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하루 종일 교회 일로 바빴다. 무슨 행사나 심방이나 교육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단을 정리하고 여기 저기 수리를 하고 못을 박았다.

  농촌교회가 어렵다고 하면서 '교역자들이 잘 안 오신다.'는 말을 할 때에는 대게 생활비가 적어서라고 생각하는데,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회를 운영할 때에는 교역자 생활비 외에 경상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경상비가 부족하다 보니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도회지 교회처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재정적인 것 이상으로 사람이 부족하다. 그나마 소수인 인력도 대게가 70대 넘은 노인분들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젊은층들이 있지만 농사일이나 자기 사업에 바빠서 교회 일에 시간을 낼 형편이 못 된다.
 
  그러다 보니 목사(와 사모)가 거의 모든 일을 다 한다. 가령 설교(주일오전, 주일오후,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심야기도회, 주일학교)를 비롯하여, 차량운전, 식당봉사, 본당과 화장실 청소, 심방과 전도, 교회 수리, 등등.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목사가 다 챙기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진짜 어려움은 이렇게 모든 것을 거의 다 하다시피 해도 생각만큼 열매가 잘 나타나지 아니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본 교회 성도들 마저도 이런 목사를 별로 존중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농촌 교회와 농촌 목사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농촌에 사시는 농민들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도회지 직장인이나 노동자들은 한 가지만 주로 한다. 자기의 주전공인 한 분야만을 그것도 혼자서 해도 어느 정도 온 가족이 다 생활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농촌의 농민들 경우는 한 가지만 해서는 살 수가 없다.

  쌀 농사, 보리농사, 밀농사와 같은 주식 외에 상추, 고추, 들깨, 파, 부추와 같은 채소도 좀 해야하고, 매실, 감, 녹차, 밤과 같은 과수도 해야 하고,  이것도 부족하여 소도 몇 마리 키우고 돼지도 몇 마리 키우고 닭이나 개, 염소도 좀 키운다. 그리고 간혹 면사무소에서 실시하는 취로사업이 있으면 열 일을 재쳐두고 나간다.

  이러다 보니 남자 혼자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때로는 온 가족이) 하루 종일 힘들고 1년 내내 바쁘지만 그래도 생활은 도회지 같지 않아, 젊은이들이 자꾸 농촌을 떠나고 있다. 이렇게 공기 좋고 물 맑고 경치가 수려한 고향을 경제적인 부분과 자녀교육 때문에 떠나는, 아니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국가의 인위적인 정책적 조작 때문이라고 본다. 어짜피 모든 것이 국제화 되고 세계화 되어가고 있기에 농촌(업) 역시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나, 그 동안 산업화와 공업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농촌과 농민을 많이 희생시켜 왔다. 가령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상대국의 농산물이 싸게 들어오도록 협상을 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공산품이나 다른 제품들은 일정한 가격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최소한의 원가에다 마진을 감안하여 가격표가 붙어서 나온다. 그러나 농산물은 이러한 제도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없다. 외국에서 값싼 농산물들이 많이 들어 오거나 국내에서 농산물이 과다 공급이 되면 원가에도 못 미치게 팔아야 한다. 농산물은 다른 제품과 달리 저장성이 약하여 무한정 시간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교인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농촌에 보내신 것은 단순히 '약한 교회에 가서 한 몇 년간 약하게 살면서 고생(?) 좀 해봐라. 그래서 정신 좀 차려라.'는 뜻이기 보다는, 이러한 농촌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감안하여 농촌 성도들을 깨워서 과거보다 더 살기 좋고 하나님 잘 섬기는 선진 농촌을 만들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고, 얼마 전까지도 농촌(정착촌)에서 살았지만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어려움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다. 이제 내 자신이 정말로 농촌의 한복판에 살다보니 나 역시 농민의 마음이 되었고 농민의 고충이 나의 고충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런 분야의 지혜를 주셔서 농촌과 농민을 깨우는 목회이기를 소망해 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