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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에 이번 벌초가 어떻게 되나 싶어 광산에 전화했었다.
아직 계획을 못 세웠으니 다음에 연락해 주겠다고 하셨다.
계속 연락이 없어서 9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벌초가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마지막 토요일에는 은진씨와 아이들까지 함께 갈 생각이었다.
윽, 그런데 지난 금요일 밤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섰는데 광산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24일에 벌초를 한다고 하셨단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나도 와 있었는데, 하는 수 없이 토요일 아침에 하민이만 데리고 합천으로 갔다.

약국에 들러서 인사를 했다.
윤집사님은 쉬는 토요일일 때만 묘산으로 오신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오려면 다섯 시간쯤 걸리는 모양이다.
윤집사님께서 오고 계신다며 조장로님께서 싱글벙글하셨다.

도옥 외가에 갔다.
거의 도착해서 외가를 쳐다보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집이 안보이는 것 같았다.
올라가보니 집을 새로이 짓고 있었다.
기존의 집은 모두 무너뜨리고, 기초가 놓인 정도였다.
외삼촌은 외가 옆에 있는, 얼마 전에 지은 이씨 재실에서 임시로 기거하고 계셨다.
도옥외삼촌은 늘 외숙모께 잘 하신다.
몇해전에 통화할 때, 외숙모가 몸이 좋지 않다면서 안절부절하셨는데, 늘 외숙모께 친절히 대하신다. 우리 왔다고 외숙모가 사과를 가져오시니 외삼촌이 직접 사과를 깎으셨다.
노년에 금실 좋은 모습이 더 좋다.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
외가에서 점심밥을 먹었는데 비벼서 한 그릇 뚝딱 먹었다.
우리 하민이도 맛있게 너무 잘 먹었다.
하민이는 어디를 가든 인사를 잘해서 기분이 좋다.
질문도 많이 한다.
고령외삼촌, 외숙모는 두분다 몸이 좋지 못한 것 같다.
한번 연락해야겠다.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벌초를 해야겠지.
광산으로 가서 벌초장비를 준비해서 뒷산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산소에 벌초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뒤로는 넓게 풀밭이 있었는데 이제 주위로 나무가 많이 자라 산소 주위로 나무가 많이 들어섰다.
벌초를 하며 어릴적 할머니 생각이 났다.
특유의 노인 냄새가 아직도 나는 듯하다.
할머니 품에 안겨 누워 있던 생각이 난다.
얼마전 홈페이지에 올린 사랑방 마루에 앉아 웃으시는 할머니 생각이 난다.
큰아버지 산소는 늘상 그랫듯이 억센 풀이 많다. 가시도 있다.
힘들었지만, 벌초를 하고 나니 시원하다.
키 큰 억센 풀 때문에 산소가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 깔끔이 드나난 모습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큰아버지 돌아가신 일을 법정아재께 여쭈어 보았는데, 그 때가 법정아재 7,8세쯤이라고 하신다. 큰아버지 이야기를 하자마자 “27폭동” 때 돌아가셨다고 하신다.

마티즈에 예취기를 실고 저건네로 갔다.
개금불로 해서 가다가 우리가 자주 이용하던 샘에서 차를 멈추었다.
하민이에게 아빠가 어릴 때 일하다가 목이 마르면 여기 와서 물을 먹었다고 이야기 했다.
하민이는 수돗물이 아닌데 땅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걸 보고 신기해 했다.
하민이랑 시원하게 물 한잔씩 했다.
우리 산쪽에 차를 세워두고 부모님 산소로 내려갔다. 이제 위쪽에서 내려가는 길로 풀이 많이 자라서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 산소에 도착해 보니, 산소가 생각보다 깨끗했다.
아마 성은이가 얼마전에 벌초해서 그런 것 같다.
혼자서 수고 많았겠다.
가는 곳마다 어른들은 성은이 이야기를 하셨다.
넓은 산소를 예취기로 풀을 자르고, 잘라진 풀들을 끌었다.
해가 넘어가는 찰라에 부모님 산소 벌초를 마쳤다.
산소 앞으로는 풀을 다 치웠는데 산소 뒤로는 치우지 못했다.
치울 힘이 없고, 또 뒤쪽은 풀이 그대로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의 목표 달성.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산소 벌초를 마쳤다.
속이 시원하다.

법정아지매댁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에는 수홍이 집에 잠시 들렀다.
여전히 수홍이 아이 셋을 정국아지매가 키우고 계셨다.
막내 놈이 폐와 방광이 좋지 못하단다.
감기에 걸려서 잠자고 있는데 숨소리가 아주 좋지 못했다.
치료의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법정아지매 안방에서 하민이랑 둘이서 잤다.
잠을 너무 잘 잤다. 눈을 뜨니 아침 7시였다.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앞산 너머에 벌초를 할까 싶었는데 다른 차가 내차를 막고 있어서 포기해야 했다.
대신에 이갑지 집사님댁에 들렀다.
지금 연세가 91살이란다. 보름할매랑 동갑이신데 두분다 정정하시다.
몇장의 사진을 얻어 왔다.
이갑지 집사님은 교회에 다니신지 50년쯤 되었다고 한다.
처음 교회에 가셨을 때 장전도사님이라는 여전도사님이 관기교회 교역자로 있었다고 한다.
그 뒤 몇몇 목사님께서 목회를 하셨단다.

해록이형, 헌우형, 용진이와 함께 앞산 너머로 갔다.
하민이도 함께 갔다.
지난 해에는 하늬가 함께 갔는데, 아쉽다.
앞산 너머는 한참 산을 올라 비탈진 곳에 산소가 있다.
내가 예취기를 지고 가서, 예취기로 벌초를 다했다.
다름 사람들은 낫으로 하기도 하고, 잘라진 풀들을 치웠다.
여기가 끝나면 나는 예배 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힘든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다행히 예배에 늦지 않게 벌초가 끝났다.
나와 하민이는 집으로 와서 씻고 관기교회로 갔고,
나머지는 가산 넘어가는 곳으로 벌초하러 갔다.

관기교회,
남자는 김판득집사님만 계셨고,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그나마 오늘은 벌초 때문에 교회에 못 오신 분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나와 하민이를 포함해도 20명이 되지 못했다.
예배 마치고는 공동의회가 있었는데,
올해로 은퇴하시는 목사님께서 진행중인 일들이 정리가 덜 되었을 경우 2007년에 몇 개월 동안 더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투표를 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새로 지은 관기교회문고 겸 식당채에서 식사를 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앉아 계셨고, 그나마 젊은 분들이 식사 준비를 했다.
광산에서 오신 분은 이갑지 집사님, 상화엄마, 기근/기백이 엄마이다.
두어 분 더 다니신다.
관기에 사는 각골아지매도 교회에 다니신다.
옛날에 점도 치고, 굿도 했었는데, 이제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
참 감사한 일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사과와 포도를 먹었다.
이갑지 집사님이 연세가 많아 사과를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화 엄마가 사과를 채로 잘게 쓸어서 이갑지 집사님 앞에 갔다 놓았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는데 참 마음이 아름답다.
다들 아시다시피 상화엄마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부지런하다.
교회에서도 빠릿빠릿하게 일은 도맡아 한다.
그런데 간혹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가 말을 함부로 한다든지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돌아오며 상화 엄마를 생각했는데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상화엄마는 우리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교회에 다녔다.
이제 교회 다닌지 15년쯤 되지 않았을까?
상화엄마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데, 복음에 대해 들어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에서 좀 큰소리로 이야기 하면 조금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예수님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음에 만날 때는 꼭 예수님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겠다.

광산으로 가서 인사를 하고 광산을 나섰다.
혹시 배추달집사님 묘를 볼 수 있을까해서 화양으로 갔다.
관기교회 배건선집사님 시이모님(?)의 오빠가 배추달집사님이란다.
화양쪽에 배집사님 묘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은 기억도 나고 해서 화양으로 갔다.
묘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고 화양만 한바퀴 돌고는 산고개를 넘어 안성쪽으로 왔다.

동일주유소에 들어 기름을 넣었다.
조병채씨 부인이 일하고 계셨는데 인사를 하니 금방 알아 보셨다.
큰누야와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셨다.
차로 오두산을 올라가려고 계획했다가 빨리 광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민이를 설득하여 광주로 향했다.
반포 앞의 묘산 우회도로 끝부분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혔다.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를 길에서 꺼내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쓰러진 할아버지를 일으켰다.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났고 아스팔트길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신고하는 일을 도와주고 광주로 왔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틀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무사히 광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