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3
아버지의 외로움.
아버님은 유난히도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 믿기 전부터 마음도 소심하고 착한 편이라서 동네 아이들에게서 “해꾸지”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다 일찍 죽었으니 외로우셨고. 예수 믿기 때문에 더 외로우셨습니다.
93년쯤 되었을까. 서울 상도동 집에 오셨을 때였습니다. 경진이 엄마가 아버님을 어디로 모실까 말씀드렸습니다. 가까운 보라매 공원은 꽃들은 있지만 사람들이 많고 그냥 복잡하기만 하니 별로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대뜸 “나는 사람 많은 데가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사람도 없는 밭에서 일만 하니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도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아버님의 외로움의 깊이를 잘 몰랐던 듯 합니다. 그래서 명절 때도 잘 찾아 뵙지도 않았고. 반쯤 서구식이 되어 그렇게 복잡하게 고생하며 내려갈 필요가 뭐가 있는가 하는 식의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몇 년간 정서적으로 힘들게 지내면서 외로움의 깊이를 이해하면서 아버님의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의 여론에 많이 신경쓰게 된 것도 외로움이 작용한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욕구인 듯합니다. 아마 50대가 되시던 어느 때, 아버님은 우리가 보기에 느닷없이 일반 노래 흘러간 옛노래를 옆 집 애촌 아지매에게 배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사를 받아 적어와서 열심히도 반복하며 부른 노래는 “반짝이는 별빛아래” “노들 강변” 등의 노래였습니다. 아마 저도 그 때 귀동냥으로 그 노래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 무렵부터 집에서 술을 담가서 “약”으로 드시는 일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일생의 사이클에서 50대의 정서적 욕구는 보상, 안정과 자기의 인생에 대한 만족감을 누리는 것이었고 아버님도 그것이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농사만 짓고 살아온 인생이 의미없어 보여 몇 년간 병목에서 목회일을 하셨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님에게서 인생의 모든 에너지는 교회와 자녀교육에 있었는데, 관기교회의 목회자들에게 그리 영적인 만족을 누리시지 못하셨고 (실은 아버님의 신앙과 성경을 보는 수준에서 보면 관기교회 목사님들은 상당히 갑갑한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면에서는 목회의 길이 하나의 숨통열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님도 유학 중이었고, 저도 당시에 대학원 다닌다고 부양을 못 해 드리고, 다시 기윤실에서 일하면서 부양을 못 해 드리고. 그 상실감이 참으로 컷을 것입니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50대와 60대 참으로 고통스럽게 인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현실적인 안정과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은 저는 요즘에야 깨달고 있으니 그 때에는 제대로 섬겨드릴 마음 자세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버님의 외로움과 고통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월급도 적고 사람들도 알아주지 않는 기윤실 일을 하던 저에게 “야, 해신아 그냥, 시골로 내려오지” 라고 말씀하셨고, “자녀들이 교회와 민족을 위해 살라고 기도한 것이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게 될 줄 몰랐다.”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마음은 아버님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꼭 베드로 같다. 자녀들이 교회와 민족을 위해 살도록 해 달라 기도해 놓고 그것을 후회하니 말이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장담하고 세번이나 부인하였지.” 그리고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하실 때면, 경제적으로 잘 되도록 해 달라고 하는 기도는 하시지 않은 듯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게 해 달라”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마지막 답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토록 지친 육신을 안고 새벽마다 부르짖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힘든 마음을 쏟아 놓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구주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때에” 등 천국 찬송을 부르면서 천국의 복과 하나님과 함께 함 그 소망이 인생을 지탱하던 힘이었을 것입니다.
말년의 이런 영적인 고뇌와 부르짖음도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유산으로 생각됩니다. 30대, 40대 청년기에는 용기있게 핍박과 싸우고 근면하게 일하시고, 우리들에게는 교회와 민족을 위한 비전을 가지도록 격려하신 것도 유산이지만 말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항상 미래의 꿈과 비전 속에, 번영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병도 생기고, 정신력도 약해지고, 이게 과연 예수 믿는 것인가, 이게 과연 인생인가 회의도 생기고. 이런 문제 속에 있는 것은 불신앙은 아닙니다. 신앙은 문제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문제와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속 부르짖고 계속 묻고, 그래도 계속 하나님의 임재를 향해, 천국을 향해 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점에서 노년기의 냐약한 아버님은 정상적인, 그리고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다들 이제 40대를 바라보거나 40대를 지나면서, 외로움의 실제를 더 경험하고 집안에서나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더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신앙도 좋고 바르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냥 좀 편하게 안정되게 살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 집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욕구입니다.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을 우리는 추구해야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때 그 복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건 그렇지 못하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번영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좌절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 가운데 즐거워 찬양하고, 그 위로 가운데 고통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과 천국입니다. 이 곳에서도 당신의 임재를 누리면서,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취를 하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법대로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 내었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영원이 내 앞에서 떠나라”고 심판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 나사로의 집에서 구걸하며 인생을 끝낸 그 거지 나사로, 그는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평생 잘 살고 죽을 때로 편히 죽은 사람에게 인생은 그것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이후 영원한 인생이 문제입니다. 유대수 장로와 이기순 집사는 평생 고생하고, 마지막도 세상적으로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 하늘 하나님 아버지 품 속에 있음을 압니다. 우리도 그 길을 갑니다. 때로는 춥고 배고프고 화나고 불안할 때도 많지만, 그러나 우리도 마지막은.
아버님은 유난히도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 믿기 전부터 마음도 소심하고 착한 편이라서 동네 아이들에게서 “해꾸지”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다 일찍 죽었으니 외로우셨고. 예수 믿기 때문에 더 외로우셨습니다.
93년쯤 되었을까. 서울 상도동 집에 오셨을 때였습니다. 경진이 엄마가 아버님을 어디로 모실까 말씀드렸습니다. 가까운 보라매 공원은 꽃들은 있지만 사람들이 많고 그냥 복잡하기만 하니 별로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대뜸 “나는 사람 많은 데가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사람도 없는 밭에서 일만 하니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도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아버님의 외로움의 깊이를 잘 몰랐던 듯 합니다. 그래서 명절 때도 잘 찾아 뵙지도 않았고. 반쯤 서구식이 되어 그렇게 복잡하게 고생하며 내려갈 필요가 뭐가 있는가 하는 식의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몇 년간 정서적으로 힘들게 지내면서 외로움의 깊이를 이해하면서 아버님의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의 여론에 많이 신경쓰게 된 것도 외로움이 작용한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욕구인 듯합니다. 아마 50대가 되시던 어느 때, 아버님은 우리가 보기에 느닷없이 일반 노래 흘러간 옛노래를 옆 집 애촌 아지매에게 배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사를 받아 적어와서 열심히도 반복하며 부른 노래는 “반짝이는 별빛아래” “노들 강변” 등의 노래였습니다. 아마 저도 그 때 귀동냥으로 그 노래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 무렵부터 집에서 술을 담가서 “약”으로 드시는 일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일생의 사이클에서 50대의 정서적 욕구는 보상, 안정과 자기의 인생에 대한 만족감을 누리는 것이었고 아버님도 그것이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농사만 짓고 살아온 인생이 의미없어 보여 몇 년간 병목에서 목회일을 하셨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님에게서 인생의 모든 에너지는 교회와 자녀교육에 있었는데, 관기교회의 목회자들에게 그리 영적인 만족을 누리시지 못하셨고 (실은 아버님의 신앙과 성경을 보는 수준에서 보면 관기교회 목사님들은 상당히 갑갑한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면에서는 목회의 길이 하나의 숨통열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님도 유학 중이었고, 저도 당시에 대학원 다닌다고 부양을 못 해 드리고, 다시 기윤실에서 일하면서 부양을 못 해 드리고. 그 상실감이 참으로 컷을 것입니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50대와 60대 참으로 고통스럽게 인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현실적인 안정과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은 저는 요즘에야 깨달고 있으니 그 때에는 제대로 섬겨드릴 마음 자세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버님의 외로움과 고통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월급도 적고 사람들도 알아주지 않는 기윤실 일을 하던 저에게 “야, 해신아 그냥, 시골로 내려오지” 라고 말씀하셨고, “자녀들이 교회와 민족을 위해 살라고 기도한 것이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게 될 줄 몰랐다.”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마음은 아버님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꼭 베드로 같다. 자녀들이 교회와 민족을 위해 살도록 해 달라 기도해 놓고 그것을 후회하니 말이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장담하고 세번이나 부인하였지.” 그리고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하실 때면, 경제적으로 잘 되도록 해 달라고 하는 기도는 하시지 않은 듯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게 해 달라”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마지막 답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토록 지친 육신을 안고 새벽마다 부르짖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힘든 마음을 쏟아 놓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구주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때에” 등 천국 찬송을 부르면서 천국의 복과 하나님과 함께 함 그 소망이 인생을 지탱하던 힘이었을 것입니다.
말년의 이런 영적인 고뇌와 부르짖음도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유산으로 생각됩니다. 30대, 40대 청년기에는 용기있게 핍박과 싸우고 근면하게 일하시고, 우리들에게는 교회와 민족을 위한 비전을 가지도록 격려하신 것도 유산이지만 말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항상 미래의 꿈과 비전 속에, 번영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병도 생기고, 정신력도 약해지고, 이게 과연 예수 믿는 것인가, 이게 과연 인생인가 회의도 생기고. 이런 문제 속에 있는 것은 불신앙은 아닙니다. 신앙은 문제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문제와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속 부르짖고 계속 묻고, 그래도 계속 하나님의 임재를 향해, 천국을 향해 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점에서 노년기의 냐약한 아버님은 정상적인, 그리고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다들 이제 40대를 바라보거나 40대를 지나면서, 외로움의 실제를 더 경험하고 집안에서나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더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신앙도 좋고 바르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냥 좀 편하게 안정되게 살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 집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욕구입니다.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을 우리는 추구해야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때 그 복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건 그렇지 못하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번영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좌절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 가운데 즐거워 찬양하고, 그 위로 가운데 고통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과 천국입니다. 이 곳에서도 당신의 임재를 누리면서,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취를 하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법대로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 내었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영원이 내 앞에서 떠나라”고 심판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 나사로의 집에서 구걸하며 인생을 끝낸 그 거지 나사로, 그는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평생 잘 살고 죽을 때로 편히 죽은 사람에게 인생은 그것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이후 영원한 인생이 문제입니다. 유대수 장로와 이기순 집사는 평생 고생하고, 마지막도 세상적으로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 하늘 하나님 아버지 품 속에 있음을 압니다. 우리도 그 길을 갑니다. 때로는 춥고 배고프고 화나고 불안할 때도 많지만, 그러나 우리도 마지막은.
관기교회 주일 오전예배후 저보고 "우리구주 그리스도 다시 세상 오실때..."를
피아노로 쳐 달라시며 은혜스레 부르시던 생각이 납니다.
저역시 이제는 사십에 들어서니 오빠의 이 글이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물론 저는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른 불분명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존경스런 어른이십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