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3
작은 오빠가 결혼을 하던 해,
아버지는 혼주로서 양복을 맞추실 수 있었다.(평소에는 새 옷을 거의 못 해 입으셨으므로)
거창까지 가서 맞추고 오신날
엄마의 불평은 시작 되었다.
촌에서 흰 양복이 당하냐고.
아무 대답이 없으셨던 아부지.
그러나 여유만 되면 한없이 멋을 부리셨을 분
값진 것이 아니라 그저 여유만을 부리고 싶어셨지만 시간도 경제도 틈이 없었으니.
낙동강 강바람에(처녀 뱃사공)를 열심히 배우셨던 것도 동네분들과 최소로 어울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만큼 멋과 분위기를 아는 분이셨지만
다만 욕심을 내신 것은 '나 죽으면 석관 해달라.'는 것 뿐이었으니.
그 원 이루셨으니 기뻐하셨을까?
아버지는 혼주로서 양복을 맞추실 수 있었다.(평소에는 새 옷을 거의 못 해 입으셨으므로)
거창까지 가서 맞추고 오신날
엄마의 불평은 시작 되었다.
촌에서 흰 양복이 당하냐고.
아무 대답이 없으셨던 아부지.
그러나 여유만 되면 한없이 멋을 부리셨을 분
값진 것이 아니라 그저 여유만을 부리고 싶어셨지만 시간도 경제도 틈이 없었으니.
낙동강 강바람에(처녀 뱃사공)를 열심히 배우셨던 것도 동네분들과 최소로 어울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만큼 멋과 분위기를 아는 분이셨지만
다만 욕심을 내신 것은 '나 죽으면 석관 해달라.'는 것 뿐이었으니.
그 원 이루셨으니 기뻐하셨을까?
그러고 보니,
고향에서 흰 양복입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같군요.
아버지와 좀더 같이 지냈으면,
아버지께 그 멋과 분위를 좀 배웠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