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0
우리 가문의 복
해신
지난 학기 목회상담학 숙제 중 가족 역사와 성격형성에 대해 글을 쓰라는 숙제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 가정이 기독교인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았습니다. 우리 6촌 (대구 고모네를 포함하여)들은 모두 25명이고 우리 형제들은 7명인데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우리 6촌 중 2명은 자살을 하였습니다. 두 명은 성불구가 되었고, 두 사람은 아마도 결혼 전에 술집에서 일한 것 같습니다. 5촌의 여성 중에, 한 명은 혼전 임신을 하였고, 한 명은 이혼당하였고, 한 명은 전 남편이 자살한 후 재혼하였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광산의 유씨 가문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놀랍게 우리 가문은 할아버지 대부터 동생이 형을 구타하며 상놈처럼 싸웠고, 우리 아버님-아저씨 대에도, 아버님에 대한 핍박 차원에서 동생이 형을 무지막지 하게 때렸을 뿐 아니라 믿지 않는 그들 형제들끼리도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증오와 죽음이 가문 전통이 된 가문이었습니다. 증오만 아는 가정에서 자랐으므로, 인생의 실망이 있으면 자기를 향해 증오를 쏟아 부어 자살해 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증오에 익숙하고 사랑에 미숙하므로 성적으로 문제도 있고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6촌 25명 중 대학 나온 사람은 세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이제 정옥이까지 정서방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해 7형제 모두 대학교육을 받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항상 힘든 것도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모두 부부가 서로 아끼며 참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남 차이는, 증오와 죽음으로 그늘진 가문에 50년전 빛이 왔기 때문입니다. 유대수 장로를 통해. 아버님은 그 가문의 어두움을 알기에 복음의 빛에 매력을 느낀 것 같습니다. 중오의 가문은 사랑의 복음에 대해 증오가 심했습니다. 그 가문의 분위기에서 오는 핍박을 견디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보다 아버님을 잘 아는 형님에 의하면, 아버님은 할머니가 출산하신 11명의 아이 중 막내라서 그런지 몸도 아주 약했고, 겁도 많고 참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새골아재나 돌아가신 송림아재는 아주 기골이 장대하였던 것에 대해, 아버님의 4촌 들 중 가장 볼품없는 사람인 듯 합니다.
그 약한 사람이 평생 신앙안에서 성장한 것은 복음과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6촌들의 세상의 삶의 비참함에 비해 우리들이 누리는 영생의 복과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복음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연약한 자들, 천대받던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로마의 노비들이 복음을 먼저 듣고 교회의 중심인구가 되었습니다. 100여년 전에도 총칼로 우리를 식민지화하던 일본이 아니라, 그 제국주의에 식민지화 되어 가던 한민족이 먼저 예수를 믿었습니다. 가진 자 유학자들 보다는 가난한 민중들이 더 복음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약한 자들의 행진 속에 유대수 장로와 우리들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은 순간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세상의 복은 경제적 안정, 사람들의 인정 등이지만 하늘의 복은 깊은 영혼의 안정감입니다. 증오에 빠진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서로 싸우지만 사랑에 감복된 우리들은 작은 소유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복은 미래의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내면세계의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가 누리는 신앙 안에서의 복은 사람들이 관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외적인 복도 우리는 누립니다. 우리가 교육을 잘 받고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게 살고 있는 것, 이 모두는 그냥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이 신앙인으로 성실히 살았고 우리에게도 신앙인으로서 바른 삶의 자세를 가진 것 때문에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복이나 이 세상의 복 모두 우리가 성취하고 획득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입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은혜이고, 생명과 안정을 누리는 것도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특별은혜라면, 일상의 은혜는 일반적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뚜렷이 보시는 하나님은 곳곳에 계시면서 당신의 섭리를 이루십니다. 그 섭리의 은혜 아래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신앙의 형식주의, 율법주의, 심하면 위선의 위험이 항상 있는 듯합니다. 우리 가정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항상 이런 위험이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르지만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이 위선의 유혹과 싸우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였습니다. 착한 아이로 자라지만, 참 하나님 앞에서 그러기 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그렇게 한 적이 종종 있은 듯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양심적으로 바로 살려는 선한 동기와 함께, 우선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그런 욕구가 동시에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축하하기 보다는 배가 아파 버리는 그 경쟁심도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나와 우리의 죄보다 강해서 지속적인 치유의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주님 함께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즐거움의 잔치를 내 원수의 눈 앞에서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도 크고 작은 그 죽음 같은 순간들을 지날 때 우리 주님 동행해 주셨음을 압니다.
이 신앙의 여정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다시 새롭습니다. 비록 늦게 예수님을 영접하여 미숙함도 많았으나 예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그 충성됨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제가 시민운동을 잘 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님의 유산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원래 미신이 심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형님의 표현에 의하면 샤마니즘적인 “신기”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그런 신기, 그리고 신나게 사람을 만나고 “확” 자기를 표현해 버리는 그 화통한 신기를 가졌습니다. 아버님에게는 볼 수 없는 그건 대범함이 있었습니다.
그 신기 때문에 어머니는 무당이었던 대구아지매를 “형님 형님”하며 따라 다녔고, 제가 고전읽기 시험과 입학시험을 칠 때는 옷 속에 아기 때 입던 배내옷을 몰래 기워 넣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하신데 그 미신이 나나 우리 가문에 도전은 될지언정 무슨 큰 영향을 행사했겠습니까?
오히려 저는 아버지 하나님, 구속주 그리스도, 인도자 성령 안에서 어머님께 물려받은 그 신기를 잘 사용해 온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시골에 온 유람공연단 (실은 약장수)에 참관하고는 판소리를 신나게 해 제끼기도 하였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믿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려 한번씩 춤도 추기도 하였습니다. 독재적 체제나 사람들 앞에 욱 하고 올라오는 저항심은 아버님보다 어머님께 물려 받은 유산 인 것 같습니다. 홍순관씨와 친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감수성 예민하고 노래 좋아했던 아버님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자기 신나는 감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던 어머님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거짓을 진리로 가장하는 사람들 앞에 “아니요”라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대안적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추진력은 아버님을 통해 받은 신앙교육, 우리 신사참배 반대하던 교회의 전통에서 오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신기에서 온 것이도 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가진 신기가 자연적으로 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만, 어머님은 그런 신기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 대학원 졸업 무렵 박사과정 진학을 두고 고민할 때 어머님은 “재죽 (걸음걸이)을 뛰어도 길게 띠어라고, 멀리 보고 결정해라” 면서 조언해 주신 것이 항상 기억에 남습니다. “괜찮다”고 하시던 그 말씀은 작은 일에 너무 소심하게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종종 해 주신 말씀입니다. 형님과 동생들에게도 이런 반골기질과 대범함은 어머님 쪽의 유산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적으로건 의도적으로건 어머님이 남겨주신 성품과 가치관들은 앞으로 더 반추하며 나와 우리 형제자매들, 우리 아이들의 유산으로 남겨갈 것인 듯 합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긍정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유산도 계속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면서도 미신적으로 우리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교회가 믿어온 예정론과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숙명론과 악한 신의 증으로 오해하는 우리 교회의 오해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어머님 쪽으로 흘러온 미신적, 샤마니즘적 요소가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복을 물질적으로만 해석한다든지, 혹은 동네 사람들의 여론의 포로가 된다든지 하는 그런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 한 것으로 인해 신앙의 갈등을 겪을 수 있고,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참 중요한 일을 빠뜨리는 그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리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그 은혜와 섭리로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심을 증거합니다. 우리도 주어진 신앙의 유산을 좋은 부분은 더 확장하고 나쁜 부분은 보완하는 이 일생의 과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노력하지만 님의 침묵처럼 우리를 감싸는 것은 하나님 당신의 은혜입니다.
저의 경험에서 우리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주어진 진지함과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관심에 더하여, 두 가지를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첫째, 양심의 자유, 둘째, 즐김의 삶. 첫째, 우리 생각과 삶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항상 최종적 결정은 성경과 성령으로 절여진 우리 마음, 우리 양심의 판단대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남을 무시하는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나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의 자유입니다. 나를 포기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자유를 누립니다. 둘째, 즐거워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지함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즐거움으로 보완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저는 전도서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많은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인생을 전체적으로 훑어 본 후 인생무상과 허모를 지적한 후 성령께서는 두가지 조언을 합니다. 첫째, 인생이 허무하니 주어진 작은 일에서 즐거워하라. 부부간의 사랑,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 직장 일에서 성취하는 것, 맛있는 음식 등, 참 허무한 인생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주어진 그 즐거운 순간들을 감사함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인생이 원래 허무하고, 심지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즐거움마저도 지나가는 것이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두려워하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것은 진실한 인생이기도 하지만 행복한 인생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하나님 당신이 없으면 우리 자신도 없어지는 것이기에, 당신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당신과 함께 있는 삶은 우리가 진짜로 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일에 이처럼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가족이 단지 육신의 가문이 아니라 영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는 신앙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신앙공동체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성 삼위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도 그 분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고 우리를 교육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 분들의 어깨 위에 서서 그 분들의 약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는 얼마나 많은 성취를 한 것 보다는 자기 시대에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 갔는가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증오의 가문에서, 미신의 가문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의 가문으로 옮겨가는 것이 얼마나 큰 투쟁이었는지 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의 가문에 태어난 우리도서는 우리 각자가 가진 천성적인 한계와 우리 시대의 우상성과 세속성과 싸우면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고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성공은 우리 각자로서 투쟁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이 투쟁을 감싸는 것은 은혜의 침묵입니다. “내 주는 자비 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그 나라 가기 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주님만 따라가리.”<해신>
해신
지난 학기 목회상담학 숙제 중 가족 역사와 성격형성에 대해 글을 쓰라는 숙제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 가정이 기독교인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았습니다. 우리 6촌 (대구 고모네를 포함하여)들은 모두 25명이고 우리 형제들은 7명인데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우리 6촌 중 2명은 자살을 하였습니다. 두 명은 성불구가 되었고, 두 사람은 아마도 결혼 전에 술집에서 일한 것 같습니다. 5촌의 여성 중에, 한 명은 혼전 임신을 하였고, 한 명은 이혼당하였고, 한 명은 전 남편이 자살한 후 재혼하였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광산의 유씨 가문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놀랍게 우리 가문은 할아버지 대부터 동생이 형을 구타하며 상놈처럼 싸웠고, 우리 아버님-아저씨 대에도, 아버님에 대한 핍박 차원에서 동생이 형을 무지막지 하게 때렸을 뿐 아니라 믿지 않는 그들 형제들끼리도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증오와 죽음이 가문 전통이 된 가문이었습니다. 증오만 아는 가정에서 자랐으므로, 인생의 실망이 있으면 자기를 향해 증오를 쏟아 부어 자살해 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증오에 익숙하고 사랑에 미숙하므로 성적으로 문제도 있고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6촌 25명 중 대학 나온 사람은 세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이제 정옥이까지 정서방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해 7형제 모두 대학교육을 받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항상 힘든 것도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모두 부부가 서로 아끼며 참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남 차이는, 증오와 죽음으로 그늘진 가문에 50년전 빛이 왔기 때문입니다. 유대수 장로를 통해. 아버님은 그 가문의 어두움을 알기에 복음의 빛에 매력을 느낀 것 같습니다. 중오의 가문은 사랑의 복음에 대해 증오가 심했습니다. 그 가문의 분위기에서 오는 핍박을 견디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보다 아버님을 잘 아는 형님에 의하면, 아버님은 할머니가 출산하신 11명의 아이 중 막내라서 그런지 몸도 아주 약했고, 겁도 많고 참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새골아재나 돌아가신 송림아재는 아주 기골이 장대하였던 것에 대해, 아버님의 4촌 들 중 가장 볼품없는 사람인 듯 합니다.
그 약한 사람이 평생 신앙안에서 성장한 것은 복음과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6촌들의 세상의 삶의 비참함에 비해 우리들이 누리는 영생의 복과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복음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연약한 자들, 천대받던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로마의 노비들이 복음을 먼저 듣고 교회의 중심인구가 되었습니다. 100여년 전에도 총칼로 우리를 식민지화하던 일본이 아니라, 그 제국주의에 식민지화 되어 가던 한민족이 먼저 예수를 믿었습니다. 가진 자 유학자들 보다는 가난한 민중들이 더 복음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약한 자들의 행진 속에 유대수 장로와 우리들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은 순간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세상의 복은 경제적 안정, 사람들의 인정 등이지만 하늘의 복은 깊은 영혼의 안정감입니다. 증오에 빠진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서로 싸우지만 사랑에 감복된 우리들은 작은 소유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복은 미래의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내면세계의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가 누리는 신앙 안에서의 복은 사람들이 관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외적인 복도 우리는 누립니다. 우리가 교육을 잘 받고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게 살고 있는 것, 이 모두는 그냥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이 신앙인으로 성실히 살았고 우리에게도 신앙인으로서 바른 삶의 자세를 가진 것 때문에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복이나 이 세상의 복 모두 우리가 성취하고 획득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입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은혜이고, 생명과 안정을 누리는 것도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특별은혜라면, 일상의 은혜는 일반적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뚜렷이 보시는 하나님은 곳곳에 계시면서 당신의 섭리를 이루십니다. 그 섭리의 은혜 아래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신앙의 형식주의, 율법주의, 심하면 위선의 위험이 항상 있는 듯합니다. 우리 가정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항상 이런 위험이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르지만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이 위선의 유혹과 싸우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였습니다. 착한 아이로 자라지만, 참 하나님 앞에서 그러기 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그렇게 한 적이 종종 있은 듯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양심적으로 바로 살려는 선한 동기와 함께, 우선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그런 욕구가 동시에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축하하기 보다는 배가 아파 버리는 그 경쟁심도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나와 우리의 죄보다 강해서 지속적인 치유의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주님 함께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즐거움의 잔치를 내 원수의 눈 앞에서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도 크고 작은 그 죽음 같은 순간들을 지날 때 우리 주님 동행해 주셨음을 압니다.
이 신앙의 여정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다시 새롭습니다. 비록 늦게 예수님을 영접하여 미숙함도 많았으나 예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그 충성됨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제가 시민운동을 잘 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님의 유산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원래 미신이 심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형님의 표현에 의하면 샤마니즘적인 “신기”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그런 신기, 그리고 신나게 사람을 만나고 “확” 자기를 표현해 버리는 그 화통한 신기를 가졌습니다. 아버님에게는 볼 수 없는 그건 대범함이 있었습니다.
그 신기 때문에 어머니는 무당이었던 대구아지매를 “형님 형님”하며 따라 다녔고, 제가 고전읽기 시험과 입학시험을 칠 때는 옷 속에 아기 때 입던 배내옷을 몰래 기워 넣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하신데 그 미신이 나나 우리 가문에 도전은 될지언정 무슨 큰 영향을 행사했겠습니까?
오히려 저는 아버지 하나님, 구속주 그리스도, 인도자 성령 안에서 어머님께 물려받은 그 신기를 잘 사용해 온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시골에 온 유람공연단 (실은 약장수)에 참관하고는 판소리를 신나게 해 제끼기도 하였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믿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려 한번씩 춤도 추기도 하였습니다. 독재적 체제나 사람들 앞에 욱 하고 올라오는 저항심은 아버님보다 어머님께 물려 받은 유산 인 것 같습니다. 홍순관씨와 친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감수성 예민하고 노래 좋아했던 아버님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자기 신나는 감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던 어머님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거짓을 진리로 가장하는 사람들 앞에 “아니요”라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대안적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추진력은 아버님을 통해 받은 신앙교육, 우리 신사참배 반대하던 교회의 전통에서 오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신기에서 온 것이도 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가진 신기가 자연적으로 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만, 어머님은 그런 신기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 대학원 졸업 무렵 박사과정 진학을 두고 고민할 때 어머님은 “재죽 (걸음걸이)을 뛰어도 길게 띠어라고, 멀리 보고 결정해라” 면서 조언해 주신 것이 항상 기억에 남습니다. “괜찮다”고 하시던 그 말씀은 작은 일에 너무 소심하게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종종 해 주신 말씀입니다. 형님과 동생들에게도 이런 반골기질과 대범함은 어머님 쪽의 유산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적으로건 의도적으로건 어머님이 남겨주신 성품과 가치관들은 앞으로 더 반추하며 나와 우리 형제자매들, 우리 아이들의 유산으로 남겨갈 것인 듯 합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긍정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유산도 계속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면서도 미신적으로 우리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교회가 믿어온 예정론과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숙명론과 악한 신의 증으로 오해하는 우리 교회의 오해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어머님 쪽으로 흘러온 미신적, 샤마니즘적 요소가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복을 물질적으로만 해석한다든지, 혹은 동네 사람들의 여론의 포로가 된다든지 하는 그런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 한 것으로 인해 신앙의 갈등을 겪을 수 있고,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참 중요한 일을 빠뜨리는 그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리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그 은혜와 섭리로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심을 증거합니다. 우리도 주어진 신앙의 유산을 좋은 부분은 더 확장하고 나쁜 부분은 보완하는 이 일생의 과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노력하지만 님의 침묵처럼 우리를 감싸는 것은 하나님 당신의 은혜입니다.
저의 경험에서 우리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주어진 진지함과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관심에 더하여, 두 가지를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첫째, 양심의 자유, 둘째, 즐김의 삶. 첫째, 우리 생각과 삶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항상 최종적 결정은 성경과 성령으로 절여진 우리 마음, 우리 양심의 판단대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남을 무시하는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나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의 자유입니다. 나를 포기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자유를 누립니다. 둘째, 즐거워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지함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즐거움으로 보완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저는 전도서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많은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인생을 전체적으로 훑어 본 후 인생무상과 허모를 지적한 후 성령께서는 두가지 조언을 합니다. 첫째, 인생이 허무하니 주어진 작은 일에서 즐거워하라. 부부간의 사랑,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 직장 일에서 성취하는 것, 맛있는 음식 등, 참 허무한 인생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주어진 그 즐거운 순간들을 감사함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인생이 원래 허무하고, 심지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즐거움마저도 지나가는 것이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두려워하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것은 진실한 인생이기도 하지만 행복한 인생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하나님 당신이 없으면 우리 자신도 없어지는 것이기에, 당신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당신과 함께 있는 삶은 우리가 진짜로 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일에 이처럼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가족이 단지 육신의 가문이 아니라 영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는 신앙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신앙공동체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성 삼위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도 그 분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고 우리를 교육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 분들의 어깨 위에 서서 그 분들의 약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는 얼마나 많은 성취를 한 것 보다는 자기 시대에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 갔는가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증오의 가문에서, 미신의 가문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의 가문으로 옮겨가는 것이 얼마나 큰 투쟁이었는지 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의 가문에 태어난 우리도서는 우리 각자가 가진 천성적인 한계와 우리 시대의 우상성과 세속성과 싸우면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고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성공은 우리 각자로서 투쟁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이 투쟁을 감싸는 것은 은혜의 침묵입니다. “내 주는 자비 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그 나라 가기 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주님만 따라가리.”<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