5공비리 특위, 국회에서 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관련 비리조사를 위한 1차 청문회 시작.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자신의 재임 중에 일어났던 비리를 시인사과하고 재산 일체를 국가에 헌납하기로 발표.
▶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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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헝거리와 국교 수립(공산권 국가로는 처음).
3월 26일, 문익환 목사, 북경을 경유 평양에 도착, 김일성과 회담.
4월 13일, 귀국, 공안합수부에 체포됨.
6월 30일, 북한의 중앙방송, 전대협대표 임수경(林秀卿)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
8월 31일, 동아건설, 세계 최대규모인 리비아 2차대수로공사를 수주(53억달러).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 5공특위광주특위 연석회의에 출석, 125개 항목에 걸친 서면질문에 관해 증언함.
▶ 199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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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김영삼 민주당 총재김종필 공화당 총재, 청와대에서 3당 통합을 선언.
2월 9일, 3당합당 의결, 당명 민주자유당(민자당).
2월 21일, 외무부, 모스크바주재 영사처 개설을 발표.
5월 17일, 교통부, 수도권 신공항입지를 영종도로 확정.
6월 5일, 노태우 대통령코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 한소간 조속한 수교에 합의하고 상호 교환방문하기로 합의.
6월 28일, 국무회의, 새 민방(民放)의 방송법 개정안 의결.
9월 4일, 강영훈 총리 연형묵 북한 총리, 서울에서 첫 총리회담 개최(~7일).
10월 31일, 정부, 새 민방텔레비전방송국의 지배주주로 (주)태영(泰榮)을 선정.
12월 13일, 노태우 대통령, 소련 방문(~17일).
12월14일 양국 정상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 후 「모스크바선언」을 발표.
12월 15일, 국회, 지방자치법지방의회선거법지방자치단체선거법 등 지자제관계 3개법안 통과.
▶ 199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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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정부, 걸프전의 군의료진 지원조사단 26명 사우디에 파병.
1월 22일, 한국의료지원단 현지로 출발.
1월 30일, 군수송단 파견.
3월 26일, 시군구의회 의원선거 실시.
4월 19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소련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제주도) 방문.
6월 20일, 광역의회의원선거 실시.
9월 28일, 유엔총회, 남북한유엔가입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12월 9일, 새 민방 서울방송(SBS) 개국.
▶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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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노태우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의 대북한 직접협상을 배제하고 한반도 핵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하며, 북한은 조기에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국제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2월 8일, 통일국민당 창당대회(대표최고위원 정주영).
2월 8일, 남북한, 두만강개발회담 실무접촉에서 나진선봉지구개발에 공동보조하기로 합의.
2월 18일, 정원식 총리 및 연형묵 북한총리, 남북고위급회담(평양)에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등 합의서 본문을 교환발효.
2월 20일, 정원식 총리, 김일성 주석 예방.
3월 24일, 제14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4월 10일, 정부,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개방한다는 내용의 농산물협상이행계획서를 GATT에 제출.
5월 5일,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개최. 북한총리 등 대표단 90명 서울 도착.
6월 12일, 정부, 종합유선방송법시행령확정.
8월 9일, 황영조(黃永祚), 바로셀로나올림픽경기대회 마라톤 우승.
8월 11일, 한국 최초의 과학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8월 24일, 한국 외무장관 및 중국 외교부장, 양국 정부의 외교관계 수립 등 6개항의 공동성명 발표.
8월 27일, 한국주재 중국대사관 개관.
9월 29일, 노태우 대통령, 중국방문 중 한중정상 회담결과 8개항의 공동언론발표문 발표.
10월 8일, 노태우 대통령, 중립내각개편 단행.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선거 실시.
12월 19일, 김영삼후보 당선. 김대중, 대통령선거패배와 관련 정계은퇴선언.
12월 22일, 한국, 베트남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 19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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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정주영 국민당 대표, 대표최고위원직 사퇴하고 정계은퇴의사를 밝힘.
2월 25일,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3월 12일, 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
3월 14일, 정부, 북한의 NPT탈퇴 해결 때까지 남북대화 중단.
3월 28일,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구포역 입구에서 지반붕괴로 전복(68명 사망, 124명 중경상).
3월 29일,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 부동산취득의혹과 관련 민자당 탈당.
4월 27일, 국회, 박준규의장 사퇴안을 가결하고 이만섭(李萬燮)의원을 새의장으로 선출.
4월 7일, 정부, 소말리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약 250명의 건설공병부대를 파견하기로 유엔측에 공시통보.
5월 6일 안기부, 작가 황석영(黃晳暎) 89년 3월 첫 밀입북한 이래 5차례 밀입북하여 김일성과 고려연방제 등을 논의했으며 대남공작지침에 따라 범민련을 결성, 운영해 온 것으로 발표.
5월 20일, 국회,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처리.
5월 29일, 정부, 종합유선방송(CATV)의 방송구역으로 서울 21구역을 비롯 전국 116개 구역을 고시.
6월 7일, 보사부, 약사관련 규칙개정으로 한약사 분쟁.
7월 17일, 대검, 율곡(栗谷)사업비리사건과 관련 이종구(李鍾九)이상훈(李相勳) 전국방장관과 한주석(韓周奭) 전공참총장 및 김철우(金鐵宇) 전해참총장 등 4명을 구속.
8월 6일, 대전엑스포 개막, 108개국33개 국제기구 참가.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
8월 17일, 감사원, 평화의 댐 및 율곡사업 특별감사와 관련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게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서면조사서 전달.
8월 20일, 경부고속철도 차종을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로 확정.
8월 31일, 국회 1212사태율곡사업평화의 댐 진상조사 착수.
9월 26일, 우리별 2호 발사 성공(프랑스령 기아나).
10월 10일, 전북 부안(扶安) 앞바다에서 서해페리호(110`t급) 침목로 268명 이상 사망실종.
10월 15일, 전교조(全敎組), 해직교사의 복직문제와 관련하여 쟁점이 되어 온 전교조탈퇴 조건을 수용 복직하기로 결정.
12월 13일, 한국 및 미국, 쌀시장개방안 타결.
▶ 19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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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영남지역 악취수돗물 파동.
1월 24일, 서울지검, 장영자(張玲子)를 107억원을 편취하고 37억원의 당좌수표 중 5억원을 부도낸 혐의로 재구속.
2월 22일, 감사원, 정부서 불우이웃돕기 등으로 모은 성금을 판공비시설비 등에 유용한 사실을 밝혀내 17개부처시도에 문책 통보.
4월 22일 김영삼 대통령과 이희창(李會昌) 국무총리,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갈등으로 국무총리 사표 제출.
7월 9일, 평양방송, 김일성 사망(8일)을 보도.
7월 19일, 김일성 장례식.
7월 20일, (주)현대중공업 직장폐쇄, 전노대(全勞大) 개입.
8월 4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요구.
9월 5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태권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경기대회 정식종목으로 승인.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10월 24일, 안기부, 625전쟁 때 포로로 잡혀 납북된 조창호(趙昌浩)가 43년 만에 북한을 탈출하여 표류 중 구출되었다고 발표.
12월 3일, 기획원-재무부, 건설부-교통부를 통합하는 등 정부조직개편.
▶ 19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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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정부, 부동산실명제를 7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확정발표.
2월 21일,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공식 출범(총재 김종필).
3월 1일, 케이블TV 27개채널 본방송 개시.
4월 28일, 대구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사고 발생.
5월 26일, 정부, 북한에 조건없이 곡물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남북 대표회담개최 제의.
6월 17일, 남북대표들, 베이징[北京]에서 대북 쌀제공에 관한 첫 회담 개최.
6월 25일, 대북 지원을 위한 대북 지원 쌀 동해항 출발, 청진항 도착.
6월 27일, 지방선거 실시. 서울시장 조순(趙淳) 후보 당선.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 2개동 중 북쪽건물 붕괴. 사망실종 506명, 부상 940여 명.
7월 18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 신당 창당 공식 선언.
7월 24일, 8만여 톤 원유를 적재한 유조선 시프린스호, 전남 여천군 해상에서 태풍으로 좌초, 최악의 해양오염사고 발생.
8월 2일, 서석재(徐錫宰) 총무처장관,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 4,000여억원의 가명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밝힘.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해명을 요구.
8월 5일, 무궁화위성, 한국 최초의 위성으로 미국 케이프 커내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 성공.
8월 11일, 교육부,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한다고 발표.
8월 18일, 북한 평양방송, 북한 대동강 일대 등에 폭우로 홍수가 발생했다고 보도.
9월 20일, 제1회 광주 비엔날레 개막(9.20.~11.20).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朴啓東)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주)우일양행 명의로 된 128억 2700여만원 예금조회표를 공개하며 이는 노태우 전대통령의 퇴임 직전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됐던 4,000억원의 비자금을 100억원씩 40개 계좌로 분산 예치시킨 것 중 일부라고 주장.
10월 27일, 노태우 전대통령, 자택 기자회견에서 재임 중 통치자금을 조성, 대국민사과.
11월 8일, 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출.
11월 16일, 검찰, 노태우 전대통령이 재임기간에 30개 재벌기업체 대표들로부터 2,358억 96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밝힘. 노태우 전대통령,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
12월 2일, 전두환 전대통령, 검찰의 1212와 518재수사와 관련,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겠다고 연희동 자택에서 성명을 통해 거부의사를 밝히고 측근들과 합천(陜川)으로 낙향.
12월 3일, 검찰, 검찰소환을 거부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 안양교도소에 수감.
12월 5일, 민자당, 새 당명을 신한국당로 변경.
12월 6일, 불국사 8만대장경 종묘 등 3건의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
12월 19일, 국회, 1212 및 518관련자 처벌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안의결.
12월 26일, 5월 30일 북한군에 나포된 우성호 선원 5명과 사망한 3명의 유해, 판문점을 통해 송환.
숫자에 약한 나는 머리부터 아프다.
두고두고 볼께.
수고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