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생과 성은이의 수고로 아버님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렸다.
주일 저녁 우리는 천안에서 모인 동기들끼리 아버님의 간증과 찬송을 다 들었다.
모두들 아버님의 선견지명에 가까운 착상에 감탄까지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내가 지난 금요일에 처음으로 듣고 내 생각을 올렸는데,
작동 미숙으로 실려있지 않았다.

오월을 맞이 하면, '나실 제 괴로움'을 부르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항상 떠올린다.
나 역시 왜 우리가 불러야 하는 노래를 부르시는지 궁금했는데,
당신의 직접적인 음성을 들으면서 부모됨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당신들의 자녀들인데,
이분들을 그리워할 수 있는 신앙의 마음을 가졌으니 정말 다행이다.

나 스스로 아버님을 가장 훌륭한 스승으로 모셨는데,
나의 현재의 고민도 다 그분께서 말씀과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전해주셨던 것이다.
이 시대에 아버님과 같은 믿음의 용장을 쉬 만날 수 없다.
앞으로 한국 교회의 장래는 제자훈련이 아니라
우리 가정과 같은 가정 신앙교육에 달려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가정교육에 더 힘을 내고,
먼저 부모님과 같은 부모가 되어야 하겠다.

오월을 맞이하여 당신들이 더욱 더 그리워지는 것은
선견자로서 살아가신 당신들의 아름다운 삶이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고난과 핍박을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
그러면서도 뭔가 많이 알고 있고 경건의 흔적을 보이지만,
실상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의적인 처신에
익숙한 한국교회가 피하는 것이 희생과 고난이다.
좋은 아버지를 만든다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테크닉인지를 누가 증언하였다.
우리는 그분이 신앙 때문에 당하셨던 고난을 직접 목도하였다.
우리는 정말로 복된 자녀들이요, 성도들이다.

모두 이 부모님의 자녀들로서 한껏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자.
교회와 사회의 소망이 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