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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류씨 (晋州柳氏)
 
 1>시조 :  류 정[柳 挺]
 2>본관 및 시조의 유래
     진주(晋州)는 경남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거열성인데 신라때 거열주, 강주, 진주
     불리웠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진양도호부, 진주목으로 변천을거쳐 1949년에 진주시가 되었다.

      진주류씨(晋州柳氏)의 시조  류정(柳挺)은 고려조에, 진강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진주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세
숙[淑]이 진녕부원군에, 3세 돈식(敦植)은 진원부원군에,  4세 홍림(洪林)은 평장사를 거쳐
      진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홍림의 아들
[부]는 진흥부원군, 손자 [간]은 진성군에  봉군되어
      6대(代)가 현달하여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그외에도  조선 세조때 별시문과에 급제한 문통(文通)이 사간을 거쳐 상주목사를 지냈으며
     [청천유고]를 저술했고, 그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인귀(仁貴)와 막내 인숙(仁淑)이 뛰어났다.

     그밖의 인물로는  조의(祖誼)의 아들 진(縝)이 형조의 좌랑(佐郞)과 정랑(正郞)을 거쳐 태천,
     단천, 평창 등지의 군수를 지냈으며, 선조때의 명신
근(根)은 호성이등공신으로 진원부원군에
     봉해지고  대제학에 이어 좌찬성에 올랐으나 광해군때 폐모론을 반대하였다 하여 관직이
     삭탈되었다.

     인조반정의 공신 근(根)의 손자로서  진주군에 봉해졌으며, 영(潁)의 아들 명견(命堅)
     숙종때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냈다. 그의 아우
명천(命天)은  숙종때  예조판서와  
     판중추부사를 지냈으나  인현왕후를 모해하려 했다는 무고로 아우
명현(命賢)과 함께
     지도(智島)에 귀양갔다 돌아와 벼슬의 뜻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주류씨(晋州柳氏)는 남한에 총 17,667구,
     72,82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집성촌
     경기도 안성군 대덕면 진현리경남 합천군 묘산면 가산리, 야로면 하빈리
     경북 상주군 은척면 두곡리경남 거제군 둔덕면 방하리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충북 청원군 현도면 노산리
     경남 합천군 봉산면 봉계리황해도 신청군 남부면 서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