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0
이제 며칠 지나면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불러가신 지 꼭 10년이 된다. 내 부모님과 마주보지 못한지 벌써 10년이 되었으니, 이제 다시 내 부모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1994년도 7월 20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고3이었지만,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그런지 아니면 좋은 시절을 만나서 그런지 어쨌든 나는 그 당시 큰 스트레스 없이 고3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수요일 저녁이었는데, 여느 수요일이나 마찬가지로 수요예배를 마치고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때 아마 어머니 생신(?) 전후여서 큰자형 가족이 서울에서 미리 내려와 계셨으며, 막내누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나 보다. 큰자형께서 전화를 받으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보라 하시며 다시 자취방 주인집으로 전화를 해 준다고 하셨다. 나는 무슨 큰 일이 난 것을 알았으며, 몇 시간 동안 책상에 멍하니 앉아 간간히 기도를 드렸다. 너무 큰일이 아니기를… 그날 밤 나는 자형으로부터 다음날 아침에 고령 영생병원으로 오라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이때까지도 나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고령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통해서 나는 사실을 들었고,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해서야 사실을 보았다.
나는 입관예배와 하관예배를 드리며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나약함,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 물론,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부모님의 먼저 가심에 대해서 계속 깨달아가고 있긴 하다.
사실, 고3시절에 부모님을 여의었지만, 대학을 준비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던 것같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해서 내게 주신 신앙과 가족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께 야단을 많이 맞았다. 지금은 사실 왜 그렇게 혼이 많이 났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한편으로 정이 참 많으셨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집마다 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때마다 그들을 그냥 내쫓지 않으시고 항상 쌀을 퍼주셨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까? 무슨 시험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는 시험을 한 번 정말 못 본 적이 있다. 그때 굉장히 걱정하며 어머니께, 시험을 못 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씀 드린 적이 있다. “시험을 잘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다.” 이 어머니의 대답은 내게 큰 힘이 된다. 그때 이후로 나는 수많은 시험을 쳤으며, 시험을 잘 준비하려고 노력했고, 좋은 결과이든 나쁜 결과이든 나는 거기에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다.
내가 어릴 때, 내 고향은 정말로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에 밖에서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이 딱 달라붙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겨울이면 아버지께서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내가 따뜻한 물에서 얼굴을 씻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나를 보듬어 직접 얼굴을 씻겨주셨다. 그 아버지의 품 내음이 지금도 그립다.
아버지는 새벽기도에 참 열심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운 겨울에도 새벽마다 교회에 가셔서 새벽기도를 하셨는데, 나는 새벽에 아버지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추위를 해치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을 잠결에 자주 뵌 적이 있다. 두툼한 바지에 나무색 니트형식의 외투를 입으시고 빵모자(?)를 둘러 쓰시고, 한 손에는 지퍼가 달린 성경찬송을 끼신 채 눈물 콧물을 닦으시며 들어오시던 모습……
지금 2004년 부모님 10주기를 맞아 나는 다시 내 부모님을 기억하며,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해본다. 지금 비록 부모님은 여기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내게 남겨주신 이 신앙 안에서 내 부모님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신앙 안에서 자녀들을 키워, 내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된 이 믿음이 내 자녀들에게 이어가도록 하고 싶다. 더욱이, 나는 부모님께서 내게 남겨주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같이 가도록 애쓰고 싶다.
--부모님 10주기 기념 저건네 특집호
설움? 하나님의 무심함?
우리 부모님은 늘 여름날의 더위 아래서도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아픔이다.
그렇지만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그 아픔은 곧 기쁨이리라.